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밀러 장편소설 『남회귀선(Tropic of Capricorn)』
미국 소설가 헨리 밀러(Henry Valentine Miller.1891∼1980) 의 장편소설로 1939년 발표되었다. <북회귀선>과 쌍벽을 이루는 헨리 밀러의 또 다른 대표작인『남회귀선』은 1997년 국내에 원전 완역되었다.
『남회귀선』의 배경은 <북회귀선>의 프랑스에서 미국의 뉴욕으로 바뀐다. <북회귀선>에서 1인칭 주인공이 만났던 숱한 여인들이 ‘파리’라는 도시의 분신이었듯, 『남회귀선』에 등장하는 모든 여인들에게는 1930년대 뉴욕의 그림자가 투영되어 있다. 헨리 밀러의 작품 가운데에서도 특히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이 작품은 소위 풍요의 나라, 부와 행복의 나라라는 현대 미국에서 인간이 겪고 있는 기계화와 소외현상의 실상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타락의 구렁텅이에서 파리와 뉴욕의 뒷골목을 전전하며 매매춘과 간통의 엽색행각을 일삼는 호색한의 혼란한 의식, 일면 혐오감마저 불러일으킬 수 있을 그의 기록을 ‘작품’이라 일컬을 수 있게 해주는 타당한 근거는 무엇일까? 7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헨리 밀러의 작품은 자못 당혹스럽다. 제임스 조이스의 계보를 잇고 솔 벨로우와 노만 메일러를 비롯한 다음 세대 작가들에게 하나의 유산으로 계승된 헨리 밀러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지도 궁금하다.
이 작품은 밀러의 자전적 소설이다. 대학을 중퇴한 후 여러 직업을 전전, 방랑생활도 하다가 댄서 ‘준’과의 만남, 첫부인과의 이혼, 준과의 이혼 등으로 이어진 파노라마를 쓰고 있다. 밀러의 대부분 작품이 그렇듯 남녀의 성생활을 적나라하게 그려내어 본국에서는 판금 처분을 받았으며 프랑스에서 먼저 출판되었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브루클린의 가난한 재단사 아들로 태어나 어머니의 사랑을 받아 본 적이 없는 ‘나’는 짝사랑으로 끝나고 만 첫사랑의 폭풍이 지나고 견딜 수 없는 고독감에 휩싸였다. 결혼생활과 연상의 여인과의 정사에서 만족하지 못하고 늘 공허감을 느낄 뿐이었다. 서른이 다 된 나는 뉴욕 시의 코스모데모닉 전보회사의 배달원 고용주임으로 바쁘게 일하고 있었지만, 회사는 현대 미국의 혼돈상 그 자체이고, 매일 마주치는 노동자들은 기계문명이 초래한 부패와 광기에 물든 무리들뿐이었다.
나는 그 가운데 12명의 남자에 관한 소설을 쓰는 것에서 삶의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자신을 철저하게 파괴하여 정신적으로 다시 태어나야 함을 자각했다.
그 무렵, 나는 마라라는 신비한 매력을 지닌 직업댄서를 만나 섹스와 사랑이 일치되는 체험 속에서 자신의 사회적 속박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자유롭게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
하지만, 마라는 사실 신비한 베일 너머 허영으로 가득찬 여자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되면서 둘 사이는 파국을 맞았다.
그러나 나는 그녀와의 ‘순수한 결합’을 통해 발견한 ‘생의 리듬’을 자기 현실의 중요한 바탕으로 삼아 홀로 내일을 향해 나아가기로 했다.
1939년 출판된 『남회귀선』은 <북회귀선>서 10년쯤 거슬러 올라간 1920년부터 1924년까지의 미국 뉴욕 이야기다. 원제의 Capricorn은 본디 ‘염소 뿔’을 뜻하는 라틴어로, ‘염소’는 영어로 ‘호색한’ 및 ‘대역ㆍ희생’을 뜻한다. 점성술에서는 Cancer(게자리)와 정반대 자리에 있는 염소자리를 가리키는데, 이 별자리는 종교적 의미를 지니며 죽음을 통한 재생을 상징한다.
자기를 표현하는 데에 집착하는 한 예술가가 신과 같은 존재 즉,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에서 3위인 성령으로까지 자기를 높여간다. 자기를 높인다는 것은, 과거의 집대성으로 이루어진 자아를 깡그리 버리고 집단적 무의식 속으로 융화한다는 뜻이다. 밀러는 “진정한 예술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의지를 꺾어야 한다. 예술가 자신의 굴복 또는 자기를 버리는 것이 자기해방의 길을 여는 첫걸음이다”라고 서술했다. 기억으로 이루어진 낡은 자기를 부수고 새로운 자기를 형성하는 앞 단계가 자기포기라면, 『남회귀선』은 새로운 자기를 구축하는 과정의 기록이다.
이 소설은 밀러의 작품 가운데 특히 자전적인 요소가 강한 작품이다. 그 바탕에는 이른바 풍요와 부, 행복을 추구한다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산업화와 그에 따른 인간소외가 짙게 깔려 있다. 밀러는 <남회귀선>은 “천국의 녹음실에서 직접적으로 들려온 ‘목소리’를 쓴 작품이다”라고 말했다. 괴로워하며 쓴 <북회귀선>는 집필 자세가 크게 다르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
주인공 ‘나’는 현대문명에는 전혀 변혁의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아나키스트이지만, 성(性)을 통한 단 하나의 모험의 가능성을 믿고 있는 남자이다. 그것은 ‘자기의 내면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것’으로 진실한 자기 발견과 개성 형성을 의미한다.
밀러는 성(性) 세계의 탐구뿐만 아니라 상징언어에 의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신화화시킴으로써 이러한 모험을 가능케 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한때 SEX 소설의 오명을 쓰고 국내에서 판매 금지는 물론 출판사 등록까지 취소되었는가 하면, 미국과 일본에서도 오랫동안 금서로 묶여 있었던 이 책이 지금은 20세기 세계문학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북회귀선>의 자매편이라 할 수 있는 이 작품에서 헨리 밀러는 자신의 젊은 날의 탐험을 주제로 연애, 첫사랑, 브룩클린 시절과 전신국에서의 직장 생활, 숱한 정사에 대하여 묘사했다. 60여 년이 지난 오늘날의 독자에게 있어서도 결코 만만하지 않은 밀러의 작품은 은근한 비유나 함축, 암시, 상징 등 완곡어법을 쓰는 대신 상스러운 말을 거침없이 내뱉는다. 그러나 이런 말들 사이에서, 성을 혐오하지도 어떤 해방의 도구로 우상화하지도 않으면서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을 응시하는 작가의 눈은 물과 같이 투명하며, 조용하고도 단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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