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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문태준 / 일가(一家)

by 언덕에서 2010. 8. 21.

 

 

 

 

일가(一家)

 

                                    문태준(1970~ )

 

 

귀뚜라미 한 마리가 내 방에 찾아왔네.

사실은 내가 귀뚜라미를 불러들였지.

과일이 썩으면서 벌레를 불러들이듯이.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어제보다 훨씬 커졌지.

내 이가 다 시릴 정도였으니.

새벽녘 한참 울적엔

서로에게

마치 엉성하게 쌓인 돌담이라도 되어

너도 나도

더는 갈 곳 없어

더는 갈 곳 없이

서로에게

받힌 돌처럼 앉아서.

 

 

 


낮 밤 없이 떼거지로 울어 쌓는 더위, 매미 소리 잦아들려나. 내벽녘 귀뚜라미 울음, 찬바람 낌새 시리다. 매미 울음 콘크리트 벽 뚫는 소리라면 귀뚜라미 울음은 돌담 사이 틈새를 부는 바람 소리, 휑하니 뚫려가는 마음에 시리게 부는 바람. '더는 갈 곳 없어 더는 갈 곳 없이' 처럼 들리는 소리. 너와 나 외로움이 외로움을 부르며 쌓여 가는 가을 소리.<이경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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