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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신데렐라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by 언덕에서 2010. 4. 5.

 

 

 

 

신데렐라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서양사학자 주경철(1960~ )의 문화교양서로 2005년 출간되었다. 어린시절「신데렐라」와「콩쥐 팥쥐」를 읽으며 누구나 한 번쯤 두 이야기의 유사한 점을 궁금해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에는 KBS - TV의 '스펀지‘라는 프로를 통해 “춘향전”과 동일한 스토리 구조를 가진 베트남의 민담집이 소개되어 모두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서양사학자 주경철은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을 통해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 준다.

 이 책에서는 유라시아 대륙 전역에 걸쳐 천여 편이 수집되는 신데렐라 이야기의 기원과 진실을 찾아 다양한 분석을 하고 있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인간의 보편적 정서가 반영된 이야기이면서도 각 시대와 지역의 독특한 환경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1부에서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랑스 페로의 <상드리용 혹은 작은 유리구두>와 독일 그림 형제의 <재투성이 소녀> 판본에 담긴 의미와 기능을 살펴보고 있다.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리는 신화에 모태를 둔 이야기들에 담긴 사람들의 심성과 문화, 사회의 여러 측면을 분석한다.

 2부에서는 다양한 신데렐라 이야기 중 흥미로운 14편을 소개한다. <신데렐라> 이야기를 통해 지난 시대 사람들의 심성과 문화, 사회의 여러 측면들을 살펴보는 책이다. 신데렐라는 인간 내면의 보편적 정서에서 빚어진 이야기인 듯하면서도 각 사회의 독특한 환경에 따라 모두 특이한 색깔을 띤다. 신데렐라와 동일한 구조의 이야기는 “콩쥐와 팥쥐”이외에도 다음과 같이 많다.

 <상드리용 혹은 작은 유리구두 - 프랑스, 재투성이 소녀 - 독일, 고양이 신데렐라 - 이탈리아, 섭한 - 중국, 카종과 할록 - 베트남, 이끼옷 - 영국, 센드라외울라 - 이탈리아 파르마 지방, 신데렐라 - 아르메니아, 가난한 소녀와 암소 - 이라크, 부레누슈카 - 러시아, 얼룩소 - 아일랜드, 칠면조 소녀 - 미국 인디언, 마리아 - 필리핀, 처녀와 개구리, 그리고 추장의 아들 - 아프리카의 하우사족> 

‘신데렐라’라는 한편의 동화가 천년의 역사를 넘어 전 세계에 천편 가까이 전해진다는 것이 놀랍다. 면면히 이어진 ‘시간의 장구함’도 놀랍지만, 비슷한 이야기들이 세계 각 지역으로 퍼져 있은 ‘지리적 보편성’에도 감탄하게 된다.   이 말은 인간 밑바탕에 깔린 정서가 같다는 뜻일 게다. 우리나라에도 <콩쥐 팥쥐>이야기와 <심청전>이야기가 신데렐라 계열에 들어간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다. 저자 주경철 교수는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에서 각 사회의 독특한 환경에 따라 특이한 색깔을 띤 채 전해온 신데렐라 이야기의 기원과 진실을 찾아 역사·사회·신화·문화적 분석을 하고 있다.

 

♣ 

 

 처음에 내면 성숙을 위한 동화적 기능이 있었던 신데렐라 이야기가 점점 축소되었다든가, 신분상승 스토리로 굳어져 버렸다든가, 신데렐라가 인간세계와 저승세계 사이를 오가는 중간매개자로서 원래 무당이었을 것이라는 등 다양한 분석과 주장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저자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인류 문화 형성의 초창기인 신석기 시대에 형성된 원초적인 종교 개념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 기본틀은 오랜 시간을 거쳐 전승되면서 유라시아 대륙 여러 지역의 사회와 문화를 담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여러 판본을 통해 이야기의 공통점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비록 황당한 허구일지언정 착한 주인공이 온갖 고난을 딛고 마법의 도움을 받으며 화려하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모습은 전형적인 권선징악이다. 세계 최초의 신데렐라 이야기인 중국의 ‘섭한’을 비롯해 19세기 식민지 관리에 의해 채록돼 서구에 처음 알려진 베트남의 ‘카종과 할록’ 등 민담의 단골 메뉴는 성과 폭력이다. 신데렐라 이야기는 이 두 가지 요소가 많이 들어가 있다. 이는 당시 상황을 반영한 측면도 있지만 신데렐라 이야기가 유연하게 모습과 내용을 바꾸어가며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져 온 것은 성과 폭력의 문제를 통해 앞으로 닥쳐올 인생의 어려운 문제를 조화롭게 해결하려는 동화로서의 기능인 것이다.

