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秋夕)
신석정 (辛夕汀. 1907∼1974)
가윗날 앞둔 달이 지치도록 푸른 밤
전선에 우는 벌레 그 소리도 푸르리
소양강 물소리며 병정들 얘기소리
그 속에 네 소리도 역력히 들려오고
추석이 내일 모레 고무신도 사야지만
네게도 치약이랑 수건도 보내야지
- <빙하>(정음사.1956.제3시집)
사랑하는 아들아, 네가 입대한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추석이 다가오는구나. 잘 지내느냐?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느냐?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은 군대를 다녀온 모든 선배가 알고 있는 경험이지만 답답하구나. 그런데 어디 아픈 데는 없느냐? 몇 달 동안 소식이 없으니 궁금하기 짝이 없구나. 길을 가다가도 이병, 일병 계급장을 단 앳된 군인들을 보면 네 생각에 그만 눈물이 난다.
네가 입대하기 전인 올해 1월 어느 날 밤, 너와 둘이서 성당 앞 곰장어집에서 소주를 마셨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너는 나의 아들이요, 대한의 아들, 너는 나의 자~랑이요 조국의 방~패……. ' 그날 어린아이같이 맑은 눈빛으로 "세상에서 저같이 좋은 아버지를 만난 사람이 어디에 있겠어요?"라고 말했던 목소리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지금, 베란다에서 보는 달빛은 위의 옛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지치도록' 푸르구나. 잘 지내고 있겠지만 불현듯 네 생각이 나서 이렇게 몇 자 적어본다. 아버지는 변함없이 지내고 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제대하는 그 날까지 항상 건강해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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