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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화가 100인 작품

박수근(1914 ~ 1965)의 그림

by 언덕에서 2011. 1. 27.

 

 

 

 

 

박수근(1914 ~ 1965)의 그림

 

 

 

 

박완서 작가의 별세로 인해 박수근 화백의 작품에 대해 다시 한번 관심이 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1914년 강원도 양구 산골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밖에 다닐 수 없었다. 6.25동란 중 월남한 그는 부두 노동자,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 그려주는 일 따위로 생계를 유지했다. 1951년 전쟁 와중에서 미군부대 PX에서 근무하던 서울대 휴학생 박완서에게  덩치만 크고 어수룩해 뵈는 「박씨」라고만 알고 있는 화가가 화집 1권을 가지고 찾아왔다. 박씨는 평소에도 공용의 허드레 붓을 안 쓰고 자기 붓만으로 초상화를 그려, 당돌한 스무살 처녀 박완서는 그렇잖아도 속으로 「꼴값하네」라며 비웃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화집만 갖고 다니면 간판장이가 화가로 둔갑하나」라며 우습게 여겼던 것이다. 화집은 일제시대 鮮展(선전)에 입선한 작품들을 실은 것이었다. 박씨는 그중 시골여자 둘이서 절구질하는 그림을 가리키며 「자기 그림」이라고 했다. 명함만한 크기로 흑백이었다. 그 그림 밑에 박수근이라고 인쇄돼 있었다. 그제야 「박씨」의 이름을 알았다. 박완서는 간판장이들 중에 진짜 화가가 있다는 걸 알고 쇼크를 받았다. 그동안 너무 버르장머리 없이 군 게 더없이 무안했다. 박수근뿐만 아니라 PX에는 서울대 출신도, 재학생도 있었다. 그리고 청소아줌마 중에는 중학교 교사 출신도 있었다. 전쟁은 인간을 하향 평준화시킨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박완서는 박수근이 훗날 그 유명한 화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쩌면 박수근 자신도 몰랐을 것이다. 유명화가가 될 줄 알았다면, 그만한 안목이 있었다면, 박수근의 그림 몇 점쯤은 손쉽게 얻어 낼 수도 있었다. 아니 하다 못해 반품 들어온 초상화라도 몇 점 거둬 두었다면 「화가 박수근」의 그 어려운 시절의 증거품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박수근(1914-1965)의 삶과 예술은 '서민의 화가'라고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는 곤궁한 시절에 힘겹게 살아갔던 서민화가 그 자체였다.

 오늘은 곤궁하던 시절 박수근의 그림을 감상해 보도록 하자.

 

 

[ 국내 경매 최고가 경신 - 시장의 여인들 1961년 ]

 

 

 

 

 [ 나물캐는 여인들 (1940년대) ]

 

 

 

 

 

[ 금강역사 (1954) ]

 

 

 [ 기름장수 (1953) ]

 

 

 

 

[ 맷돌질하는 여인 (1940년대 후반) ] 

 

 

 

 

 

[ 나무와 두 여인 (1956) ]

 

 

 

 

 [ 나무 (1959) ]

 

 

 

 

 

[ 감자 (1952) ]

 

 

 

 

 

[ 나물캐는 소녀들 (1950후반) ]

 

 

 

 

 

[ 굴비 (1950년대) ]

 

 

 

 

 

[ 강변 (1950년대) ]

 

 

 

 

 

[ 노상 (1950년대) ]

 

 

 

 

 

[ 노상 (1950년대) ]

 


 

 

 

 

[ 굴비 (1956년) ]

 

 

 

 

[ 귀로 (1953) ]

 

 

 

 

 

수채화

 

 

 

 

 

 

 

 

 

 

 

 

 

 

 

 

 

 

 

 

 

 

 

 

 

 

 

 

 

 

박수근 (1914∼1965). 화가. 한국 근대미술의 대표적인 작가로 가난 속에서도 착하게 살아간 서민들의 삶을 화폭에 담아 '민족의 화가', '서민의 화가'로 불리운다. 대표작은 <나무와 두 여인><아기 업은 소녀> 등이다.

 1914년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나 학력이라곤 양구초등학교를 졸업한 것이 전부인 그는 초등학교때 프랑스의 농민화가 밀레의 '만종(晩鐘)'을 처음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아, '밀레와 같은 화가'를 꿈꿨다고 한다.

 이후 독학으로 미술을 공부한 그는 18세인 1932년 서울의 '조선미술전람회(鮮展)' 서양화부에 봄의 농가를 그린 수채화 <봄이 오다>를 출품하여 입선하였다. 이후 '선전(鮮展)'과 해방구 '국전(國展)'에 계속 작품을 출품하여 입선했다. 1953년 국전에서 특선, 1955년 대한미협전에서 국회문교위원장상을 수상했다.

 수술비용이 없어 백내장 치료시기를 놓쳐 1963년에는 왼쪽 시력을 잃고 좌절하는 등 시대적 불운과 생활고 등의 중압감을 이기기 위해 과음과 제작생활을 강행하다가 51세인 1965년 간경화로 세상을 떠났다.

 박수근은 사실적인 묘사를 제거하고 흰색, 갈색, 회색, 검정색의 절제된 색채를 사용하며, 화강암을 연상시키는 두꺼운 재질감(마티에르)을 시도하여 독자적인 조형세계를 구축하였다.

 대표작은 <나무와 두 여인><아기 업은 소녀>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