 

後記>

 

 이 책의 내용과는 별개로 ‘신데렐라’를 읽으면서 늘 궁금했던 게 있다. 그런데 왜 왕자는 신데렐라 같은 여자에게 반했을까? 왕자는 수많은 미인들로 둘러싸여 사는데, 아무리 선녀가 준 옷을 입었다고 해도 과연 신데렐라에게 반할 수 있었을까?

 

 왕자 주변의 여자들은 대부분 귀족이나 왕족들이었을 것이다. 그저 얼굴과 몸매를 가꾸면서 남자 귀족이나 연예인 이야기로 밤을 새우고, 괜찮은 귀족을 후릴 궁리나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런 종류의 유한계급 사람들과 평생을 산다는 것은 머리가 깬 왕자라는 가정 하에서는 고문이었을 것이다. 하녀들이 없으면 옷 하나 입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한심해 보이기도 할 것이고.

 이런 분위기에 있는 남자 앞에 열심히 일하면서 정신과 마음이 지극히 건강한 혼인적령기의 아가씨가 나타났다고 생각해보자. 이 아가씨는 어딘가 처연한 인상으로 남성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게다가 신데렐라는 자신이 처한 악조건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영민함이 있을 것이다. 신데렐라가 가진 아름다움은 귀족 여인들의 속 빈 강정 같은 아름다움이 아니라 순수하고 건강한 것이다. 즉, 귀족이나 왕족 여자들이 가진 퇴폐적인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다.

 그런데 더 궁금한 게 있다. 왕비가 된 신데렐라는 정말 행복하게 여생을 보냈을까 하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고인이 된 다이애나 왕세자비

 

 

 첫째, 아버지의 무관심과 새엄마의 학대는 어린 신데렐라의 마음에 지우기 어려운 큰 상처를 주었을 것이다. 신데렐라가 왕비가 되더라도 어릴 때의 상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즉, 사람의 마음은 나이테와 같아서 자기를 괴롭히는 환경이 없어져도 그 기억은 계속 머리에 남아서 괴롭히게 된다. 그래서 정상적인 결혼생활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신데렐라처럼 애정결핍을 겪은 사람은 자기에게 관심을 갖는 사람에게 지나치게 집착하기 쉽다. 뿐만 아니라 열등감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쉽게 위축되어 소극적이 되거나, 그것을 감추기 위해 오히려 지나치게 화려한 생활을 하기도 쉽다. 이것도 신데렐라의 성공적인 결혼생활에는 장애가 된다. 전문적인 용어로 피해의식에 다른 대인관계 장애가 나타날 수 있는데 사교생활을 중시하는 상류사회에서는 치명적인 결함이 될 것이다.

 셋째, 신데렐라는 상류사회의 인맥이 없기 때문에 왕자의 사랑이 식었을 때 달래주거나 보호해줄 보호막이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신데렐라는 왕자, 곧 왕에게 의존하거나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인적 네트웍을 가지고 있다. 이런 심리는 자칫 다른 사람에 대한 질투로 나타나 정상적인 궁중생활을 영위하기 어렵게 만든다. 유명 여배우가 재벌 2~3세와 결혼한 뒤 얼마 못가서 파혼당하는 경우도 비슷한 케이스였을 것이다.

 넷째, 신데렐라가 왕자에게 사랑을 얻은 것은 아마도 건강한 아름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즉, 실제의 외모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서라기보다는 궁중에 출입하는 고귀한 가문의 여인이나 궁녀가 갖지 못한 매력, 예를 들어 일로 다져진 건강함이 매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궁중에 들어오면 이러한 매력은 급속히 떨어지면서 오히려 세련되지 못한 행동들이 부각되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면 여러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면서 고립되고 이어서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을 할 것이고 파국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덴마크의 프레데릭 왕세자 부부

 

