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면서 감동적이었던 영화, 이차선 다리 <복면달호>
오늘 아침 출근하면서 라디오에서 차태현이 부른 ‘이차선 다리’라는 노래를 들었다. 가요 ‘이차선 다리’는 영화 ‘복면 달호’의 주제가이며 내가 노래방에서 가장 즐겨 부르는 노래다. 한국의 코미디 영화라면 시시하고 통속적인 웃음을 떠올릴 이가 많음을 알지만 나는 한국 코미디영화 중에서 이만큼 감동적인 작품을 여태껏 보지 못했다. 급기야 영화 말미에서는 감동의 눈물을 자아내게 했던 건 나만의 현상인지 모르겠다.
한 사람의 인생은 언제나 ‘선택’의 문제와 관련해 있다. 삼거리에 마주친 삶의 주인공이 좌회전할 것인가, 우회전할 것인가에 따라 그 인생은 무척이나 상이한 그림을 펼친다. 노래를 잘하는 배우 차태현이 주연을 맡은 <복면달호>도 그런 선택의 상황을 토대로 웃음을 그려낸다. 그에게 있어 선택의 두 갈래는 바로 음악 장르다. 록이냐, 트로트냐. 이 중 하나를 움켜쥐는 순간 그는 락커 봉달호로 살 것인가, 트로트 가수 봉필로 살 것인가 하는 인생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끝없는 웃음을 선사하고 급기야 눈물을 흘리게 하는 이 영화의 핵심은 ‘이차선 다리’라는 주제가와 건너기 어려웠던 남녀의 애절한 사랑이 숨어있다.
재미있고 눈물나는 이 영화 속으로 들어가 보자.
주인공 봉달호(차태현)는 내일의 락스타를 꿈꾸며 지방의 허름한 나이트 클럽에서 열심히 샤우팅을 내지르며 미완의 꿈을 키운다. 우연히 그 나이트에서 술을 마시던 「큰소리 기획」의 장사장(임채무)은 달호의 목소리에서 대성할 트로트 가수의 소질을 발견한다. 신이 내린 천상의 뽕필(뽕짝의 feel)을 발견한 잘못된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달호는 조폭 출신 장사장이 제시한 ‘가수 데뷔’라는 말에 이성을 상실하고 앞뒤 안 보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어버리고 자신이 이끌던 록 밴드를 휴지처럼 버린다. 이후 달호의 인생은 완전히 이상하게 꼬여 버렸다. 달호는 락가수로서 자신을 연마해왔는데 자신을 키워 줄 것이라 굳게 믿었던 「큰소리 기획」은 구멍가게 수준의 그야말로 작고 초라한 '트로트 전문' 음반 기획사였던 것이다!
결국 봉달호는 법적 사슬에 묶여 피할 수 없는 현실 앞에 어쩔 수 없이 트로트 가수로 거듭나기 위한 초강도의 스파르타 식 트레이닝에 들어간다.
달호는 승승가도를 달리지만 인기를 얻은 대신 억압과 시기가 그를 따르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연말 가요열전 경쟁자인 트로트계의 거물가수 나태송(나훈아 + 태진아 + 송대관 = 나태송?)은 끊임없이 달호에게 비겁하게 복면을 쓰지 말 것을 요구하며 모욕을 가한다.
복면을 쓰고 가수생활을 하는 달호와 동고동락하던 동료 트로트 여가수 서연(이소연)은 '모든 음악의 가치는 동일하므로 트로트에 자부심을 가질 것을 바라며, 달호가 진정한 가수가 되기 위해서는 가면을 벗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복면을 벗지 못하고 무대에 계속 서는 달호에게 결국 트로트의 진심을 일깨워 준 사랑하는 여인 서연은 달호를 떠난다.
연말 가요열전 무대에서 달호는 ‘이차선 다리’ 1절을 부른 후 장사장의 지시를 무시하고 예고없이 복면을 벗는다. “저는 트로트를 부르는 게 쪽 팔려서 그 동안 복면을 썼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부끄럽지 않습니다. 이 노래를 내 곁을 떠난 여인 서연이에게 바칩니다.”라는 멘트를 한 후 2절을 부른다. 그 시간, 서연은 우연히 들른 마트의 전자제품 코너의 TV에서 달호의 고백을 듣고 눈물을 흘린다. 복면을 벗은 달호에게 청중들은 아낌없는 격려를 보내고 달호는 가요대상을 받으며 나태송을 제치고 가요계를 평정한다. 마지막 장면은 달호가 오토바이를 타고 서연이가 살고 있는 바닷가 시골 마을을 찾아가고 그들은 재회의 포옹을 한다. 여기서 영화는 끝난다.
2007년 개그맨 이경규가 기획하고 김상찬. 김현수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요즘 이상하리만치 많이 들리는 단어인) ‘웰 메이드’라 칭할 만큼의 완성도를 갖추진 못했다. 이건 연출 경험이 미미한 데뷔 감독에게 짐을 떠안겨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면달호>는 일본에서 건너온 기막힌 이야기 소재, 주연 배우들의 무난한 연기, 주영훈이 총책을 맡은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연출적 약점을 커버한다. <복면달호>는 잘 짠 기획을 토대로 만든 상업영화의 품새로선 전혀 손색이 없으며 고민 없이 영화가 전하는 웃음을 즐기고, 눈물을 느끼고, 노래를 흥얼거리면 된다. 그때 관객들에게도 구성지면서 아름다운 노래‘이차선 다리’의 트로트 가락의 마음이 감동으로 전해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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