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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현대소설

G. G. 마르케스 중편소설『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Memoria de mis putas tristes)』

by 언덕에서 2010. 6. 11.

 

 

G. G. 마르케스 중편소설『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Memoria de mis putas tristes)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1928∼2014)의 중편소설로 2003년 발표되었다. 2004년, 77세에 이른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90세 노인과 14세 소녀의 사랑을 다룬 충격적인 신작을 출간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라틴 아메리카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언론은 흥분과 기대로 가득 찼다. 출간 전부터 각종 리뷰와 인터뷰가 이어졌고, 공식 배포 1주일 전에 교정본을 복사한 해적판이 나돌 정도였다. 

 당시 스페인 및 라틴 아메리카 권에서는 출간과 동시에 단번에 1위로 뛰어올랐다. 2004년 라틴 아메리카 문학계의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된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은, 대가의 작품이란 독자들에게 생의 고뇌와 불안만을 일깨우는 것이 아니라 기쁨과 환희 또한 선사한다는 것을 새삼 일깨워 준다.

  이 책을 번역한 이는 옮긴이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서글픈 언덕’은 사랑은 상호적인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옆에 있으면서 그를 느끼기만 해도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 인생의 황혼기에 집필한 이 작품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우리에게 진정한 사랑이란 그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그걸 절대로 잊지 않게 해준다. 이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기억의 고통스러운 강이라기보다는, 현재에 관한 놀라운 이야기다.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1982[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라틴 아메리카 대륙이 겪어야 했던 역사의 리얼리티와 원시 토착 신화의 마술 같은 상상력을 결합하여 새로운 소설 미학을 일구어냈다. 때문에 그에게는 마술적 리얼리즘의 창시자라는 칭호가 주어졌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지우며 그 스스로 전혀 새롭고 경이적인 세계를 창조해 가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작품들은 한편으로 대단히 사실적이며 작가의 실제 경험들이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된다. 다른 한편으로는 개별적 구체성이나 개연성을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으로 독자들을 매혹시켜 왔다.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의 뒷골목, 소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인생의 황혼기에 이른 90세의 노인이 주인공이다. ‘서글픈 언덕’이라는 필명 외에는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노인은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라 파스 신문>의 기자로 칼럼을 써왔다. 그는 스페인어와 라틴어 교사로 일한 적이 있을 뿐, 다른 직업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는 열두 살 때 처음으로 사창가 최고의 창녀 카스토리나로부터 사랑하는 법을 배운 뒤로는 잠자리를 같이한 여자에게 늘 돈을 주었다. 딱 한 번, 파괴적일 만큼 강력한 성적 매력으로 가득한 여인 히메나 오르티스와 결혼할 뻔했다. 오직 밤의 여인들만이 줄 수 있는 자유와 너그러움을 포기할 수 없어 끝내 결혼식 날 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로도 내내 창녀들과 더불어 지낸 인물이다.

 소설의 여주인공인 14세 소녀는 단추 공장에서 하루 종일 200개의 단추를 달고 어린 동생들과 류머티즘에 걸린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가난한 하층민 노동자다. 한때 네그라 에우페미아의 유서 깊은 사창가에서 최고의 포주로 명성을 떨쳤던 로사 카바르카스는 자기네 잡화 가게에 들른 소녀들 중에 쓸만한 여자애들을 골라 기초적인 교육을 시켜 창녀로 만드는 늙은 여자이다. 바로 그 로사 카바르카스가 옛 단골을 위해 고른 인물이 바로 이 14세의 어린 소녀다. 난생처음 남자를 맞게 되어 겁을 집어먹은 소녀를 위해 로사 카바르카스는 진정제를 만들어 마시게 했다. 노인이 방에 들어갔을 때 소녀는 깊이 잠들어 있다.

