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高朋滿座

거룩하고 경건한 건축물 『여기서는 그대 신을 벗으라』

by 언덕에서 2010. 9. 25.

 

 

 

거룩하고 경건한 건축물 『여기서는 그대 신을 벗으라』

 

 

 


몇 년 전 부터 나는 우리나라 각지를 돌아다니며 유서깊은 사찰과 성당, 교회 등을 취재 / 집대성하여 한 권의 책을 만들리라는 거창한 계획을 갖고 있었다. 사진 촬영기술이 부족하다고 늘 아쉬워 해왔지만 그간 상당량의 자료도 축척한 상태이다. 순교자 김범우의 집이었던 천주교 명동성당, 부산 용두산 공원 전체를 뜰로 가지고 있는 부산중앙성당, 1897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두 번째의 교회인 백령도 중화동 교회, 진주시 사봉면 중촌마을 천주교 순교자 성당, 템플 스테이가 좋았던 김천 직지사, 내가 첫영세를 받았던 부산 서면성당, 법정 스님의 손때가 묻어있는 송광사 불일암, 초가을의 햇살처럼 포근한 인상이었던 남해 금산 보리암, 내가 죽기 전에 청소부로 일하고 싶은 제주도의 성산포 성당, 안개 속에서 빛나는 보석같은 청도 운문사 사리암 등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책 『여기서는 그대 신을 벗으라』가 발간됨으로 인해 그 꿈은 당분간 접어두어야 할 것 같다.

 

 

 이 책 『여기서는 그대 신을 벗으라』를 읽으면서 나는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과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적 답사기>를 생각했다. 둘 다 대단한 필력을 가진 작가와 미술사학자지만 평범한 기자가 쓴 이 책도 그들의 책에 못지 않다. 저자 임광명은 부산일보사 문화부 종교담당 기자로 오래 몸담고 있는 현직 기자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노라면 딱딱한 문체와 신문기사를 방불케 하는 건조함에 지루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유 모를 그 무엇 때문에 책에 몰입되어 감탄하고 감동해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최고의 지성과 고도의 기술과 가르침이 갈무리된 대한민국 종교건축물 38곳을 답사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풀어내었다. 이 책의 제목 ‘여기서는 그대 신을 벗어라’는 성경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지은 제목으로 보이는데 모든 종교의 땅은 거룩하므로 경건하게 임하라는 뜻이리라.

 


 교회나 사찰 등 종교건축은 본질적으로 다른 건축과는 다르다. 거기서는 거룩함과 세속적인 것, 영원함과 무상함이 서로 만난다. 신 혹은 절대자를 향한 예배의 공간일 뿐만 아니라 기쁨이나 슬픔, 고통과 환희 등 모든 인간적 관심사를 해소하는 안식의 공간이기도 하다.

 건축가 승효상은 ‘교회 건축’과 ‘교회적 건축’은 다르다고 했다. 대충 지은 건물에 뾰쪽탑을 올리고 붉은 네온의 십자가를 세우면 ‘교회 건축’은 될 수 있겠지만 ‘교회적 건축’은 아니라는 것이다. ‘교회적’인 것은 사람에게 열려진 것이다. 교회 건축은 근본적으로 신을 감동시키는 건축이 아니라 인간을 감동시키는 건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은 천주교, 개신교, 대한성공회, 불교, 원불교, 이슬람교, 천도교 등 각 종교의 건축물에서 보이는 내·외적인 아름다움과 건물의 가치를 잔잔하면서도 핵심을 빠뜨리지 않는 필체로 잘 전달하고 있다. 이 책에는 각 종교건축물의 역사와 특징, 독특함과 가치들을 직접 찍은 사진과 함께 상세히 알려주고 있다.  

 

< 범어사 독성각 어칸문틀의 여인상 >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놀라고 또 그만큼 축복 받은 은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자주 들리면서 그냥 지나쳤던 범어사의 ‘독성전’이 다른 나라에는 없는 전각이며 민속학계에서는 우리 고유의 민간신앙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을 배웠다. 육당 최남선은 아예 독성을 단군(Tengri)으로 비정하기도 했다니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마산의 양덕성당, 주교좌 성당이다>

 

 20대 중반, 친구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먹먹해하면서 장례미사를 치루기 위해 내가 방문했던 마산 양덕성당은 고 김수근(1931 ~ 1986)의 역작이다. 이 성당으로 인해 한국에서도 성당 건축이 하나의 예술작품이 된 획기적인 건축물임도 알게 되었다.

 

<범영루는 불국사 경내에 들어서면 보이는  좌우에 청운.백운교와 연화.칠보루를 거느리고 있는 중심 누각이다>

 

 불국사의 범영루 살펴보자면 현재의 정면 1칸, 측면 3칸의 단층인 현재 모습보다는 훨씬 큰 최소 2층 이상의 건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1970년대 이뤄진 불국사 복원의 대표적인 실패사례인 것을 저자는 통렬하게 지적하고 있다.

