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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문열 장편소설 『젊은날의 초상(肖像)』

by 언덕에서 2009. 11. 24.

 

 

이문열 장편소설 『젊은날의 초상(肖像)』  

 

이문열(李文烈.1948∼ )의 연작소설로 1981년에 발표되었다. 「젊은 날의 초상」은 우리 시대의 격동을 젊음의 격정 속에 포괄하고자 했던 이문열의 '하구(河口)'. '우리 기쁜 젊은 날', '그해 겨울' 로 이어지는 3부작으로, 각각의 작품이 독립된 중편소설이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 그리고 끝없는 방황으로 점철된 주인공의 젊은 시절. 주인공은 고통을 통해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을 실감하고, 고뇌를 겪으면서 새로운 지적인 세계에 폭넓게 접근하며, 방황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인식하게 된다. 즉, 저자는 젊은 주인공 '나'가 정서적, 충동적, 지적 모험을 겪으면서 자신의 참모습을 찾는 과정을 세밀히 묘사하고 있다.

「젊은 날의 초상은 1960년대 한 젊은이의 방황과 정신적 고뇌, 여정, 회귀의 과정이 작가 자신의 자전적 체험과 맞물려 펼쳐진다. 소설 속의 주인공은 작가인 이문열 자신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문열의 젊은 시절 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이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보낸 대학 입학 전의 체험<하구(河口)>, 대학입학 후 문학청년으로서의 방황 <기쁜 우리 젊은 날>, 도시와 학교를 떠나 떠돌며 얻게 되는 그 해 겨울의 체험 <그 해 겨울>으로 이루어져 있다.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 그리고 끝없는 방황으로 점철되어 있는 주인공의 젊은 시절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지는 않다. 고통을 통해서 살아간다는 것의 어려움을 실감하고, 고뇌를 겪으면서 새로운 지적 세계에 폭넓게 접근하며, 방황을 통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인식하게 된다는 결말이다.

 

 

영화 <젊은 날의 초상, Portrait of the Days of Youth> , 1990 제작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1. 하구 (河口)

 주인공 영훈이 목적 없는 떠돌이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출발을 도모하기 위해 '세상에 하나뿐이고 아버지와 크게 다를 바 없는 형'이 살고 있는 강진에 도착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제 막 산업화의 바람이 몰아닥치기 시작한 조그마한 포구인 강진에서 영훈은 힘들고 고통스런 현실을 벗어나기 위한 출구로서 대학 진학을 선택한다. 하지만 영훈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은 그가 대학 입학 준비에만 몰두할 수 있을 만큼 녹녹하지 않다.

 영훈은 틈틈이 형이 하고 있는 모래 채취 작업을 도와주며 힘들게 대학 입시 준비를 해나간다. 그러한 생활 속에서 영훈은 장티푸스에 걸려 심한 육체적인 고통을 당하기도 하며 다른 한편으로 하구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나기도 한다.

 영훈이 강진에서 알게 되는 여러 인물들-별장집에서 살아가는 황과 황의 누이동생, 서동호와 그 부친, 모래선의 선주인 최광탁과 박용칠-은 모두 마음속에 각기 다른 아픈 상처들을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그들이 살아가는 과정을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때로는 직접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함께 부대끼면서 영훈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보다 넓게 삶의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다. 결국 영훈은 각고의 노력 끝에 검정고시를 통과하고 대학에 진학하게 되지만 아직 그의 방황이 완전히 종결된 것은 아니었다.

 서동호의 부친의 어두운 과거, 별장집 남매의 음울한 삶의 내막, 그리고 박용칠의 죽음과 그에 뒤이은 최광탁의 몰락 등, 강진에서 인간적인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이 삶의 불행이나 허망함에 빠져 괴로워하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아무런 현실적 도움을 줄 수 없는 영훈은 쓸쓸한 마음으로 또 다른 유적(流謫)의 길-『우리 기쁜 젊은 날』-로 접어들게 된다.

 

 2.우리 기쁜 젊은 날

 방황의 날들을 청산하고 대학에 들어온 영훈은 처음 얼마동안은 부푼 희망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가지만 차츰 그의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현실 속에서 갈등과 괴로움에 휩싸이게 된다. 영훈은 독서에 열중하거나 혹은 학생 운동에 관심을 보이고 문예 서클에 가입하는 등 다양한 모색을 통해 삶의 무거움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찾고자 노력한다.

 그러던 도중 영훈은 하가와 김형이라는 좋은 길동무를 만나 술과 현학적인 토론에 몰두하기도 하고, 혜연이라는 영문학과 여학생과 달콤한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시도들과 잠시 동안의 빛의 나날들은 가난으로 대표되는 현실의 무게와 주인공 자신의 방탕한 생활로 인해 이렇다할 의미를 얻어내지 못하고 우울한 결말에 다다를 뿐이다. 거기에 교우들과의 불화, 엉망이 되어버린 학교 성적, 점차 가중되는 경제적 어려움은 영훈을 피로와 혼란 속에 빠뜨린다. 더더구나 서울역 근처 허름한 여인숙에서의 '번데기'라고 불리는 소년과의 만남, 그리고 급작스런 김형의 죽음은 영훈으로 하여금 지난 2년간의 대학생활을 진지하게 돌아보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깊은 절망감과 허무감 속에서 괴로워하던 영훈은 보다 확실하게 알고, 더욱 큰 가치를 붙잡으며, 미래의 더 큰 사랑을 위해 '그해 겨울' 긴 여로에 접어든다.

