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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집 감상

원본대조 윤동주 전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by 언덕에서 2009. 12. 5.

 

 

 

원본대조 윤동주 전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48년 정음사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尹東柱)의 시집으로 1948년 정음사(正音社)에서 간행되었다. 윤동주는 1941년 연희전문 졸업 기념으로 19편의 자선시(自選詩)로 발간하려다 실패했다. 일본 동지사(同志社) 대학 유학 중 사상 불온,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옥사하는 바람에 발간을 하지 못했다. 자필로 3부를 남긴 것을 기초로 친구 정병욱(鄭炳昱), 김삼불(金三不)과 동생 윤일주(尹一柱)가 주선하여 발행했다.  

 시집의 제목이 의미하는 내용은, 그의 시에 등장하는 숱한 자연의 언어가 그러하듯 그의 내면세계를 그려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시집 초판에는 시인 정지용이 “무시무시한 고독에서 죽었고나! 29세가 되도록 시도 발표하여 본 적도 없이!”라는 유명한 경탄을 넣어 서문을 붙인 바 있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자 곧 일본으로 유학을 갔고, 그 뒤 정병욱은 학병으로 끌려갔다. 윤동주가 일본으로 떠날 때 정병욱에게 자필 시집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한 부 주었는데, 그것이 정병욱의 집에 보관되어 오다, 광복 후 몇 편의 유고시를 보태어 시집으로 간행한 것이다.

 내용은 저자의 사진과 서시(序詩)가 있고, 1부에 <자화상> <소년> <눈 오는 지도> 등 18편, 2부에 <흰 그림자> <사랑스런 추억> 등 5편, 3부에 <참회록> <간(肝)> 등 42편, 4부에 <산울림> <해바라기 얼굴> 등 22편, 5부에 <투르게네프의 언덕> <달을 쏘다> 등 5편, 모두 92편이 수록되었다. 1부는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할 무렵 졸업기념으로 출판하려던 자선(自選)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수록한 것이고, 2부는 도쿄 시절의 작품, 3부는 습작기의 작품이다. 그리고 4부는 동요, 5부는 산문이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아픔을 노래하거나 내면적 자아를 응시하는 시들이 대부분으로 1955년 아우 윤일주(시인, 성균관대 교수) 등 유족들에 의해 88편 수록, 재간행되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주요 작품은 <자화상>(1939) , <서시>(1941), <별 헤는 밤>(1941), <또 다른 고향>(1941), <참회록42>(1942) 등이다.

 

 

                          서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아마 이 시만큼 청소년들에게 널리 알려진 시도 드물 듯하다. 짧고 쉬우면서도 무언가 가슴에 와 닿는 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꿈 많고 낭만이 가득한 청소년들은 이 시를 읽으면서 마치 자신의 마음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되고, ‘나도 이렇게 떳떳하고 순수하게 살아야지’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윤동주의 시는 참으로 낭만적이고 순수한 반면 어딘가 퍽 쓸쓸하고 마음 아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것은 윤동주가 일제 식민 시대에 살았던 지식인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민족주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던 윤동주는 일제와 맞서 싸워 민족의 독립을 이루려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듯이 자신의 목숨까지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시에는 일제에 저항하는 내용이 많다. 그렇다고 시에서 노골적으로 ‘일제와 맞서 싸우자!’라고 말하지는 않고 있다. 자신의 삶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가운데 그런 생각을 느낄 수 있게 할 뿐이다.

   윤동주는 1917년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에서 태어나 그 곳 명동 소학교를 다닌 후, 용정의 은진 중학교, 평양 숭 중학교를 거쳐 연희 전문학교(오늘날의 연세대학교) 문과에 진학하여 폭 넓은 공부와 사색을 하며 시를 썼다. 연희 전문을 졸업한 뒤에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일본에 유학하여 1943년, 동경 입교 대학(入敎大學)에 입학하고 동지사대학으로 전학한 후 , 이 해 7월 여름 방학으로 귀국하려던 그는 고종인 송몽규와 함께 ‘사상범’으로 일본 형사에게 체포되어 독립 운동을 한다는 죄로 2년 징역형을 선고 받고 후꾸오까 형무소에 복역하던 중, 그렇게도 목마르게 고대하던 해방을 불과 몇 개월 앞두고 옥사하고 말았다. 그 때 윤동주의 나이 불과 28세였다.

   유해는 고향 용정에 묻혔지만, 그의 10 주기가 되던 1955년, 모교인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진 그의 시비(詩碑)는 나라 잃은 지식인의 ‘원죄적 부끄러움’을 나타내고 있다. 윤동주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원래, 윤동주가 연희 전문학교를 졸업하면서 그 기념으로 출판하려고 했다가 시의 내용이 일제에 저항하는 것이어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48년, 해방 이후에 그의 친지들이 출판한 유고 시집이다.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선비와도 같은 성품을 지녔고, 민족 문화를 지킴으로써 일제에 저항했던 윤동주의 이상과 희생정신을 이 시집 전체에서 느낄 수 있다. 마광수 교수는 윤동주의 시에서 나타난 아름다움을 '부끄러움의 미학'이라고 정의했다. 


