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의 덫 - 필립 노리스 작. <토끼울타리>
할리우드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던 감독 필립 노이스가 2002년 고국인 호주로 돌아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이 작품은 민족과 역사, 인간의 존엄성의 문제를 진정성 있게 파고든 문제작이다. 2007년 제1회 서울충무로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되었다.
이 영화 속의 이야기는 도리스 필킹톤 원작을 기초로 한 실화로 1931년 호주의 서부, 지가롱 (Jigalong)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세 명의 여자 아이 이야기는 당시 영국 정부의 한 고위 관리가 만들어낸 정책 중의 하나로 오지에 사는 원주민 여자 아이들을 강제로 가족으로부터 떼어내어 하녀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었다. 그 중 나이가 가장 많은 한 여자 아이는 엄마가 보고 싶었고 가족이 그리웠다. 그래서 어린 여동생 둘과 함께 탈출을 감행 한다. 호주의 북쪽과 남쪽을 가로지르는 ‘토끼 울타리’를 따라 1,500마일이라는 대장정의 여정의 길을 떠나지만 정부는 그들을 계속하여 추적하게 된다.
오늘날, 호주에서는 이 여자 아이들이 겪었던 세대를 ‘유린된 세대’ 라고 말하고 있다.
이 영화는 1930년대 호주의 비인간적인 원주민 정책으로 벌어진 실화를 소재로 담았다. 당시 호주의 지배층인 백인들은 토착민의 확산을 저지하기 위해 혼혈 어린이들을 집단수용소에 감금한다. 그곳에서 호주 정부는 부모들로부터 격리시킨 아이들을 하인으로 교육시켜 백인사회로 편입시키고자 한다.
또한 당시 호주 정부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토끼의 대량 번식을 막기 위해 대륙을 가로지르는 토끼울타리를 설치한다.
14세의 소녀 몰리는 울타리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었는데 원주민 어머니와 백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이다. 몰리 또한 호주 정부의 분리 정책으로 인해 동생과 사촌과 함께 부모 곁을 강제로 떠나 수용소로 가게 된다. 그러나 몰리는 수용소를 탈출하고, 천오백마일이나 떨어진 고향을 찾아가는 그들의 여정은 끝없이 설치된 토끼울타리를 따라 이어진다. 그러나 고향의 부모를 찾아가려는 소녀의 집념과 의지는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영화는 집요하게 보여준다. 생존을 향한 어린 소녀들의 역경을 담은 이 영화는 고향과 부모를 향한 위대한 사랑의 서사시이다.
이 영화는 실화를 영화화한 만큼 사실감을 더하기 위해 전문 배우들이 아닌 현지의 토착민 어린이들을 캐스팅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들의 연기는 사실적이고 짙은 감동을 준다.
영화의 제목 <토끼울타리>는 백인들의 비인간적인 인종정책을 상징하고 있다. 호주 정부는 유색인종을 강제 이주시키는 정책을 1970년까지 계속했다. 우리의 중. 고교 시절의 지리시간에는 ‘호주’하면 ‘백호정책’하는 식으로 달달 외웠던 기억이 난다. 현재까지도 많은 원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니 통탄할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지금도 세계 역사는 백인들의 관점에서 재단되고 있다. 역사는 백인들이 속한 나라의 패권주의 기록으로 채워지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들에게 <토끼울타리>는 무엇을 추구하는 도구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이 답답했다.
설날 때 들린 역 대합실과 터미널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전체의 1/3은 차지한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종차별은 세계 1~2위를 다툰다. 특히 우리보다 못사는 동남아, 아프리카, 중남미 사람들에 대한 시선은 <토끼울타리>속의 호주 백인과 별 다르지 않다. 1960년대, 970년대 우리의 산업전사, 간호사들은 중동에서, 서독에서, 동남아에서 가난한 나라의 설움을 온몸으로 겪으며 조국에 송금을 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과연 우리 마음속에 그런 울타리가 없는지 질문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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