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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재미있는 우리말 - 박갑천의 『재미있는 어원이야기』

by 언덕에서 2010. 3. 29.

 

재미있는 우리말 - 박갑천의 『재미있는 어원이야기』

 

 

수필가이자 [한국일보] 등의 기자를 역임한 박갑천(1932 ~ 1999)이 쓴 책이다. 그는 특이한 우리말에 대한 기원을 찾는 책을 다수 집필했는데 국어심의회 표기법 분과위원, [주간한국] 정리부장 등 역임하면서 키운 내공에 기인한다.

 이 책은 한마디로 우리말의 근원과 그 변화의 흔적들에 관해 다양한 견해를 펼쳐 보이는 책이다. 예를 들어, `가시버시`는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부부`의 낮춤말이지만 저자는 중세어로 거슬러 올라가 `아내`를 일컫는 말인 `갓`과 `가시`를 찾아낸다.

 현재 북한에서 쓰는 `갓난이`(여자)가 이를 뒷받침해주는 증거라고. 또 `돈`은 `돌고 도는`데서 왔다는 설도 있지만 따져보면 `도일도환(刀一刀環)`설이 유력하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도`가`전(錢)`의 뜻으로 사용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명도전이 유통된 영향으로 `도`가 `돈`으로 됐을 것으로 유추한다.

 한편 침채 -> 짐채 -> 짐치에서 변환된 `김치`는 안동 김씨들이 조상의 이름을 부르는 불경을 피하려고 `침채`라고 불렀다는 설을 소개하는 등 총 80여 항목에 걸쳐 말을 어원 및 변천, 그리고 다양한 견해를 수록하고 있어 말의 근원과 상징성을 곰곰이 따져보게 한다. 저자는 <말> <오자의 세계>등 말의 쓰임에 관한 여러 저서들을 출간한 바 있다. 책 속의 일부분을 읽어보도록 하자.

 

 

 

오입쟁이

 

 여자 같으면 ‘화냥년’쯤에 해당할 사내가 ‘오입쟁이’일까? 그러나 정확한 반대 개념으로 될 수도 없을 것 같은 것이, 그런 뜻으로라면 ‘오입쟁이’보다는 ‘잡놈’쪽이 더 가까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잡놈’의 반대 개념이면 ‘잡년’이 있다 싶어서 내세워본 ‘화냥년’이다.

 ‘오입쟁이’는 그렇게 악의(惡意)로만은 쓰이지 않는다. 미국말로 번역해 본다면 ‘플레이보이(playboy)’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오입쟁이 하면, 사는 멋도 알고 복장에 대한 멋도 알면서 적당한 인테리층이요, 또 매너면으로 본다고 해도 깍듯하고 정중한 곳이 없을 수 없는 인간상이 떠오른다.

 ‘그는 장안의 오입쟁이였다’고 할라치면, 다시 말해 볼 때 ‘그는 장안의 멋쟁이였다’는 말과 과히 틀리지 않게 연상되어 오는 이미지다. 여성을 상대해도 지저분하게 뒤탈을 남기는 따위는 ‘오입쟁이’측에 들 수가 없는 일이고, ‘잡놈’이라고 말할 정도가 옳은 일일 것도 같다.

 그런데 사전에서 ‘오입’을 찾아보면 ‘誤入’이라는 한자를 달아놓았다. 한자 뜻대로라면 ‘잘못 들어가는’ 것이다. 하여간 자기 집 대문으로 들어가야 할 텐데, 기방(妓房) 대문을 들어서는 것이란다면 ‘잘못 들어가는 것’일시 분명하고, 그러고도 잘못 들어가는 어느 부분이 있다고도 하겠지만, ‘오입’에서는 그런 한자를 떼어버렸으면 어떨까.

 원(元) 나라 때 왕자일(王子一)이란 사람이 쓴 희곡 작품에 <오입도원(誤入桃園)>이란 것이 있고, 그것은 천태현(天台縣)의 도사(道士)인 유신(劉震)과 완조(阮肇)가 서로 힘을 합하여 도원동을 찾아간 것을 묘사하고 있지만, ‘잘못 들어간다’는 뜻으로 붙여진 ‘誤入’이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오입’이라는 말이 ‘誤入’이라는 한자로 쓰인다고 해도, 전거(典據)를 가진 말이기보다는 우리 사람들이 만든 것이든지, 우리 고유어에 한자를 갖다 붙인 것이든지의 어느 것일 게다. '오입‘이라 하지 않고, ‘외입’이라 하는 말도 듣게 된다. 이것은 ‘오입’이라는 말이 발음되면서 이른바 ’ㅣ모음역행동화‘ 현상 때문에 ‘입’의 ‘ㅣ’가 ‘오’에 붙어 ‘외’로 된 것이라고도 생각되지만, 아주 ‘외입’ 그것으로 생각해 버려서인지 한자도 어엿이 ‘外入’이라 쓰는 경우를 보게 된다. ‘잘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는 숫제 ‘밖에서 드는’. 정도(正道)로서의 정입(正入)이 아니라는 생각까지 곁들인다 싶어지는 한자 표기이다.

 안채가 내실(內室)이라면 그 안(內)의 반대 개념으로서의 외(外)가 생각되어지기 때문이다. ‘오입’은 한자의 ‘誤入’이란 표기보다는 그대로 ‘오입’ㆍ오입쟁이‘가 나을 것 같다. 천성이 바람둥이 기질이어서 열너덧 살쯤 되어 객지로 훌러덩 떠나는 헤르만 헤세, 또는 그가 창조한 전형(典型)인 크눌프의 떠남과 같은 것을 일러 ’오입 나가다‘라는 말이 있고, ‘객지바람 쐰다’는 뜻으로는 ‘오입바람 쐬고 나더니 사람이 달라졌다’는 따위 말이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誤入’이 아닌 그냥의 ‘오입’이 다정할 것만 같다.

 

 

 평소 우리말에 관심이 있었던지라 이 책을 읽으면 좀 더 우리말 바로 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읽었던 책이다. 저자가 국어학을 전공한 전문가는 아니지만, 직업상의 필요와 개인적 관심에서 비롯된 전문가 못지않은 정보 수집과 분석 등으로 우리말 어원에 관한 비교적 정확한 정보를 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 책이다. 그러나 어원이라는 게 그 시대에 직접 살아보지 않고서야 그저 후대에 남겨진 문헌과 구전만으로 짐작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많으므로 저자의 노력이 더욱 돋보이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 책에는 다수의 어원들에 대해 여러가지의 어원들을 제시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판단하게 만든다. 우리말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책 제목처럼 재미있는 어원 이야기를 만끽할 수 있다. 우리말이기에 알아두면 좋을, 아니 꼭 알아둬야 할 말의 다양한 어원들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