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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크리슈나무르티 잠언서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by 언덕에서 2009. 12. 9.

 

 

 

크리슈나무르티 잠언서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1980년대 초, 명상서들이 봇물처럼 쏟아지면서 너도나도 인도행을 결심하는 젊은이들이 생겨났었다. 그들에게 절대적인 나침반이 되어 주었던 이는 크리슈나무르티였다. 그는 신지학협회에서 '세계의 스승'이 되기 위한 교육을 받았지만, 이런 메시아적인 역할을 거부하고 사상적인 추종자들과 인연을 끊었던, 거의 전설이 되어버린 사상가다. 그의 영향 탓인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의 안정, 자기 계발, 대인관계, 스트레스와 불안 해소에 관한 명상서는 우리가 들리는 서점에서는 베스트셀러를 장식하고 있다. 지금은 1980년대에 비해 자기 중심적이고 실용적인 명상서를 선호하게 되었지만,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마음의 자유를 찾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여전하다.

 1980년대에 폭발적인 명상 붐을 일으켰던 20세기 최고의 영적 지도자, 크리슈나무르티를 대표하는 책은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일 것이다. 1980년대에 출판된 책은 번역이 대단히 엉성하여 영문책을 읽는 것보다 더 난해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에 우연히 서점에서 책을 고르다가 다시 이 책을 대할 기회가 있었는데 유명한 정현종 시인의 유려한 번역 솜씨로 원문의 의미를 최대한 살려낸 느낌이었다. 이 책은 자유롭다면 행복하다는 변치않는 테마를 말하면서도 결코 '행복의 답안지'를 제시하지 않는다. 외부로부터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아 자신을 들여다보도록 도와준다는 점에서 소크라테스처럼 산파 노릇을 하는 책이다. 또한 최근의 에세이 형태의 가벼운 명상서적들이 담고 있는 공허한 메시지와는 달리, 현대인들의 불안을 직접적으로 대면하고 치유해준다는 점에서 꾸준한 깨우침을 준다.

 크리슈나무르티는 온 세상을 뒤져 가며 선각자와 그들의 사상 체제를 추구하고, 이러저러한 내용의 책들을 읽으면서 '마치 숟가락으로 떠먹여지듯 양육되었던' 우리에게 어김없이 '따르지 말라'며 떠밀어낸다.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가르쳐줄 지도자나 선생 없이, 광적으로 잔인한 세계에 홀로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의 말을 깔대기로 걸러내든 게워내든, 그것은 오직 자신의 '몫'이다. 중요한 것은 삶의 철학이 아니라 매일 내적·외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고통, 폭력, 공포, 사랑, 시간, 죽음과 같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문제들이 스스로 만들어놓은 것임을 깨닫게 된다.

 동기나 선택이 없는, 단지 지켜본다는 일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이것은 언제나 운을 하늘에 맡기고 내일을 생각하지 않는 삶이 아닐까? 실제로 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없다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상황이 어떠하더라도 결과를 좌우하려 하거나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행동한다면 가능하다. 해본다는 것은 없으며 최선을 다한다는 것도 없다. 하거나 안 하거나 둘 중에 하나다. 이렇듯 마음의 어려운 단면들을 탁월하게 표현해낸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는 어떤 체계적이고 도식적인 철학에서도 보지 못한 전혀 새로운 접근방식이다. 당장, 즉각적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크리슈나무르티의 메시지는 현대인들의 무뎌진 정신세계에 끊임없이 깨달음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