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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굶어 죽지 않을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탐욕의 시대 』

by 언덕에서 2010. 3. 25.

 

 

 

 

굶어 죽지 않을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탐욕의 시대』

 

 

 

 

 

가끔씩 접하는 해외뉴스를 보면 우울하기 짝이 없다. 선진국에서는 남아도는 농산물 때문에 일부러 휴경(休耕) 제도를 마련하고 그에 동참하는 농부들에게 지원금까지 주는데, 가난한 국가들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굶어죽는 사람들이 길거리에 널려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이 불공평한 세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그러던 중에 이미 소개한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게 되었고 비로소 그간의 의문이 어느 정도 풀렸다. 그런데 더 궁금해졌다. 근본적으로 왜 이렇게 되었을까?

 

 '출생의 우연'이라는 수수께끼는 죽음만큼이나 신비하다. 왜 누구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태어나서 잘 먹고, 가진 권리도 많고,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며, 질병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유로운 백인으로 태어났을까? 반면에 어째서 뱃속에 기생충이 우글거리는 콜롬비아의 광부는 그런 행운이 없을까? 페르남부쿠의 혼혈인 카보클루는? 염산에 의하여 얼굴이 일그러진 치타공의 벵갈 여인은? 말라 비틀어진 에티오피아의 영양실조 어린이는?

 매년 기아나 상관관계를 가진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죽어가는 사람이 3,600만 명에 달한다. 의학계가 벌써 오래전에 정복한 전염병에 걸렸지만, 약이 없어서 헛되이 투병하다가 죽는 사람도 수천만 명이다. 오염된 물은 해마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9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비위생적인 주거 환경, 들쥐, 절망, 오물 등으로 고통받는 가정주부들도 마닐라의 스모키마운틴에서 리마의 칼람파, 다카의 빈민촌에서 리루데자네이루 교외 바이사다 저지대의 달동네에 이르기까지 수천만 명에 이른다.

 그들은 그렇게 사는데 왜 미국과 유럽인들은 왜 편안하게 살 수 있는가?

 이들 우연의 희생자 한 명 한 명은 나의 아내,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 나의 친구 혹은 나의 삶을 구성하며 내가 사랑하는 그 누군가가 될 수도 있었을 사람들이다. '출생의 비밀'이라는 요소를 제외한다면, 우리와 이 고통받는 사람들을 갈라놓을 다른 요소들이란 전혀 없는 것이다.

  

 

 이 책의 원제는 'l'empire de la honte'로 문자 그대로 옮기면 '수치(羞恥)의 제국'이라고 풀이된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교수이자 실천적인 사회학자이며, 기아문제에 관한 저명한 연구자로서 오랜 기간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활동해온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장 지글러의 저서이다. 『탐욕의 시대-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이하 ‘탐욕의 시대’)』는 전작인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가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형식을 빌려 기아에 관한 진실을 알기 쉽게 조목조목 풀어놓은 책이라면, 그로부터 한 발 더 나아가 누가 이 세계의 빈곤화를 주도하고 있는지, 부의 재편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기아와 부채가 가난한 자들의 발목을 어떻게 옭아매고 있는지 등의 내용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수치스러운 구미의 봉건제후들

 

 특히, 이른바 ‘신흥 봉건제후들’이라 불리는 거대 민간 다국적 기업들과, IMF, IBRD, WTO 등 시장원리주의와 세계화를 맹신하는 신자유주의적 국제기구들, 무기를 팔아 돈을 벌고 희귀재와 자원을 이용해 전쟁과 폭력의 조직을 일삼는 ‘제국’들, 사적 자본의 축적을 위해 국가의 미래는 나 몰라라 하는 가난한 나라의 일부 부패한 권력층의 실체를 고발하고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항한 전 세계 시민들의 즉각적인 연대의 필요함을 제시하고 있다. 객관적인 통계자료, 냉철하고도 논리적인 분석이 이 책의 전반에 흐르고 있다.


 1장 「인간은 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다」에서는 '네슬레', '몬산토' 등 유럽과 미국의 거대 다국적 민간 기업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세계의 봉건화 추세와 이들에 의해 철저히 구조화되고 있는 전쟁과 폭력의 사례들을 들여다본다.

 2장 「무엇이 가난한 자들을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에서는 가진 것 없는 약자들의 삶을 가공할 위력으로 파괴하고 있는 부채와 기아의 원인과 배경, 그 심각성을 살펴본다.

