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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朋滿座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by 언덕에서 2009. 12. 8.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신화 이해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연 신화교양서이다. 현재까지는 총 3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존의 서구 중심의 시각에서 탈피하여, 우리 정서와 상상력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를 풀어낸 책이다. 당대 최고의 영문번역가, 탁월한 소설가이자 신화학자인 이윤기가 신화에 대한 해박함과 막힘 없는 상상력, 감칠맛 나는 입담으로 신화의 세계를 우리 시대에 되살려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신화 이해와 해석에 필요한 12개의 열쇠를 제시하며, 독자들을 신화 읽기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창조적 신화 읽기를 시도한 특이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들과, 저자가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 유적지와 박물관 등을 직접 다니면서 촬영한 현장 사진들을 곳곳에 수록하여, 현대에서도 여전히 살아 숨쉬는 신화의 이미지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제1권에서는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방법론을, 제2권에서는 테마로 읽는 신화의 12가지 사랑론을 다루고 있다. 제3권에서는 신들의 마음을 살펴보는 12가지 인생론을, 제4권에서는 흥미진진한 헤라클레스의 12가지 과업을 다루고 있다.

 

 언젠가 모 유명 만화가의 신화물 만화가 기소된 지 3년만에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다. (단군신화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기억한다) 판결문을 읽어보니 동물과의 수간, 잔인한 살해장면 등 반인륜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는 폭력 외설물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그런데 그리스 로마신화는 왜 그냥 놔둘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신화집이야말로 수간, 시간(屍姦)에 능지처참이 난무하는 '반인륜적 저작'의 극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소년 권장도서 목록에서 그리스 로마 신화는 예외없이 1순위로 꼽힌다. 왜 그런가. 서구문명의 원류를 이해한다는 효용론을 넘어서 신화적 상상력의 영토를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종교와 과학에 기초한 역사시대의 한계를 넘어설 기초이기 때문이다. 신화의 상상공간을 접하면 인류의 현존질서라는 게 참으로 왜소하고 잠정적인 것이라는 깨달음이 온다. 신화를 두고 인륜 운운하는 발상은 뚱딴지같은 이야기인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많은 판본이 있다. 대개 토마스 불핀치의 저작을 정본으로 삼지만 각 문화권과 언어권의 특성에 맞게 편찬된 평역본들이 더 많이 읽히는 게 사실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겐 제대로 된 토종 그리스 로마 신화 전문가가 있다. 이미 나온 세 권짜리 [뮈토스]를 시발로 장차 50권을 쓸 거라는 그의 신화 기행 계획은 원대하고 대단하다. 그 작업이 완료된다면 아마도 작가 자신이 신화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신화를 이해하는 12가지 주요 키워드를 추출해 구성한 상당히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책이다. 이윤기 특유의 격조 높은 입담이 종횡무진 누비는 가운데 '잃어버린 신발'이라든지 '사랑의 두 얼굴', '노래는 힘이 세다', '술의 신은 왜 부활했는가' 등등으로 우리가 어슴프레 이름만 기억하는 제신들의 내력에 구체성을 부여해 준다. 언젠가 그리스 로마 신화집을 들추다가 도무지 황당하기만 하고 가닥이 잡히질 않아 포기한 경험이 있다면 이 키워드로 접근하는 이윤기본이 아주 적절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