 

 <익산의 원불교 성지, 소태산 대종사를 비롯한 초기 교인들이 원불교의 기반을 다끈 곳이다>

 

 <천도교의 발상지,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구미산 자락의 용담정은 수운 대선사가 하늘로부터 도를 얻어 가르침을 펼친 곳이다>

 

 <부산 남산동 전철역 옆에 자리한 이슬람 부산성원은 리비아 정부의 지원으로 1980년에 지어졌다>

 

 <대한성공회 강화읍 성당은 1899년 지어진 전통 한옥으로 현존 최고의 성당이다> 

 

 <강원도 횡성에 자리한  풍수원 성당은 1907년에 탄생한 강원도 최초의, 또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이다>

 

 그밖에 익산의 원불교 성지, 경주의 천도교 용담정, 가까운 지척에 있으면서도 들리지 못한 이슬람 부산성원, 순수 한옥으로 지은 대한성공회 강화읍 성당, 무릎 꿇어 미사를 보게 되어있는 103년 된 횡성 풍수원 성당 등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것도 커다란 축복으로 여겨진다.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저자는 출가한 종교인도 아니고 또 건축학도 전공하지 않은 이로서 각 건축물에 대한 정밀한 감식이나 비평은 애초에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수많은 법문과 설교, 강론에서도 얻을 수 없었던 무언의 가르침, 종교적 희열 등을 얻고 사색할 수 있다. 또한 지극히 엄숙한 종교의 가르침을 제각각의 건축물에서 나름대로 느낄 수 있다.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노라면 어느새 교회나 성당의 한 곳, 혹은 사찰이나 성지의 한 곳에 서서 건축물을 가만히 살펴보고 있는 듯한 느낌에 빠지게 된다.

 이 책은 좋은 책이며, 제 종교에 대해서 선입관이나 편견이 배제된, 미덕을 갖고 있는 융숭한 기쁨의 책이다. 아쉬운 점은 저자가 설명한 각 건물의 역사, 내.외적인 아름다움, 가치, 특징을 이해하기에는 화보(사진)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그나마 게재된 화보에서도 설명이 붙지 않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 점을 보완하면 보물같은 책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끝으로, 우리나라의 종교건축물에 관심있는 분들을 위해서 이 책에 소개된 38곳의 건축물 LIST를 아래에 적어 놓는다.

 

1. 부산 구덕교회_ 깔끔한 절제와 진중한 함축을 담다
2. 부산 안국선원_ 지혜의 눈을 형형하게 밝혀 놓다
3. 부산 수영로교회_ 복음화를 이끄는 익투스가 되다
4. 대한성공회 부산주교좌성당_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가 되다
5. 부산 범어사 팔상독성나한전_ 세 불전을 하나로 꿰다
6. 부산 남천성당_ 빛과 색의 향연에 취하다
7. 부산 홍법사 대웅전_ 둥글게 차별없이 세상을 끌어안다
8. 이슬람 부산성원_ 엄숙한 직선과 부드러운 곡선으로 말하다
9. 부산 구포성당_ 곡선이 직선의 날카로움을 눅이다
10. 마산 천주교 양덕주교좌성당_ 김수근의 역작, 바위산에 핀 수정꽃
11. 양산 통도사 금강계단과 대웅전_ 불법(佛法)은 사방으로 열려 있음이라
12. 경산 경산교회_ 영혼을 흔드는 찬미와 영광의 빛
13. 울산 언양성당_ 순교성지에 세워진 신앙의 혼
14. 울산 꽃바위성당_ 자연을 닮음으로써 하느님에게 다가서다
15. 고성 천사의 집 성당_ 삼각추와 원통의 어우러짐에서 얻는 미학
16. 경주 불국사 범영루_ 날아갈 듯 팔작의 지붕을 하늘에 펼치다
17. 경주 천도교 용담정_ 하늘로부터 가르침을 얻어 도를 펼치다
18. 김천 평화성당_ 영원과 무상이 함께 만나다
19. 영주 풍기동부교회_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요한계시록의 구현
20. 영주 부석사_ 불교 건축의 영원한 고전으로 통하다
21. 안동 봉정사 영산암_ 허(虛)의 미학, 비움으로써 채우다
22. 순천 송광사 우화각 · 능허교_ 불국(佛國)으로 가는 다리
23. 전주 전동성당_ 고색이 창연한 아름다운 자비
24. 전주 서문교회_ 백 년의 역사가 어찌 가벼울까
25. 영광 원불교 영산성지_ 깨닫기 위해 근본으로 다시 돌아가자
26. 구례 화엄사 각황전_ 땅과 산과 하늘이 서로 조응하며 에우다
27. 익산 나바위성당_ 한옥 기와와 고딕 첨탑이 어우러지다
28.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 대각전과 소태산기념관_ 텅 비어 청정한 일원의 진리에 어울리다
29. 보은 법주사 팔상전_ 탑인가, 전인가, 아름다운 법이 머무는 곳
30. 원주 만종감리교회_ 한없이 낮아진 교회, 직접 다가감으로써 몸으로 느끼다
31. 횡성 풍수원성당_ 마룻바닥에 꿇어 앉아 미사를 올리다
32.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_ 로마네스크 양식, 한국 풍토와 어울리다
33. 고양 풀향기교회_ 빛, 바람, 소리를 담은 수상한 지하의 교회
34. 대한성공회 강화읍성당_ 전통 한옥으로 지어진 현존 최고(最古)의 성당
35. 안성 천주교 미리내성지_ 온 삶을 내던져 신앙을 지키다
36. 제주도 지니어스 로사이_ 바람과 돌, 바다를 안고 삶을 성찰하라
37. 제주도 강정교회_ 오름, 하늘오름이라고 부르고 싶다
38. 제주도 약천사 대적광전_ 보시한 이들의 공덕을 예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