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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유주현 단편소설 『신의 눈초리』

by 언덕에서 2009. 11. 13.

 

유주현 단편소설 『신의 눈초리』

 

 

유주현(柳周鉉,1921~1982)의 단편소설로 1976년 [한국문학]지 3월호에 발표되었으며, 1977년 [문리사(文理社)]에서 같은 제목의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유주현의 작품은 한마디로 말하면, 문장이 난잡하지 않고 간명하며, 살아 움직이는 것이 특징이다. 어느 작품을 대해도 장면 묘사나 대화가 선명하다. 이 소설은 인간존재의 근원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고 있는 작품이다.

 

소설가 유주현(柳周鉉, 1921~1982 )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소심한 성격의 ‘나(P선생)’는 우연히 중학 동창인 강인규와 만난다. 강인규는 나를 강제로 끌다시피 하여 술집으로 데려간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그는 난데없이 소설의 소재가 될 만한 기막힌 사람의 얼굴을 보여주겠다고 제의하면서, 한식에 내 고향이자 나의 형님이 살고 있는 상계동에서 만나자고 말한다.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어정쩡한 약속을 한다. 수락산 밑 상계동이 고향인 나는 그와의 약속을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한식이 되자 성묘를 위하여 고향 마을에 간다.

 비가 오는 데도 불구하고, 형의 집 바로 옆에서 살고 있다는 강인규는 나를 기다렸다면서 마중을 나온다. 앞장서서 떠들던 그는 내가 성묘를 마치고 내려오자마자 나를 자기 집으로 데려가서 술상을 차린다. 그곳에서 나는 도립병원 정신과 의사였다가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된 채 걷기 연습을 하는 그의 부친을 본다. 반쪽 안면근육이 마비된 그의 표정은 끔찍하기 짝이 없다.

 그의 부친은 마당에서 걷기 연습을 시작하기 전에 지붕의 용마루 끝 기왓장 쪽을 집념 어린 눈빛으로 쏘아보다가 마비된 왼쪽 손과 다리를 흔들며 걷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뜀박질을 하려고 하였으나 넘어지고 만다. 도움을 받지 않고 일어서려는 그의 얼굴에서 나는 절망의 눈빛을 본다. 그것은 임종 직전 죽음과 겨루는 듯한, 허탈과 실의와 분노가 뒤섞인 그런 눈초리이다.

 술에 취한 강인규는 “나는 저렇게 삶에 대한 치사스러운 집착은 가지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월남전에 참가해서 저질렀던 살인·강간의 대상자가 보여주었던 눈초리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그 어느 것도 그의 부친의 눈초리처럼 소름이 끼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 뒤 일주일이 못 되어 나는 강인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복상사가 사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문상을 마친 나는, 마당에 내려서서 이전 그의 부친이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하던 그대로 용마루 끝 하늘을 본다. 그곳에서 나는 싸늘하고 비정한 어떤 눈초리를 본 것 같다고 느낀다.

 

 

 이 작품은 외부적이며, 감각적인 것으로서가 아니라, 내부적이며, 정신적인 인간 본연의 생명을, 그리고 원시적인 인간의 순수성을 보여 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강 군은 아버지에 대해 선과 악, 회한, 고집, 사생관이 담긴 눈초리를 보며, 저주라는 생각마저 가지나, 결국은 자신이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다는 휴머니티를 독자에게 보여 준다. 유주현의 작품은 삶에 대한 회의하든지, 아니면 집념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소설은 어떤 상황에서라도 삶을 영위해나가겠다는 사람과, 치사스러운 삶은 차라리 일찍 마무리 짓겠다는 사람 사이에서 야기되는 갈등을 통하여 인간존재의 근본 물음에 대한 의문을 제시한다.

 작가는 이 소설의 후기에서,  “신의 존재를 외부에서 찾으려 하는 것은 일종의 샤머니즘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 작품은 이후〈조선총독부> 등의 작품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시야 확대와 더불어, 다양한 관심을 지닌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규명에 천착하는 시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