 

3. 그해 겨울

 여행길에 오른 영훈은 먼저 광부가 되기 위해 강원도로 향한다. 하지만 탄광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한 뒤 영훈은 광부 되기를 포기하고 탄광촌을 떠난다. 강원도의 어느 어촌에 도착한 영훈은 어부가 되어보고자 시도하지만 그조차 이루어지지 못하자 할 수 없이 부근의 술집에서 방우(머슴) 생활을 하게 된다.

 영훈은 술집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여러 인간 군상들의 모습들을 본다. 거만한 잎담배 감정원들과 그들에게 아첨하는 담배 경작자들, 술집 여자들과 엉터리 사장들, 사이비에 가까운 신문 지방주재 기자들이 바로 그들이다. 영훈은 그들을 씁쓸한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다른 한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평온함에 잠겨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평온함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술집에서 머무른 지 채 두 달도 되지 않아 마음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자아의 목소리에 떠밀려 영훈은 술집을 나오게 된다. 목적지인 바다로 향하는 노정에서 영훈은 여러 사람의 길동무를 만나 대화를 나눈다. 그들 중 어느 젊은 폐병쟁이의 비웃음으로 인하여 대학 시절 자신이 추구했던 모든 노력들-세상과 미와 지식에 대한-이 한낱 허상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깨달은 영훈은 다시 한 번 깊은 절망감에 빠져든다.

 그러나 조그마한 시골 읍내에서 우연히 재회한 먼 친척 누님을 통해 그는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거기에서 힘을 얻은 영훈은, 누님의 만류를 뿌리치고 죽음의 고비까지 이겨내며 다다른 창수령에서 아름디움의 실체와 대면하며 감동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영훈을 도와준 칼갈이 사내-믿었던 친구의 배신으로 19년 동안이나 교도소에서 복수의 칼을 갈았던-의 사연을 들으며 숙연한 기분에 잠긴다.

 마침내 조그마한 바닷가 어촌에 도착한 영훈은 자신의 마음은 아랑 곳 없이 포효에만 열중하고 있는 바다를 바라보며 삶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자각하게 된다. 그것은 결국 영훈 자신, 혹은 우리들 인간들이 거대한 허무와 절망의 파도에 의지해 떠 있는 가엾은 존재일 뿐이라는 자각이다.

 그러한 자각 속에서 영훈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비록 우리들의 삶이 신마저 구원하기를 단념한 절망적인 것이라고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갈매기는 날아야 하고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하듯이. 그리하여 복수에 대한 아집을 바다로 던져버린 칼갈이 사내 옆에서 영훈 역시 치기 어린 절망으로 상징되는 독약병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향한 상행열차에 올라탄다. 이제 주인공 영훈은 하나의 힘들고 기나긴 여행을 마치고 또 다른 삶의 여행길에 오르게 된다.

 

영화 <젊은 날의 초상, Portrait of the Days of Youth> , 1990 제작

 주인공이 부산의 변두리 하구인 강진(실제로는 당시 부산의 변두리 하구 동네인 하단동이나 당리동 인근일 것임)에서 처음 본 것은 안개와 갈대이다. 이것은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 가치관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상태를 대변해 주는 것이다. 그는 정상적인 삶을 위해 강진에 정착하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 무사히 검정고시와 대학시험을 마친 그는 강진을 떠난다.

 『젊은 날의 초상』은 1960년대 문학청년으로서의 작가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고뇌가 많이 반영되었지만, 그것이 그만의 경험으로 읽히지 않고 이 시대의 젊은이들이 공통적으로 겪게 되는 통과제의로 읽을 수 있다. 삶의 형태는 바뀌지만, 본질적인 부분은 바뀌지 않는다. 다만 형태를 달리할 뿐이다. 작가는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정열'이라고 꾸준히 이야기한다.

 

 

 그해 겨울의 여행길에서 영훈에게 절망은 물론이고 간밤에 쓴 편지(유서)도 지난 6개월 내내 가방 밑바닥을 굴러다니던 약병도 이젠 파도 속에 던져 버려야 될 만큼 생에 대한 갈망으로 바뀌게 된다. 영훈은 절망을 버리고 삶을 택한다. 절망에 관한 인식은 그의 새로운 삶 속으로 이끌게 된다. 영훈은 절망을 죽음이 아니라 불필요한 감상, 익기도 전에 병든 그 자신의 지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삶에 대한 갈망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의 "젊은 날의 자전적인 소설 「우리 기쁜 젊은 날」에서 보여 준 그의 방황도 많은 젊은이들에게 낭만을 느끼게 했고, 젊은 날의 방황이란 인생의 멋스런 대목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방황을 보낸 본인에겐 견디기 힘든 인고의 나날이었고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는 상처들이기도 했다. 소설로서는 재미있는 책이지만 인생의 참된 의미를 고민하는 젊은이라면 필독해야할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