 만약 신데렐라가 지나치게 권력에 집착한다면 그것은 왕자의 사랑이 식었다고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왕자는 신데렐라를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다른 여자도 동시에 사랑하고 싶을 뿐인 것이다.(왕자니까) 신데렐라가 애초에 귀족 여성으로 자랐다면 “왕이란 으레 그렇지, 뭐”하면서 적당히 눈감아주거나, 자기도 남자 애인이나 만들어서 적당히 즐기며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신데렐라는 그렇게 하기는 힘들다. 자기가 왕궁에서 의지할 데라고는 왕자밖에 없는데, 그 왕자란 작자가 다른 여자에게 혹해서 도무지 코빼기라도 보여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드라마에서 나왔던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

 

 오래전의 이야기이지만, 유치원 교사였던 다이애나가 영국의 왕세자비가 되어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녀의 삶이 어떠했는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최근에는 덴마크의 프레데릭 왕세자와 스페인의 필리페 왕세자가 평범한 여성과 결혼식을 올려 세계적으로 신데렐라 바람이 분 적이 있다.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이다.

 이야기가 소개하는 책 내용과 자꾸 멀어지지만 다이애나비 외 다른 신데렐라는 어떻게 살아갔는지  참고삼아 살펴보자.

‘거리의 여인’에서 일국의 퍼스트레이디로 올라선 아르헨티나의 에비타가 떠오른다. 에비타, 즉 에비타 에바 페론(Evita Eva Peron, 1919~1952)은 바로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Don't cry for me argenina)라는 유명한 노래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아르헨티나의 부통령 후보가 되기도 했지만 자궁암 때문에 33세의 나이로 요절했다. 에비타의 장례식은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큰 국장으로 한 달간 성대히 치러졌다. 에비타는 아르헨티나의 성녀로 추앙받기도 하지만, 사실상 대표적인 인기 영합주의 정치, 즉 포퓰리즘(Populism)의 대명사였다. 이것은 국가의 장래로 보면 매우 위험한 일이다. 아르헨티나의 국가부도 사태는 포퓰리즘 정치와 무관하지 않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현상들이 나타나 우려를 한 분들이 많았다.

 

에비타 에바 페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조선 시대 영조의 어머니인 화경숙빈 최씨의 경우를 들 수 있다. 현종 때에 7살의 나이로 궁중에서 가장 천하다는 무수리로 입궐하여, 숙종 때 성은을 입고 내명부 종4품 숙원(淑媛)의 후궁 첩지를 받았다. 이후 숙의(淑儀), 귀인(貴人) 등을 거쳐 마침내 그 품계가 정1품 빈()에까지 이르렀으나 그 출신 성분이 미천한 무수리라, 본인은 물론 아들인 영조에게까지 매우 큰 콤플렉스가 되었다고도 한다. 숙종의 제1 계비 인현왕후 민씨와는 친분이 두터웠으며, 희빈 장씨가 중전일 때는 그녀에게 모진 박해를 받다가 인현왕후가 갑술환국으로 복위되자 평상을 되찾았다. 하지만 숙종이 장희빈의 일이 재발할까 염려되어 궁녀에서 왕비로 오르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었기 때문에, 인현왕후가 죽은 뒤에도 숙빈 최씨는 왕후가 될 수 없었다. 숙빈 최씨의 삶은 궁중 여인들 간의 질투로 인해 평생 불운했던 걸로 전해진다.

 세상에는 신데렐라를 꿈꾸는 여인들이 많다. 그러나 역사상 실재했던 신데렐라들의 일생 전체를 보면 어떨까? 신데렐라의 과도한 집착과 지나친 욕망은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세상은 환상이 아니기 때문에 신데렐라가 꿈꾸는 세상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것이다. 동화는 어디까지나 동화인 것이다. 백마 탄 왕자는 바람둥이에다 자기밖에 모르는 극도로 이기적인 경우가 많고, 왕자들은 그렇게 살도록 교육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백마 탄 왕자는 궁극적으로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서 결혼하면 불행하지 않을 것이다.

 

 

 


☞주경철 :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도시사학회 회장, 서울대 중세르네상스연구소 및 서울대 역사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유럽 근대사의 여러 분야를 연구해 왔으며, 최근에는 글로벌 히스토리, 해양사 등으로 관심분야를 넓혀 연구하는 한편, 일반대중에게 역사학을 소개하는 교양서적도 다수 출판했다. 저서로 『대항해 시대』 『문명과 바다』 『주경철의 유럽인 이야기』 『그해, 역사가 바뀌다』 『문화로 읽는 세계사』 『히스토리아』 등이 있으며, 『지중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