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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손소희 장편소설 『남풍(南風)』

by 언덕에서 2009. 11. 11.

 

 

손소희 장편소설 남풍(南風)

 

 

 

    

손소희(孫素熙.1917∼1987)의 전작 장편소설로 1963년 [을유문화사]에서 간행되였다. 일제 말기부터 광복을 거쳐 6ㆍ25전쟁 그리고 1ㆍ4 후퇴까지를 배경으로 사회적 현실 때문에 불행하게 실연당해야 했던 두 남녀의 비극적인 사랑과, 전통적 윤리의식 속에서의 여성 수난의 역정을 그린 소설이다.

 손소희의 작품은 정밀한 관찰로써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펼쳐낸 리얼리즘의 세계이다. 그러나 항상 따스한 정황의 손길이 이를 감싸안고 이해하면서 새로운 계기를 개시해주고 있다. 역사의 뒤안길에서 기울어가는 인생을 낱낱이 밝혀내면서도 외로운 소외감에다 생기를 불어 삶의 새 의미를 던져주는가 하면 남편의 갖은 행패에도 끝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촌부에게 드높은 빛을 밝혀주고 있다.

 

소설가 손소희( 孫素熙.1917-1987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과부의 아들로 의사가 되어 신경(新京)으로 취직해 가는 세영은 어릴 때부터 오빠를 따르다 영원한 사랑으로 발전한 남희와 뒷날의 약속을 굳히며 만주로 떠난다.

 그러나 남희는 아버지의 강경한 요구로 상준과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하고 아기를 낳으면서 일견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한다.

 한편, 만주의 일인(日人) 병원에서 우수한 외과의사로 인정받은 세영은 아키코 등 간호원의 적극적인 구애와 중매를 받으면서도 동요 없이 독신으로 지낸다. 세영이는 휴가 때 함경도 고향으로 내려와 다시 남희를 만나고, 그녀는 세영의 집요한 사랑에 충격을 받아 정신병에 걸린다.

 해방이 되고, 혼란 속에 고향으로 돌아온 세영은 병원을 개업하며 공산당의 횡포와 남희 친가의 파탄을 목격한다. 남편을 잃은 남희를 치료하던 세영은 1.4 후퇴 때, 회복된 그녀를 데리고 남하하던 중 폭격을 받는다. 남희는 자신의 ‘잃었던 혼보다 열 배 스무 배 더 중요한’ 청각을 잃은 세영을 끌어안고 ‘햇빛과 자유가 숨쉬는 고장’인 남쪽으로 향한다.

 

 

 

 이 작품에서는 남희ㆍ아끼꼬 등 여러 여성의 심리묘사를 통하여 작가의 서사적 기량이 뛰어나게 발휘된다. 삶의 자율성이 인간주의의 기본적인 정신이라는 점을 작품의 주제로 삼고 있으며, 설정된 각 인물들이 적절히 성격화됨으로써 작가의 섬세하고 치밀한 감수성과 상상력이 융합되게 하였다.

  작가는 오랜 병고 때문에 유달리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탓인지 소설의 상당 부분은 남녀간의 애정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남녀관계는 통속적인 연애도 아니며, 육체적인 관능도 아니다. 오히려 감정의 미묘한 변화를 포착하면서 남녀의 내면적 대결을 통해 인간과 인간의 갈등으로 심화되는데, 여기서의 내면적 대결은 지극한 순수, 명징한 자아가 접촉, 교란되는 과정을 이룬다. 

 

 

 우리 시대의 참담한 수난인 10여 년간의 배경 속에 세영과 남희의 사랑에는 보수적인 윤리ㆍ결혼관으로부터 일인의 만주 척식, 굳이 국적을 일본으로 고집하는 여인의 집념, 마르크시즘 운동으로 맺은 한ㆍ일의 두 부부, 해방 후의 혼돈과 6ㆍ25 등 사회 격동적 민족사의 뼈저린 고통이 압도한다.

 그러나 그 같은 고난을 뚫고 두 사람이 결합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지순한 사랑 때문이었다. 개인의 삶과 시대의 힘이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개인의 운명이 결정됨을 세영과 남희의 비극적 사랑을 통하여 이해시켜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