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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일상을 벗어나 열망하던 꿈의 길 위에 서다! 『히말라야 걷기 여행』

by 언덕에서 2010. 10. 29.

 

 

일상을 벗어나 열망하던 꿈의 길 위에 서다!  히말라야 걷기 여행


 


 

 

지은이 김영준은 의사로 매일 병원에서 아이들을 진료하며, 주말마다 수없이 산길을 걸으며 가슴 깊이 품은 소망이 있었다. “아, 히말라야에 한번 가보고 싶다!” 히말라야 언덕을 오르내리고 싶었고, 좁은 벼랑길과 벌판을 표표히 걷고 싶었다. 걷다가 힘들면 차를 마시며 자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고 싶었고, 같은 소망을 안고 찾아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정을 나누고 싶었다. 그래서 14박 15일의 일정으로 떠났다. 히말라야로. 게다가 남들이 잘 가지 않는 8월 몬순 우기에 그곳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렇게 썼다. “산이 내게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산에게로 한 걸음씩 다가간다. 그가 내게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에게로 가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다녀와서 히말라야에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시간을 내 여행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세세히 알려주리라는 일념에서다.

 

 

 

 “흔히 5천 미터 이상은 신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네팔의 히말라야 산맥 쿰부 트레킹은 잠시 신의 영역을 넘보기는 하지만 대부분 사람이 살고 있는 마을을 잇는 길을 걷는다. 길을 걸으며 그저 바라만 보겠다는 사람들에게 히말라야의 여신은 화를 내지 않는다. 넉넉한 품으로 감싸 안아줄 뿐이다.”

 꼼꼼하고 걱정 많은 이 초보 트레커는 이런 순수한 다짐으로 여행 동안의 날씨, 경로, 소소하게 겪은 일들, 길에서 만난 현지인과 트레커, 소중하고 아름다운 풍광 등을 생생하게 기록하여 이 책을 만들었다. 비 오는 히말라야 산 언저리를 걸으며 이렇게 썼다. “비는 과거 지향적이다. 옛 기억을 자꾸만 떠오르게 한다. 비는 기억을 추억으로 변화시키는 촉매이자 밀과 쌀을 술로 발효시키는 효모이다. 기억이 비를 만나면 추억이 되고, 추억이 비에 젖으면 눈물이 된다. 삶의 고비마다 비가 내렸다.”그래서 그의 히말라야 여정은 멀리서 히말라야를 갈망하기만 하는 이들에게 직접 떠나 볼 용기와 희망을 전한다.

 

 

 

 

 이 책을 읽노라면……. 에베레스트의 정상에 서려는 것이 아니라면 히말라야는 그렇게 두렵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저 바라보는 경외의 대상이 아니라 가서 직접 겪어보고 느껴봐야 하는 체험의 대상이다. 지은이는 15일간 쿰부 히말라야(에베레스트 지역)를 걸었다. 인기 있는 안나푸르나 지역보다 몬순의 영향을 덜 받고 우기의 골칫거리인 거머리가 없다는 이유로. 그곳은 남들이 우려하는 것만큼 두려운 곳이 아니다. 히말라야는 여름에는 야생화의 천국이라고 한다. 여름의 히말라야 트레킹은 비가 잦아서 불만이지만, 다채롭게 피어난 야생화를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점은 우기에만 누릴 수 있는 특별한 행운이라고 한다. 걸을 수만 있다면 누구나 갈 수 있다. 수칙을 잘 지켜 고소증만 예방한다면 체력이나 신체 조건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 밧줄을 잡고 암벽을 타야 하는 것도 아니고, 빙벽화를 신고 얼음 위를 올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걸을 수 있는 두 다리만 있으면 된다.

 

 

 

 

 요즘은 언저리길 산행이니 둘레길이니 해서 꼭 정상에 오르지 않고도 산을 즐기는 법이 많이 소개되고 있다. 히말라야도 마찬가지다. 휴가로 일주일 정도 잡고 떠나봄직도 하다. 실제로 유럽 사람들은 5일이나 7일만 걷다 가기도 한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네팔까지 가는 직항편도 생겨 히말라야는 더욱 가까워졌다. 푼힐 전망대는 3박 4일이면 다녀올 수 있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일주일이면 가능하다. 쿰부 지역도 5일, 7일 일정으로 히말라야 걷기여행이 가능하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서 이렇게 적었다.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히말라야에 가본 사람과 히말라야에 가보지 못한 사람, 둘로 나눌 수 있다……. 히말라야에 다녀온 후 나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분명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도전하고 성취하는 기쁨이 있었다. 걷다가 쉬고 먹다가 자는 단순한 생활이 주는 평화로움의 신비를 알아버렸다. 뉴스가 없어도 전자기기가 없어도 삶은 전혀 누추해지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빛나는 삶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