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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신경숙 장편소설 『외딴방』

by 언덕에서 2010. 1. 18.

 

 

신경숙 장편소설 외딴방

 

 

신경숙(申京淑.1963~ )의 장편소설로 1996년 발표되었다. 제11회 [만해문학상] 수상작이다. 그는 1980년대 초반 시골에서 상경하여 구로동의 전자부품공장에서 일하며 산업체 부설 야간고등학교를 다녔고 노동현장에서 발생하는 신산함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그 경험은 인간이 무시된 산업현장에서의 인간 소외와 정치.사회적 폭력 그리고 경제적 궁핍을 눈물겹게 체험했으며 그 결과가 한 권의 책으로 나타났다. 

외딴방의 문학적 의미와 가치는 다양한 각도에서 성찰될 수 있겠지만 우선 작가 개인의 이력과 관련하여 이 작품이 '신경숙 문학의 또다른 시원'을 밝혀주는 중요한 이정표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 시선을 모은다. 외딴방이전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신경숙 문학의 밑자리는 거센 도시화와 산업화의 물결에 밀려 점차 쇠락과 소멸의 길을 걷고 있는 농촌 공동체의 다사롭고 넉넉한 품이었다.

 서른두 살의 소설가인 ‘나’는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그동안 닫아놓았던 '외딴방'의 문을 조심스럽고 섬세하게 열어젖힌다. 낮에는 구로공단에서 음향기기를 만드는 공장 직원으로 밤에는 산업체 특별학급의 학생으로 생활하던 그 시절은, 현재의 ‘나’로 하여금 다른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고, 여고 시절을 그녀의 삶 속에서 누락시키게 한다. 하루에 이만 개씩 포장해야 하는 사탕 때문에 손이 딱딱해진 안향숙과 월급봉투를 받으려다 해직당한 유채옥, 그리고 결코 과거가 될 수 없는 희재 언니가 있던 외딴방을 향해 ‘나’는 머뭇거림과 망설임을 반복하면서도 결국은 그것과 정면으로 마주한다.  

 

 

소설가 신경숙(1963~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이야기는 소설가인 '나'가 고등학교 친구인 하계숙에게 온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지난시절의 이야기를 쓰기로 결심한다.

 농촌에서 살던 16살의 '나'는 1978년 사촌언니와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오게 된다. 그 후 취업을 하기위해 직업훈련원에 다니고, 가리봉동의 외딴방에서 큰오빠와 함께 살며 구로공단의 동남전기주식회사에 다닌다. 대부분의 그 시절 여공들이 그랬던 것처럼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힘든 노동에 시달리며 또 한편으로는 가난과 고독, 절망에 시달리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도 '나'는 향학열을 버리지 않고, 1979년부터는 공장작업을 마친 후 산업체 특별학교인 영등포고등학교에 다니게 된다.

 쉽게 허용된 길은 아니었지만, 주인공이 가지고 있던 문학적 열정이 있었기에 배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1979년 봄에 그녀는 희재 언니를 만나게 되고 그녀와 친해지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말을 남기고 자살한다.  주인공은 자신의 외딴방에서 일어난 희재 언니의 죽음을 보고 그 방에서 탈출하듯 도망감으로써 이야기는 끝이 나게 된다.

 

 

 

 작가의 유년 시절의 체험과 긴밀하게 맞물린 그 공간은 대도시의 번잡하고 이기적인 삶의 방식과 대비되어 한편으로 아련한 향수와 동경을, 다른 한편으로 애절한 정서적 울림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작 신경숙의 재미있는 소설에 도취된 나머지 그녀의 유년의 농촌체험과 성년의 도시체험 사이에 어떤 단절 혹은 공백이 가로놓여 있다는 점을, 다른 어떤 것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고유의 체험이 은밀히 숨겨져 있다는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외딴방이 우리 앞에 선을 보이고서야 우리는 비로소 작가가 그토록 드러내놓길 꺼려왔던, 그러나 언젠가는 기필코 말해야만 했던 유년과 성년 사이의 공백기간, 열여섯에서 스무살까지의 그 시간의 빈터 속으로 입장할 수 있게 되었다. 외딴방을 통해서야 작가의 문학의 또다른 시원, 그 아프고 잔인했던 시절, 열악한 환경 속에서 문학에의 꿈을 키워나가던 소녀 신경숙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 소설은 '내성의 문학'이라 부를 수 있는 신경숙 문학의 정점이자 제목 그대로 외딴방에서 외롭게 죽어간 한 80년대 산업현장에서 비참하게 살다 죽어간 가여운 넋에 대한 진혼가라 할 수 있다. 작가는 잊고 싶었던 그러나 잊을 수 없는 그때 그 시절 그 장소로 되돌아가서 그 쓰라린 현장을 다시금 언어로써 복원해낸다.

 

 

외딴방에서의 작가의 고백성사는 자신의 체험을 질료로 한 글쓰기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과 그럼에도 그것을 넘어서야 한다는 의지 사이의 위태로운 줄타기를 보여준다. 거기서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언표될 수 없는 것을 탐지해내는 고감도의 언어, 아니 끝없이 침묵을 향해 접근해가고자 하는 언어, 그래서 끝내 무(無)에 이르고자 하는 언어이다. 이 소설 여기저기서 번번히 등장하는 말없음표는 그런 의미에서 말로 채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을 나타내고자 하는 감정의 과잉을 지시하기보다는 말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말해야 한다는 강박이 자아낸 안타까움의 소산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난 뒤의 그 막막한 여운 속에서 독자들이 떠올리게 되는 것은 한 작가의 어려웠던 지난 시절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어느샌가 통과해왔던 생의 한 지점, 그 부재의 순간이 아닐까 한다.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그 무한 중첩을 사유하다보면 글쓰기의 대상은 점차 지워지고 남는 것은 자신의 존재의 뿌리를 향해 다가가고자 하는 어떤 열망만이 남게 된다. 1980년대 성장만을 앞세워 달려갔던 그 시절 밑바닥에서 숨쉬지 못하고 소외된채 이슬처럼 사라져버린 많은 사람들을 생각케 하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