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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와 우리나라 전래동화

by 언덕에서 2010. 4. 7.

 

 

 

 

『알고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와 우리나라 전래동화

 

 

 

 

약 10년 전 '그림동화 신드롬'이 일본에서 일어난 적이 있다. 키류 미사오(桐生操, 1950~ )라는 작가가 발표한, 전세계적으로 오랫동안 읽혀져 온 그림동화의 이면을 파헤친, 이 책에 기인한 것인데 원래 그림동화가 갖고 있던 공포와 잔혹성을 밝힌 탓이다. 읽은 후 놀라웠지만 그 뒷맛은 개운치 않았다. 

 이 책의 저자인 키류 마사오는 13편의 동화를 통해 금단의 세계에 철저하게 감춰져 있던 그림동화의 진실을 밝혀내고 있다. 저자는 그림형제들의 초판 원고와 학자들의 분석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상상력을 덧붙여 전혀 새로운 그림동화를 복원시켜 놓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림형제의 그 유명한 초판본을 그대로 실었다기보다는 학계에 통용되고 있는 흥미있는 해석들을 덧붙여 그림동화를 재창작한 작품들이다. 재창작의 도구는 크게 두 가지인데 하나는 정신분석적 해석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적인 해석이다. 이러한 해석의 메스는 이야기에 새롭고 흥미로운 상상력을 불어넣고 있다.

 

'백설공주' 왕비가 친엄마였다

 

 예를 들어, 백설공주 이야기는 아버지인 왕을 놓고 친엄마인 여왕과 치정 싸움을 벌인 데서 비롯된 얘기이며, 숲속에서 백설공주는 일곱 난쟁이의 성적인 노리개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관에 담긴 백설공주에게 반한 왕자는 지독한 네크로멘티스트(시체애호가)에 불과하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백설공주가 정신분석적인 해석에 의해 가공된 데 비해, 헨젤과 그레텔의 이야기는 아예 중세 시대의 기아(棄兒) 풍습이나 형벌 제도, 그리고 질 드레 라는 실존인물까지 등장시킨 역사 재현의 한 좋은 보기이다. 이들 해석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얘기는 완전히 뒤틀리고 일그러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밖에도 신데렐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개구리 왕자, 인어공주, 벌거벗은 임금님 (이 책에는 안델센과 와일드의 동화도 실려 있다) 등 이 책은 우리에게 익숙한 아름다운 동화들을 여지없이 찢어발기거나 전혀 색다른 인식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때로 지나치게 학문적인 메스를 들이댄 나머지 어떤 작품은 동화의 자연스러움보다는 억지로 꿰맨 냄새를 역하게 풍기기도 한다. 

 요약하자면 중산계급 사이에서 전해 내려온 옛날이야기를 그림형제가 기록한 것으로 그림형제의 창작은 아니다. 결국 그림형제는 임신이나 근친상간 등 성적인 부분과 잔혹성 등을 철저히 삭제해 오늘날의 [그림동화]의 모습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림(Grimm) 동화 원전에서의 '백설공주'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그리고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And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라는 문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백설공주의 결혼식에 온 계모에게 불로 달군 쇠 구두를 신겨 죽을 때까지 춤을 추도록 한다.

 '신데렐라'에서 두 언니는 주인공이 떨어뜨린 신발을 억지로 신기 위해 발가락과 뒤꿈치를 칼로 잘라낸다.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마지막 장면에서 비둘기들이 나타나 두 사람의 양쪽 눈을 파먹는다.

 

헨젤과 그레텔 삽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주인공 남매는 마녀를 떠밀어 오븐 속에서 타 죽게 한다. '노간주나무'라는 동화에서는 계모가 전처의 자식을 죽여 수프로 만든 뒤 남편에게 먹이는 장면까지 나온다. 

 각색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원래 이야기에 깃든 잔인한 요소가 남아있는 경우도 많다. 안데르센 동화 '빨간 구두'는 신기만 하면 춤을 추게 되는 구두가 벗겨지지 않아 발목을 잘라낸다는 이야기다. 페로 동화 '푸른 수염'은 아예 연쇄살인마가 주인공이다. 

