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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최인호 수필집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

by 언덕에서 2009. 12. 27.

 

 

최인호 수필집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

 

 

소설가 최인호(崔仁浩.1945∼2013)가 젊은 날의 초상과 사회문제 등에 대한 견해를 피력한 신문 칼럼과 에세이를 한데 엮은 책으로 1996년 간행되었다. 1970년대 초 별들의 고향을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당시부터 사회문제 진단까지 모두 32편의 글이다. 지천명의 나이를 넘긴 작가 최인호의 수상집인 이 책의 제목은 몽고메리 클리프트 주연의 영화제목에서 따온 것인데, 저자는 서문에서 '그 영화의 제목은 기억하지 못하나, 통곡하는 절실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서 제목을 정했다고 적었다. 젊은 날의 회상은 흥미롭게, 이즈음의 세상살이에 대한 시론(時論)은 깊이 있게 읽혀지는 책이다. 

소설가 최인호( 崔仁浩.1945∼2013 )

 

 서문을 읽어보자.

 '나는 통곡하며 살고 싶다. 나는 대충대충, 생활도 대충대충, 만남도 대충대충, 일도 대충대충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모든 일에 통곡하는 그런 열정을 지니고 살고 싶다. 어찌 사랑뿐이겠는가. 나는 친구도 통곡하고 사귀고 싶고, 꽃 한 송이도 통곡하며 보고 싶다. 내 아들 딸들의 통곡하는 아버지이고 싶고, 아내와도 늙어 죽을 때까지 통곡하며 살고 싶다. 하느님도 통곡하며 믿고 싶고, 죄도 통곡하며 짓고 싶다.

 불가에는 이런 말이 있다. " 높이 오르려면 산꼭대기에 가고, 낮게 가려면 바다 밑까지 가라."  나는 산꼭대기에 올라도 통곡하고 싶고, 바다 밑까지 내려가도 통곡하고 싶다. 나는 통곡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 기쁘면 기쁜 대로 통곡하고, 슬프면 슬픈 대로 통곡하고, 감사하면 감사한 대로 통곡하고 싶다. '

 

영화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The Heiress), 1949.

 

 이 수필집에서는 작가가 들려주는 가난한 시절은 현재 내가 겪는 고통의 수준을 '발가락의 때' 정도로 평가 절하시켜 주고 있다. 그의 글은 '낡고 허름한 시절이 가장 소중하고 기억에 남으니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고 다독여 준다. 이 책은 그의 지난한 이력들이 재미와 감동을 곁들이며 상세히 기록돼 있다. 단락 단락 엮어진 짧은 글들을 통해 그의 개인사를 들여다보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일상사를 통해 '생각할 거리'를 제시하는 영민함도 엿볼 수 있다.

 

 

 독학으로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던 아버지와 예술적 기질을 지닌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이웃집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비를 벌던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던 문학 초년생 때의 일 등은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터널 속과 같음'을 감지하게 하는 소재다. 특히 소설 <왕도의 비밀>을 쓰기 위해 중국 현지를 방문한 부분에서는 조선족의 민감한 반응이 새롭게 와 닿았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의 강인함이 어떤 모습인지를 사진처럼 선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저자의 한 후배도 인상적이다. 그의 짧은 인생은 잠을 설치게 했다. 부단히 노력한 만큼 보상 받아야 할 그의 삶이건만 도리어 한순간에 스러지고 만다. 그래서 인생은 '통곡'의 대상인가? 물론 저자가 사용하고 있는 통곡의 의미는 이와 다르다. 세상사 모든 일에 열정을 갖자는 것이니 말이다. 휘청대고 부대끼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지만 다시금 조금씩 부여잡고 여미는 자세를 배워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 때 읽으면 도움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