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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장편소설 『만연원년의 풋볼(万延元年のフットボ-ル』

by 언덕에서 2010. 10. 22.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장편소설 『만연원년의 풋볼(万延元年のフットボ-ル』

 

 

 

 

일본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1935 ~)의 장편소설로 잡지 [군조(群像)] 1967년 1월호부터 7월호까지 연재되었고, 같은 해 9월에 가필하여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상] 수상작으로 1974년에는 존 베스터에 의해 영역 출간되었으며, 스웨덴에서 이 작품이 스웨덴어로 번역, 출판되어 주요 신문의 격찬을 받았다. 199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이다. 제목의‘만연’은 연호이다.

 이 작품은 오에 겐자부로의 고향인 산골마을에서 100년 전에 일어난 민란을 소재로 하여 썼는데 작가가 유년시절 고향 마을의 할머니들에게서 자주 들었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였다고 한다. 특히 작품 속에는 조선인을 다룬 내용도 나오는데, 조선인과의 소란, 마을의 자립을 부르짖으며 조선인 기업가에게 지배받아 온 마을의 힘을 회복시키려고 노력하는 인물 등이 그려져 있다. 오에 겐자부로는 이 작품으로 199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광기의 전쟁이 패배로 막을 내린 후, ‘안보 투쟁이 일어나 또 다른 혼돈 속에 놓인 1960년 일본이 배경이다. 도쿄대학교 교수인 미쓰사부로는 섬약한 번역가로, 백치로 태어난 아들을 요양시설에 맡기고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그의 아내도 백치 자식을 낳은 충격으로 알콜 중독에 빠져든다. 동생 다카시는 60년 전일본을 들끓게 했던 안보투쟁의 주동으로 과격한 행동주의자다. 미쓰사부로와 미국에서 돌아온 동생 다카시, 다카시의 친구들은 새로운 생활을 꿈꾸며 시코쿠의 산골짜기 고향 마을로 돌아간다.

 추한 외모에 사고로 한쪽 시력을 잃은 주인공 미쓰사부로는 친구의 엽기적인 자살을 접하고는 깊은 충격에 빠진다. 그에게도 가족은 있다. 안보 투쟁에도 참여했던 전향한 학생운동가 동생 다카시, 견디기 힘든 현실을 위스키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아내 나쓰코 그리고 머리에 혹이 달린 채 태어나 보호시설에 맡겨진 아이…….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던 미쓰사부로는 ‘새 생활을 시작하자’라는 다카시의 제안을 받아들여 아내와 동생과 함께 시코쿠의 고향으로 떠난다. 형제의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들이 만난 것은 마을의 경제권을 장악한 조선인 슈퍼마켓 주인과 마을사람들의 갈등, 1945년 작은형의 죽음을 불러왔던 조선인 마을과의 난투극에 대한 유년의 기억이다. 그곳은 만엔 원년(1860년)에 농민 봉기가 일어났던 골짜기 마을이다. 100년 전 증조부 형제가 연관된 농민 봉기의 역사와 패전 직후 조선인 촌락 습격으로 S형이 살해당한 사건에 대해 두 형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억한다. 자신을 증조부의 동생과 동일시하던 다카시는 마을의 경제권을 장악한 조선인 ‘슈퍼마켓 천황’에 대항하기 위해 풋볼팀을 만들고, 형제의 갈등은 점점 깊어진다. 그들의 할아버지가 관련된 농민 봉기의 전승에 관하여 비행동적인 형과 폭동을 원하는 동생이 팽팽히 맞서는 것을 통하여 역사 인식의 다른 눈을 보여준다.

 결국, 다카시는 농민봉기를 주도했던 증조부의 동생, 조선인에게 맞아 죽은 작은형을 자신과 동일시하고 폭동을 주도하지만 결국 좌절하고 자살한다. 미쓰사부로는 다카시의 아이를 가진 아내와 함께 새로운 삶을 찾아 다시 고향을 떠난다.

 

 

 『만연원년의 풋볼』은 만연원년(1860년)시코쿠(사국)의 산골마을 토호인 네도코로 근소가문의 두 형제가 농민봉기의 지도자와 진압대장으로 대립한 내력이 4대에 걸쳐 심리적 유산으로 이어지는 구도를 갖고 있다. 소설은 네도코로 가의 후손인 미쓰사부로와 동생 다카시가 고향을 찾아가는 것으로 시작된다. 네도코로 가에 대물림되는 모험적 행동주의와 무기력한 회의주의는 일본 지식인 사회의 양극단을 지배해온 정서를 대변한다. 오에는 독자들이 쉽게 자신을 읽는 것을 거부한다. 독자가 엄청난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이 작품은 작품 속에도 나오듯이 ‘내면으로 통하는 나선계단의 입구’를 발견한 독자에게는 환희를, 발견하지 못한 독자에게는 고통을 안겨준다. 현재와 과거, 일상과 광기를 넘나드는 오에 겐자부로의 역작인 이 소설은 만연원년이었던 1860년, 막부시대의 민중투쟁과 패전 후 일본 사회의 모습을 대비시키며 인간 불안 심리와 그 황폐함의 근저를 파헤친다.  

 

 

 오에 겐자부로가 1994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을 때, 한국에서는 놀라움과 시기심이 섞인 눈으로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오에가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 데에는 그의 작품의 질적 완성도보다는 국제적인 홍보 탓이 컸다는 말도 있었고 그만한 작품은 한국에도 얼마든지 있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한국에는 오에의 작품이 몇 편 번역되지 않은 상태였고 정작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인 『만연원년의 풋볼』은 소개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그의 다른 작품들이 [노벨 문학상] 수상작으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이후 뒤늦게 소개된 이 소설은 오에 겐자부로라는 거장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그는 이 소설의 주인공인 미쓰사부로라는 사내의 절망과 구원을 통해 전후 일본사회의 정체성을 근원적으로 보여준다. 그의 소설은 쉽게 읽히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이 소설은 서두부분의 접근이 용이하지 않다.

 장애자 아이와 알콜 중독의 아내 그리고 친구의 죽음 등, 좌절과 절망에 파묻힌 주인공의 심적 상태가 현실과 꿈의 구분 없이 모호하게 표현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두부분의 존재론적인 묘사 장면을 넘어서고 나면 잘 읽히는 소설이 되기도 한다. 한번에 읽어 내리기엔 분명 쉽지 않은 소설이지만 대가의 걸작이 지니는 요소를 간직한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