 

<2006년 연세대학교 출판부 간행판 '원본대조 윤동주 전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동주가 검거된 반 년 후, 나는 소위 학병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피차에 생사를 알 수 없게 된 마당에 이르러 나는 동주의 시고(詩稿)를 나의 어머님께 맡기며, 나나 동주가 돌아올 때까지 소중히 잘 간수하여 주십사고 부탁하였다. 그리고 동주나 내가 다 죽고 돌아오지 않더라도 조국이 독립되거든 이것을 연희전문학교로 보내어 세상에 알리도록 해달라고 유언처럼 남겨놓고 떠났었다. 다행히 목숨을 보존하여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자 어머님은 명주 보자기로 겹겹이 싸서 간직해 두었던 동주의 시고를 자랑스레 내주면서 기뻐했다.” 

 윤동주와 절친한 사이였던 정병욱 교수가 전쟁터로 떠나면서 유언처럼 얘기했던 말이다. 그리고 한참 세월이 흘러 연세대학교에서 시전집을 출판하게 되는(2006년 2월) 소원을 이루게 되었다. 그간 동명의 윤동주 시집이 많았지만, 시집 연세대학교 판본 <원본대조 윤동주 전집 하늘과바람과별과詩>는 윤동주 시집 정본을 만들어 윤동주 시 애송자들은 물론 그 연구자들에게 윤동주 시 세계의 진면목을 보여주려 했던 그 동안의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판단된다. 

 이 시전집에 실은 윤동주가 남긴 작품들은,『나의 습작기(習作期)의 詩가 아닌 詩』『창(窓)』『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등 세 개의 원고 노트 묶음 및 윤동주의 산문집과 낱장 원고들, 본인이 직접 스크랩한 신문·잡지 발표 작품들, 그리고 스크랩되지 못한 작품으로서 편자들이 별도로 확보한 신문·잡지 발표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현대어문과 원문 두 가지로 나눠 수록하였다. 이미 1999년 윤동주의 모든 것이 사진판으로 세상에 공개되었으나, 이 시전집은 윤동주의 의도를 정확하게 찾아내어 이를 현대 한국어로 복원해 내는 일, 즉 이상적인 정본을 만들어 내었다. 많은 부분이 미확정 상태로 남아있는 윤동주의 원본 텍스트들은 수많은 연구자들의 땀과 피를 기다리는 미개척림과도 같으며, 이 책이 그 징검다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 시집의 '서문'을 요약함>

 

 

 윤동주는 29세의 젊은 나이로 해방을 앞둔 1945년 2월 일본의 후쿠오카 감옥에서 안타깝게 순절한 저항 시인이다. 그가 옥사하고 3년 뒤에 나온 유고시집은 그가  연희전문 졸업을 기념하기 위하여 뜻깊게 남긴 자필시고(自筆時稿) 3부 중에서 1부를 유일하게 보관하던 친구 정병욱과 아우 윤일주에 의하여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로 몇 십년 동안 수없이 출간되었다.

 윤동주는 대부분의 작품마다 작품의 연대를 적어놓고 있는데 <자화상>이 1939년 9월로, < 별헤는 밤>이 1941년 11월 20일로 되어 있다. 이로 보아 자필 시고 3부를 만들 무렵에는 <별헤는 밤>이 가장 마지막 쓴 작품으로 추정된다. 윤동주는 그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의 제목에서 시사하듯이 하늘과 별과 바람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그에게 있어서 하늘과 별은 주로 그리움과 꿈의 대상으로 나타나 있다. 이 그리움과 꿈은 자신의 삶에 대한 외로움이며 슬픔이기도 하다.  그의 시세계는 그리움과 슬픔으로 점철된 세계였고 그러한 세계에 대한 지향은 하늘과 바람과 별로 투영되었다. 하늘과 바람과 별은 윤동주에게 있어서는 현실의 괴로움을 초월할 수 있는 유일한 표상이었을 것이다. 윤동주는 해방을 눈앞에 두고 일제의 어두운 옥중에서 젊은 나이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저항 시인이다. 그의 괴로운 삶과 시편들은 오히려 어두운 밤하늘의 별처럼 더욱 빛을 발할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이' 살다 간 윤동주, 그는 암흑기에 산 우리 민족을 가장 투철하고 아름답게 빛낸 별의 시인이었다. (문학평론가 권달웅의 평을 요약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