 잠든 소녀를 바라보던 노인은 욕실로 들어가 용무를 보고, 그때 거울 속의 늙은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절망한다. 소녀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져보지만, 결국 모욕을 당한 듯 슬퍼 보이고, 흑도미처럼 차가운 그녀를 깨운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반문하며 소녀 곁에서 그냥 잠든다. 노욕과 순수 속에서 갈등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튿날 포주 로사 카바르카스는 전화를 걸어서는 잠든 소녀를 건드리지도 않고 그냥 나온 노인을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고 화를 낸다. 그리고 다시 한번 기회를 줄 테니 이번에는 반드시 일을 치르라고 한다. 그러나 두 번째도 세 번째도 역시 노인은 잠든 소녀를 바라보며 노래를 불러주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땀을 닦아줄 뿐이다. 그러는 사이 노인은 잠든 소녀를 점점 더 사랑하게 되고, 그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자신의 늙음과 목전의 죽음도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노인은 소녀와의 사랑이 현실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영원히 자신만의 꿈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것은 자기 자신과 타자에게 엄격하고 흔들림 없는 태도를 유지해 왔던 사회적 명사인 주인공이 끝끝내 감추어 왔던 자신의 또 다른 모습과도 관련이 있다. 지독하게 외롭고, 슬프고, 부끄럽고, 여리디여린 소년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어눌하고 수줍어하는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왔고, 사창가의 최고 난봉꾼처럼 살아왔지만 정작 진정한 사랑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가졌었다. 그러나 90세에 이르러서야 14세의 소녀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 노인은 슬픔으로 가득하다. 늙음과 소외와 죽음으로 이어지는 생의 모멸과 치욕이 있다. 그러나 저속하고 비루한 것들에 굴복하지 않는 자존과 위엄으로 노인은 무엇보다도 마지막 남은 단 하루조차도 “살아있음” 그 자체의 경이를 예찬한다. 여기서 소설은 마무리된다.

 

  <전통의상을 입은 콜롬비아의 아리따운 소녀들.  소설 속의 주인공도 이 또래의 나이였을 것이다>

 

 

 일전에 KBS - 1 TV에서 다문화가정의 이야기를 다룬 ‘러브 인 아시아’라는 프로를 보았다. 한국인 외항선원과 결혼하여 한국에 이주한 콜롬비아 여성이 주인공이었다. 마르케스의 나라인지라 유심히 보았는데 10년만에 고국인 콜롬비아를 찾아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그녀는 고향마을에 도착해서는 “어머, 아무런 변한 게 없이 10년전 그대로 이네!”하며 놀라워 했다. 역설적으로 그것은 10년이 지나도 발전된 모습없이 빈곤한 남미 대륙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멘트였을 것이다.

  신현림 시인이  '생애 최고의 소설'이라고 극찬했던『백년 동안의 고독』은 마콘도(Macondo)라는 가공의 땅을 무대로 하여 부엔디아 일족의 역사를 그린 작품이다. 폭력과 가난으로 점철된 20세기 전반기의 콜롬비아의 정치적 환경 속에서 살아온 마르케스는 금세기 최대의 걸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이 작품에서 중남미의 정치적·사회적 현실에 대한 풍자를 신화적인 수법으로 나타냈다. 현대의 중남미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혈육들의 모습을 이 작품의 등장인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가르시아 마르케스만의 독창적인 서사 기법은 신작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소설이 보여주는 배경과 인물 설정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실제 경험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다.

 한때 법학도였고, 젊은 시절 자유파 신문 <엘 에스펙타도르>지의 기자로 활동하며 비판적이고 날카로운 정치 칼럼을 썼던 그는 1950~60년대에는 콜롬비아 바랑키야에서 ‘동굴 그룹’ 화가들과 어울리며 예술가들과 저널리스트들, 그리고 창녀들과 더불어 살았다. 소설 속에는 이 ‘동굴 그룹’ 화가들의 실명과 다양한 실존 인물들이 언급되고 있어서 소설인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실화인지가 구분되지 않는다.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20년 전에 이미 이 소설의 구상을 처음 시작했다. 당시 그는 역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잠자는 미녀의 집』을 읽고 매우 감명을 받았고 “이것이 바로 내가 쓰고 싶은 바로 그 소설이다.”라고까지 말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 속에서도 노인과 소녀의 성과 사랑이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하고 있다. 또 다른 일화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82년 파리에서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잠자고 있던 아름다운 여인을 7시간 동안 지켜보다가 소설적 착상을 얻었다고 한다. 이러한 실제 경험들과 그의 독서 경험은 소설 속에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만의 독특한 환상적 기법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나는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시적 방종에 불과하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날 오후, 그녀도 고양이도 없이 집으로 돌아오면서, 사랑 때문에 죽는 것은 가능한 일일 뿐만 아니라, 늙고 외로운 나 자신이 사랑 때문에 죽어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와 정반대의 것도 사실임을 깨달았다. 즉, 내 고통의 달콤함을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꾸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본문 112~113쪽)

 그리고 바로 이 표현에서 우리들은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대가임을 또 한 번 인정하게 된다. 마르케스는 일견 도발적이고 파격적일 수 있는 소재를 대단히 아름답고 낭만적인 러브 스토리로 승화시켰다. 그 속에는 늙음과 소외와 죽음으로 이어지는 생의 모멸과 치욕이 있다. 그러나 저속하고 비루한 것들에 굴복하지 않는 자존과 위엄이 있는데 무엇보다도 마지막 남은 단 하루조차도 “살아있음” 그 자체의 경이를 예찬하는 작가의 성실한 에너지가 소설을 충만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