 3장 「에티오피아, 희망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와

 4장 「브라질, 혁명은 계속된다」에서는 다국적 기업이 주도하는 커피 가격의 폭락 정책으로 나라의 온 경제가 파탄나 버린 에티오피아의 상황과, 천문학적인 외채로 인해 국민의 대다수가 빈민으로 전락한 브라질의 현재를 자세하게 살펴본다. 동시에 이들 나라에서 모색되고 있는 새로운 연대의 움직임을 알아본다.

 5장 「탐욕의 시대는 어떻게 봉건화 되는가?」에서는 첨단기술과 막대한 자본, 강력한 연구소들로 무장한 민간 다국적 기업들이 약육강식의 세계질서를 어떻게 고착화하고 있는지 해당 기업의 실명과 실제사례를 통해, 자본에 눈 먼 자들의 이중성을 낱낱이 나열하고 있다.

 

 

 

기아의 주요 원인은 구미 선진국들에게 진 채무


 오늘날 인류가 처한 비참함의 정도는 인류 역사상 그 어느 시대에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참담하다. 저자에 의하면 5세 미만의 어린아이들 중에서 1천만 명 이상이 해마다 영양 결핍이나 각종 전염병, 오염된 식수, 비위생적인 환경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이 희생자들의 50퍼센트는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6개국에서 발생하며, 이 수치의 90퍼센트가 남반구 국가들 42퍼센트에 집중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희생이 재화의 객관적인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재화의 공평하지 못한 분배, 다시 말해 인위적으로 조작되는 가난에 의한 것이라는 데 있다.

 그러면 이를 관장하는 자는 누구일까? 그들은 바로 과거보다 훨씬 강력하고 냉소적이며, 예전에 비해 한결 야만적이고 교활한 새로운 봉건 지배 세력인 제조업, 은행업, 서비스업, 상거래에 종사하는 거대 다국적 민간 기업들이다. ‘탐욕의 시대’를 지배하는 이들 봉건 군주들은 이익의 극대화라는 논리로 일관하여, 의도적으로 희귀재를 조작해나간다. 이렇게 조직화된 재화의 희귀성으로 말미암아 해마다 지구상에 사는 수많은 인간들의 삶은 무참히 파괴되고 있다.

 

 

 


 이들 서구제국이 주도하는 전쟁과 폭력은 또 어떠한가? 저자는 재화의 희귀성이 지배하는 제국에서는 전쟁이 간헐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계속된다고 말한다. 전쟁은 하나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정상적인 일상이며, 일시적인 이성의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제국의 존재 이유”라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이들 제국은 무기를 팔아 돈을 벌고, 자원과 공공재의 사유화를 통해 구조적인 폭력을 생산해낸다.

  지글러는 ‘전 세계적인 테러와의 전쟁’에 들어가는 비용의 극히 일부만 투자하더라도 버림받은 지구상의 주민들을 절망으로 몰아가는 굶주림을 뿌리째 뽑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2000년을 기준으로 1년 동안 전 세계가 군비로 지출하는 금액은 약 7,800억 달러에 이른다. 이 금액은 매해 증가일로에 있다. 하지만 해마다 850억 달러씩 10년 동안 투자를 한다면,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기초적인 교육과 기초적인 의료, 적절한 영양, 식수, 기본적인 위생 시스템 등을 보장받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적절한 산부인과 치료도 받을 수 있다니. 참으로 씁쓸한 현실이다.

 이렇듯 ‘탐욕의 시대’를 정의하는 일부의 통계들은 우리 사회의 빗나간 가치관을 상기시키는 동시에 우리들 자신 스스로를 몹시 무력하게 만든다. 유엔은 백악관의 대변인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제법은 유명무실해졌으며, 전쟁을 ‘예방’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전 세계의 테러와의 전쟁’은 끝없이 지속될 것처럼 보인다. 신흥 봉건 제후들이 조직하는 구조적 빈곤의 희생양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으며, 한 줌의 희망마저 잿더미로 녹아버린 현실은 암담함 그 자체이다. 이쯤에서 묻고 싶어진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정녕 우리 곁에 존재하는가? 천문학적인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브라질의 상황을 잠시 살펴보자.

 

 

 

 


굶주리면서 죽지 않을 희망은 어디에 있을까?


