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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NOT FOR SALE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by 언덕에서 2010. 10. 7.

 

 

NOT FOR SALE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

 

 

 

 

 

미얀마 소년들은 어느 날 미얀마 남부의 자기들 마을에 잘 차려입은 태국 신사가 찾아왔다고 했다. 말쑥한 옷차림에 태국 말을 유창하게 하는 열네 살짜리 미얀마 소년과 함께였다. 신사는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마을 소년들이 태국에서 학교를 다니도록 학비와 생활비를 모두 지원해주겠다고 했다. “보세요. 여러분 지역 출신 아이가 얼마나 훌륭히 컸는지.” 남자는 동행한 소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러분의 아들을 치앙마이로 데려가게 해주신다면 이 아이처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여자아이를 떠나보내야 했다면 부족사람들은 망설였을 것이다. 하지만 남자아이라면 제 살길을 찾아 더 넓은 세상에 나가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많은 부모들이 이 태국 신사에게 아들을 딸려 보냈다. 하지만 신사는 치앙마이에 도착하자마자 소년들을 곧장 남창 성매매 업소와 섹스 바에 팔아넘겼다.

 

 

  <방콕의 환락가.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여자아이들이 팔려오는 곳이다. 위 간판의 pussy는 고양이를 의미하지 않는 다른 뜻이다.>

 

 이 책의 원제는 <NOT FOR SALE>이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사람은 사고파는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지구에는 5,000만 명으로 추정되는 노예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것이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수치라면 어떻겠는가? 번역본의 제목은 ‘누가 꽃들의 입을 틀어막는가’인데 나희덕 시인의 <봄길에서> “그 누가 안간힘으로 / 꽃들의 입을 틀어막고 있는 것일까”라는 시 구절을 차용하였다. 책을 읽는 내내 충격과 경악과 분노에 휩싸였다. 과연 이러고서도 우리가 스스로를 인간으로 부를 수 있을까 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이 책은 현대판 노예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 가난과 정치적 불안, 전쟁, 부정부패가 가족과 사회에서 버림받은 이들을 어떻게 벼랑 끝으로 모는지 말해준다. 캄보디아 난민 출신 스레이 네앙은 어린 시절 노예로 팔려가 수많은 폭력과 강간 등 갖은 고생 끝에 하갈 쉼터의 도움으로 이제 재봉사가 되었다. 인도 카스트 하층 계급인 마야의 가족과 친척들은 얼마 안 되는 빚 때문에 벽돌 가마에서 강제 노동하다가 국제정의선교회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물론 어린 여자아이와 유부녀들까지 가족이 보는 앞에서도 무수히 강간당했다. 우간다의 찰스와 마가렛은 '신의 저항군(LRA)'이라는 주술을 믿는 게릴라 반군에 납치당해 소년병이 되었다가 구출되었다. 몰도바의 나디아는 어린아이를 둔 엄마이다. 아이의 학비를 벌기 위해 이탈리아에 취업시켜준다는 꾐에 넘어가 인신매매되었다가 간신히 자유로워졌다. 그 과정에서 수년 동안 수십 차례의 강간과 폭행을 당했음은 물론이다.

 

 

<암스텔르담의 홍등가, 인신매매당한 동유럽 여성들은 네델란드나 독일로 팔려간다>


 

 동남아시아 아이들은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강제 노동한다. 인도에서 가난한 이들은 계급과 빚 때문에 노예로 살아간다. 동유럽의 젊은 여성들은 빈곤으로 인해 전세계의 사창가에 팔려간다. 아프리카 내전 지역의 부모들은 반군에 자식을 빼앗긴다. 아동 노동자, 성노예, 소년병, 강제 노역자. 이것은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 스무 살 베트남 신부가 한국에 온 지 일주일 만에 한국인 남편에게 살해당했다. 27세 연상의 남편은 심각한 정신질환을 앓았지만 그녀는 이 사실을 모른 채 맞선 한 번만으로 결혼했다. 지방의 윤락업소에서 일하던 여성들이 연이어 자살했다. 업소에서 이들은 ‘돈 버는 기계’처럼 착취당했고 사채와 연대보증으로 엄청난 빚을 졌다. 다른 한편에서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연예인들의 노예 계약에 대한 기사가 끊이지 않는다.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오랜 세월 노예 생활을 해온 사회적 약자들을 보도한다. 노예제는 과연 과거의 문제일까? 미국의 역사를 보면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근거로 노예제를 정당화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 위의 내용을 번역해보았다. 월남 신부를 소개하겠습니다. 3개월내에 데려갈 수 있구요. 왕복 6일이면 충분합니다. 20만위안(한화 약 3천만원)이면 되구요.  네가지 보장조건이 있는데 1. 처녀임을 보장하고 2. 3개월내에 데려갈 수 있으며 3. 절대로 추가 요금이 없고 4. 1년내 도망갈 경우 또 한 사람을 줌>

 

 

 1980년대 엘살바도르에서 친구 몇 명과 성공적인 인권 운동을 펼쳤던 저자 데이비드 뱃스톤은 개인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노예제를 끝내려면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만의 힘으로는 부족하며 따라서 많은 양심 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먼저 피해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가해자를 기소하려면 법률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해방된 노예들을 고용하려면 기업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노예제에 대해 조사하고 정책을 바꾸려면 학자의 도움이 필요하다. 피해자의 몸과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면 건강 관리사와 정신 건강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다.

 낫 포 세일 NOT FOR SALE 캠페인은 데이비드 뱃스톤이 2007년 이 책을 출간하면서 시작한 노예제 폐지 운동이다. 포럼과 행사를 개최하고 노예제 폐지 단체나 운동가를 지원하며 프리덤 스토어 사이트에서 전직 성매매 여성들이 만든 물품들을 판매한다. 낫 포 세일 캠페인은 기존의 노예제 폐지 운동과 구별되는 ‘스마트 액티비즘Smart Activists’의 모델을 제안한다. 전 세계의 개인과 소규모 단체를 엮어 지역사회에서 노예제를 근절하기 위한 고유의 해법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은 어떨까? 이 책에서 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섹스 관광을 즐기는 인신매매 가해국인 동시에 미국과 일본, 호주 등지에 성매매 여성을 수출하는 인신매매 피해국으로 그려진다. 노예제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사회에도 버젓하게 남아있는 수치스런 행태이다. 현대판 노예제는 지역 폭력배와 국제 범죄조직이 손잡은 기업형 범죄의 형태를 띤다. 현대판 노예 상인들은 급격한 사회화와 극도의 가난, 무력 분쟁, 폭발적인 인구 성장의 소용돌이에 빠진 전 세계의 가장 약한 고리들을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내가 금년에 읽은 책들 중에서 가장 좋은 책이다. 노벨문학상. 노벨평화상을 받아도 좋은 훌륭한 역작이다. 많은 분들께 일독을 권한다.

 

나는 사고팔 수 없습니다.

당신도 사고팔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물건이 아니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