 이 책을 읽은 후 알게 된 것이지만 19세기 그림 형제의 원전 자체가 이미 상당 부분 각색된 판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림 동화 초판에서 백설공주와 헨젤·그레텔의 엄마는 사실 친어머니였지만 나중에 계모로 바뀌었고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서 물레에 손가락을 찔리는 부분은 성 경험을 상징하는 것이며 ▲'빨간 모자'는 원래 소녀가 늑대에게 잡혀 먹히는 데서 끝난다고 한다.

 

 

원래 전래동화는 어른들의 문화, 20세기 들어 어린이 위해 표현순화된 것

   

박영만 저 조선전래동화집

 

 

 서양만 그런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언젠가 '콩쥐팥쥐'의 원전을 읽다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이 이야기는 KBS - TV의 ‘스펀지’에서도 소개되었다) 콩쥐가 꽃신을 주운 원님과 결혼해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그림책의 결말 부분 다음에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콩쥐를 시샘한 팥쥐는 "연못에 놀러 가자"고 꼬인 뒤 콩쥐를 물에 빠뜨려 살해한다. 팥쥐는 콩쥐인 척 하고 원님의 아내 노릇을 하는데 콩쥐의 원혼이 원님 앞에 나타난다. 연못 물을 퍼낸 뒤 시신을 건져 내니 콩쥐가 살아났다. 원님은 팥쥐를 죽이고 시체로 젓을 담가 팥쥐 엄마에게 보냈다. 팥쥐 엄마는 젓갈인 줄 알고 먹다가 그게 무엇인지 깨닫고 기절해 죽는다…. 

 이처럼 동서양의 수많은 전래 동화들은 아이들을 위해 손질한 개작(改作)의 흔적을 한 꺼풀 벗겨 내면 '호러(Horror)물'에 가까울 정도로 잔혹한 내용들이 들어 있는 경우가 많다.

 

 

 가 초등학교 다닐 때 더운 여름밤 어머니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는 왜 그리도 무서웠는지 모르겠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대사로 유명한 '해와 달 이야기'인데  이 동화는 대부분의 유아용 그림책 시리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전래동화다. 하지만 한국 전래동화의 중요한 원전 중 하나로 꼽히는 박영만의 '조선전래동화집'(1940)에 실린 이 이야기는 무척 충격적이다. 어머니의 떡을 다 빼앗아 먹은 호랑이는 지름길로 가서 숨어 있다 "왼팔을 베어 달라"며 어머니의 팔을 떼어먹는다. 이런 방법으로 어머니의 오른팔→왼쪽 다리→오른쪽 다리를 차례로 베어 먹은 호랑이는 마지막 순간 땅 위를 굴러 집으로 가는 어머니의 몸뚱이까지 삼켜 버린다.

 이 장면이 전체 분량의 절반 가까이 차지할 정도로 묘사되는데 또 다른 판본에서는 팔을 먹기 전에 저고리·치마와 속곳까지 빼앗아 성적 겁탈을 암시한다. 호랑이는 힘없는 민초들에 대한 약탈의 상징인데 대부분의 그림책에서는 '어머니를 잡아먹었다' 정도로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간다.

 

 

 '장화홍련'의 원전 역시 엽기적이다. 사또가 장화와 홍련이 왜 죽었느냐고 추궁하자 계모는 '사실은 장화가 낙태를 한 뒤 못에 빠져 죽었다'고 거짓말을 한 뒤 허리춤에서 피 묻고 바싹 마른 고깃덩어리를 내보이는데, 사또가 이것을 칼로 가르니 쥐똥이 가득 차 있었다는 것이다. 

 

 전래동화는 원래 어른들의 이야기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지금의 '동화'들은 구전 민담으로 18세기까지 어른들의 문화였다'고 했다. 과거에는 성적이고 폭력적인 내용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고, 아이들을 보호하려는 태도는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생겨났다.

 어린이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어린 아이들이 어릴 때 들은 내용은 자라나면서 계속 머릿속으로 상상되기 때문에 정서에 큰 영향을 미친다며 부모들이 동화책을 읽어 줄 때 문맥을 해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그런 내용들을 건너뛰거나 바꿔 읽어 주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런가 하면 아이들이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면서도 나름대로 걸러서 받아들이기 때문에 유아용 책 정도는 그대로 들려 줘도 무방하다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