“가난한 나라의 국민들은 그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자 나라의 발전에 필요한 비용을 대기 위해서 죽도록 일을 해야 한다. 남반구가 북반구, 특히 북반구의 지배계층을 위해 돈을 댄다. 오늘날 북반구가 남반구를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부채를 제공하고 그에 대해서 받는 대가이다. "

 지글러는 위의 상황을 역설적인 한마디로 요약한다. 한 나라의 국민들을 노예 상태로 만들어 복종시키기 위해서는 기관총 네이팜탄, 탱크 따위는 필요 없다. 부채가 그 모든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하기 때문이다. 부채에 따르는 원리금 지불 업무(이자와 일부 원금의 상환)는 채무국 국민총생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때문에 공립학교나 공공병원, 사회보험 등의 사회투자에 소요되어야 할 예산은 거의 남아나지 않는다. 부채의 멍에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깨에 떨어지고, 오직 이들만이 그 멍에를 짊어진다. 부채는 마치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 종양과 같아서 끊임없이 자라나고 돌이킬 수 없이 불어나는 것이다. 이 악성 종양은 제3세계 국가의 주민들이 가난과 비참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방해한다.

 아니, 오히려 이들을 죽음으로 내몬다. 따라서 상당수의 기아는 부채가 낳은 직접적 산물이다. 그리고 지글러의 말처럼 영양 결핍과 기아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수백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21세기 최대의 비극이다. 기아는 어떤 이유나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부조리와 파렴치의 극한 상태이며 나아가 끝없이 되풀이되어온 반인류 범죄이다. 현재 지구상에서는 5초마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한 명이 기아 또는 영양 결핍으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2007년 기아로 사망한 사람의 수가 같은 해 일어난 모든 전쟁의 사망자를 더한 수보다 많다는 것은 자못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그리고 이러한 부채와 기아의 악순환에 멍들어가는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라틴아메리카에 위치한 세계 10위의 경제대국 브라질이다.

 

 

 

 

 브라질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곡물 수출 국가이자 서류상으로만 보면 식량 면에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나라로 분류된다. 그러나 실상은 이와 전연 다르다. 브라질 내부에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수천만 명에 달하는 국민들이 심각한 만성 영양 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브라질의 농산물 수출이 대부분 외국 기업들에 통제되고 좌지우지되고 있으며, 과거 군사 독재정권과 이와 결탁한 허수아비 대통령들이 수출입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유럽이나 일본, 북미 지역 민간은행들로부터 돈을 마구 끌어다 쓴 덕분에 천문학적인 액수의 부채를 갚아야 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빈민으로 전락한 까닭이다. 군사 독재정권 이후에 들어선 대통령들은 부패를 조장했으며, 수익성이 높은 공공기업을 외국 자본에게 유리하도록 민영화해버렸다. 그 결과 도시엔 실업자들과 거지들이 득실거리고, 쓰레기 하치장은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아이들로 가득하다. 이것이 오늘 브라질이 처한 현실이다. 그러나 희망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은 듯 보인다. 
 룰라는 제3세계의 그 어느 국가도 부채를 온전히 상환할 능력이 없다고 고백하며 제3세계 국가들의 발전 전략과 부채 상환은 결코 양립할 수 없으며, 따라서 “즉각적으로 부채 상환을 중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채 상환을 거부하고 절약하게 되는 돈을 기술 개발을 위한 연구발전 기금, 교육이나 공중보건, 농업개혁 등 요컨대 제3세계 국가들을 위해 필요한 발전 기금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은 채권국 및 IMF 같은 국제기구의 격렬한 저항을 받고 있다. 그는 새로운 방식을 모색해냈다. 그것은 바로 채무국끼리의 연합전선을 형성하는 것이다.

 
부조리의 극치인 기아로 인한 사망


 지글러는 이 책의 서두를 프랑스 혁명의 격변기를 온 몸으로 살아냈던 급진적 혁명가들의 외침에 아낌없이 내주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영원한 화두이자 모든 꿈꾸는 자들의 열망인 ‘인간의 행복할 권리’였다. 그렇다면 이 행복할 권리를 기초하는 가장 주된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먹고살기. 다름 아닌 ‘생존’이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도 누릴 수 없는 부조리의 극치인 기아와 절대적 빈곤은 결단코 인류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이 책은 결국 인간이 누구나 인간답게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음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자주 접하는 네슬레의 광고이다. 흑인 여성이 행복해 하고 있다.

네슬레로 인해 아프리카의 아이들이 수없이 죽어가는데...  이 광고는 비극적이다>

 

 대부분 아프리카의 나라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뇌염 예방주사를 맞히지 못해서 죽는다. 그 아이 엄마의 심정을 전 국민건강보험, 무료 내지는 실비로 예방접종이 가능한 체제가 마련되어 있는 우리나라의 엄마들이 과연 이해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난 후, 가난과 부채가 빚어내는 비극을 멀리 떨어진 다른 나라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게 되었다. 속절없지만 이 책을 읽은 계기로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네슬레, 코카콜라를 비롯한 몇몇 다국적 기업의 제품은 사지 않기로 마음먹고 이를 실천에 옮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