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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미야모토 테루 장편소설 『우리가 좋아했던 것(私たちが好きだったこと)』

by 언덕에서 2010. 7. 5.

 

미야모토 테루 장편소설 『우리가 좋아했던 것(私たちが好きだったこと)』                                  

 

 

 

 

일본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宮本輝, 1947~ )가 1995년에 발표한 장편 연애소설이다. 1997년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어 시대의 감수성이 드러나는 깊은 여운을 주는 작품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미야모토 테루는 1978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화창한 3월의 어느 날, 우연히 한 아파트에 모여 살게 된 네 젊은 남녀의 우정과 사랑, 그리고 꿈과 행방을 이야기하고 있다. 독립을 꿈꾸는 조명 디자이너 요시, 네팔에만 사는 희귀한 나비를 좇는 카메라맨 '당나귀', 불안신경증을 앓으면서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회사원 아이코, 사랑할수록 상처만 받는 미용사 요코가 그 네 주인공이다. 그들은 한집에서 저마다 자신의 꿈과 사랑을 이루기 위해 서로를 격려하며 열심히 살아간다.

 그러나 봄날의 기적 같은 행복도 잠시일 뿐. 평화로운 봄 뒤로 지루하고 우울한 장마가 오고, 세상을 얼려버릴 듯한 매서운 겨울이 찾아온다. 저자는 이 소설에서 늘 봄처럼 화창할 수만은 없는, 언제나 반쯤은 한여름이고 반쯤은 한겨울 같은, 극점을 오가는 청춘의 초상을 과장 없이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산뜻한 문체와 간결한 구성 속에 인생과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 소설이다.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일본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宮本輝, 1947~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칠십육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공단주택 아파트에 당첨된 조명 디자이너 요시는 네팔에만 사는 희귀한 나비를 좇는 카메라맨 친구 '당나귀'와 함께 살기로 한다. 들뜬 기분으로 술집에 간 이들은 우연히 두 여성과 동석하게 되고 함께 어울리다가 모두 아파트로 몰려가 2차까지 마시고 헤어진다. 며칠 후 두 남자의 이삿날, 짐을 가득 실은 트럭과 함께 두 여자가 들이닥친다. 남자들은 당황하지만, 술자리에서 함께 살기로 선언식까지 했다는 여자들의 말 때문에 내치지도 못하고 집으로 들이고 만다.

 그리고 그날부터 이 네 사람의 공동생활이 시작된다. 요시는 불안신경증을 앓는 회사원 아이코에게 호감을 느끼고, 온순한 당나귀는 매사에 자신만만한 헤어디자이너 요코의 매력에 빠져든다.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면서 행복했던 그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엇갈리는 사랑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한다.

 연인 아이코의 마음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걸 느끼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요시. 옛 남자 때문에 새로운 사랑인 당나귀를 아프게 하는 요코. 그들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자신의 에고 사이에서 흔들리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고통의 터널을 지나면서 길고 지루한 장마 같은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기도한다. 그렇게 그들의 사랑은 떠나거나, 아니면 다시 돌아온다.

 긴 장마 후에 햇살이 비치는 것이 세상살이다. 그 후 이 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이 년 후 그들은 빗소리를 들을 때마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의 꿈과 행복을 위해, 우정을 위해, 소중한 젊은 날의 그 무엇을 위해 무모하게 순수하고도 뜨거웠던 그 시절을 각자의 자리에서 추억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70년대 후반에 보았던 'A window to the sky'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누구에게나 풋풋한 청춘의 시절이 있다. 현실의 눈으로 봤을 때 어리석은 사랑에 모든 것을 걸만큼 투명한 시절. 이 소설의 주인공들은 그런 시절에 서로를 만난다. 착실한 요시, 환상의 나비를 쫓는 '당나귀', 아픈 사랑을 가지고 있는 요코, 그리고 불안증을 앓고 있는 아이코. 그들은 무모하게 만나고 함께 살기 시작한다.

 사랑이 처음 찾아왔을 때, 어쩔 수 없다고 느끼는 그런 당연함으로 그들은 한 집에서 서로를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그리고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서로에게 헌신한다. 마치 그러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처럼 서로를 위해 빚을 내어 돈을 빌려주고 돕는다.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만난 것을 기적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는 동안 너무 무모하고 희생적이며 낡고 계산적인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리석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우리도 한 때 무모한 사랑에 빠져들었지 않았는가? 비단 이 책의 주인공들만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그 어떤 계산 없이 철저하게 빠져드는 것,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세상도처에 수없이 존재한다.

 그러나 인정해야 하는 것은 그렇게 무모하게 빠져든 사랑도 언젠가는 끝나게 된다는 것이다. 아이코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던 요시는 다른 사랑을 선택하는 아이코를 순순히 보낸다. 그녀를 대학에 보내기 위해 희생했던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녀가 꼭 다른 세상을 향해 날갯짓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A window to the sky'는 '저 하늘에 태양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상영되었는데 '조건있는 사랑'과 '조건없는 사랑'을 대비시킨 영화로 기억된다. 그래서 30여년 전에 보았던 영화가 이 소설을 읽는 중에 떠오른 것 같다>

 

 상대에게 준 것을 것을 손해라고 다시 되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인간에게 과연 무엇이 행복한 것인지는 긴 안목으로 봐야한다'는 요시의 말처럼 인스턴트식품처럼 재빠르게 익혀서 먹어버리는 그런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없다. 사랑은 그것을 할 당시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라진 후에도 우리 마음속에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끝나버렸지만 사라지지 않을 청춘의 날들을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 한다. 담담하지만 요시와 아이코가 마지막으로 만나 헤어지는 장면에서는 처연한 기분이 든다. 튀다 못해 엽기적이기까지 한 오늘날의 사랑의 방식과는 거리가 있어서 더욱 소중한 느낌이었다.

 기적과도 같은 사랑은 곧 끝이 난다. 봄이 가면 여름과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듯이 사랑이 끝나면 또 다른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희미하고 아련하게 남은 추억뿐이지만 사랑이 있었으므로 그래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을 쓴 미야모토 테루( Teru Miyamoto, 宮本輝)는 20세기 후반 일본 순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이다. 그는 비를 피하려고 잠시 들른 서점에서 읽은 유명작가의 단편소설이 너무나 재미있어서 카피라이터를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한다. 1947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났다. 오테몬학원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산케이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로 근무하다가 1975년 신경불안증으로 퇴직했다. 이후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여 1977년 『진흙탕 강』으로 다자이오사무상을 받으며 데뷔했고, 이듬해 1978년 『반딧불 강』으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면서 작가로서의 지위를 다졌다. 폐결핵으로 일 년 가까이 요양한 뒤 곧 다시 왕성한 집필활동을 계속한다. 1987년에는 『준마』를 발표하면서 역대 최연소인 40세로 요시카와에이지 문학상을 받았고, 같은 작품으로 JRA상 마사문화상을 받았다. 이후 아쿠타가와상, 미시마유키오상 심사위원을 비롯하여 각종 문예지의 신인상 심사위원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