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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효석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

by 언덕에서 2009. 11. 5.

 

이효석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

 

    

이효석(李孝石, 1907∼1942)의 대표적 단편 소설로 1936년 [조광]에 발표되었는데 1930년대를 대표하는 단편 문학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수작이다. 이효석은 1933년을 기점으로 사회 의식적 소설을 지양하고, ‘한국적 자연미’를 배경으로 순박한 인간상을 주제로 애욕 문제를 묘사하기 시작했다.  전편에 시적(詩的) 정서가 흐르는 산뜻하고도 애틋한 명작소설이다.

 이 소설은 이효석의 문학 세계가 가장 잘 응축된 작품으로, 괴로운 삶의 현장을 묘사하기보다는 인생을 자연과 융화시켜 서정적이고 미학적인 세께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생을 자연과 융화시킨 예술성 시적인 장면 묘사, 유추를 중심으로 한 사건 전개. 황토색 짙은 서경 등이 주제와 잘 어우러지고 있다. 주요 배경은 봉평에서 대화에 이르는 달빛이 비치는 밤길인데 이 밤길은 단순한 길이 아니라 주인공에게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꿈의 길이며 환상의 세계이기도 하다. 허생원은 부드러운 달빛이 흐르는 달밤에 옛 인연 이야기를 꺼내며 그로 인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교차됨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낭만적인 배경과 분위기가 꿈과 환상의 세계를 더듬는 허생원의 내면세계를 부각시킴으로서 이 소설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 소설에서 우리는 이효석 문학의 본질적인 특징을 거의 다 볼 수 있다. 자연과의 배경의 긴밀한 조화, 치밀한 구성,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묘사 등의 기법들은 이효석만의 스타일을 형성하는 요소들이다. 특히 달빛과 어우러진 메밀꽃이 주는 신비스럽기까지 한 분위기로 인하여 과학적 관점에서는 성립되지 않는 ‘같은 왼손잡이라는 것을 통한 부자 관계의 암시’도 설득력을 가지게 한다.

 

영화 [메밀꽃 필 무렵], 1967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장돌뱅이 허생원은 하룻밤의 정을 나누고 헤어진 처녀를 잊지 못해 봉평장을 거르지 않고 찾는다. 장이 끝나고 술집에 들렸던 허생원은 젊은 장돌뱅이 동이가 충줏집과 어울려 놀고 있는 것을 보고는 화가 치밀어 심하게 나무라고 따귀까지 때려 쫓는다.

 그러고 나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동이가 달려와 나귀가 발버둥치고 있음을 알려주고, 허생원은 자기를 외면할 줄로만 알았던 동이의 마음 씀씀이에 고마워한다. 그날 밤, 허생원은 다음 장이 서는 대화까지 조선달, 동이와 함께 동행을 하며 달빛에 취해, 성서방네 처녀와 맺었던 하룻밤의 인연을 다시 얘기한다. 봉평장이 선 날 밤 허생원은 개울가에 목욕하러 갔다가 물방앗간에서 성서방네 처녀와 마주치게 되고 집이 파산을 한 처녀의 한탄을 듣다가 관계를 맺게 된다. 그 다음 날 성서방네는 제천 어디론가 떠나고 허생원은 처녀를 찾아다녔지만 기어이 찾지 못했던 것이다.

 허생원은 낮에 있었던 일을 사과하던 끝에 동이의 집안 얘기를 듣게 되는데 달도 차지 않은 아이를 낳고 쫓겨났다는 동이의 어머니가 바로 성서방네 처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동이로부터 어머니의 고향이 봉평임을 확인한 허생원은 발을 헛디뎌 개울에 빠지고 동이가 그를 부축해 엎는다. 그리고 허생원의 눈에 동이가 왼손잡이임이 파악한다. 허생원은 예정을 바꿔 대화장을 보고 나서 바로 동이의 어머니가 산다는 제천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이 작품은 장돌뱅이의 애환을 그렸지만 그들의 현실 자체를 주목하지는 않았다. 작가는 허생원ㆍ조선달ㆍ동이를 장돌뱅이라는 특정한 계층이나 집단의 현실적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인물의 전형으로는 그리지 않았다. 이들은 봉평에서 대화까지의 자연 풍경의 한 부분으로 보일 정도로 공간적 배경과 융합되어 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산문적이라기보다 시적이다. 이러한 시적 분위기의 조성에는 작가가 극적 제시보다는 요약적 제시 또는 편집자적 논평을 즐겨 사용한 것과도 관련이 있다. 이 작품은 시적 정서가 향토적 배경과 토속적인 언어와 함께 전편에 산뜻하고도 애틋하게 흐르는 소설이다. 작자는 이 작품에서 '애욕의 신비성을 다루려 했다'고 그의 논문 "현대 단편 소설의 상모"에서 밝히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허생원의 눈에 동이가 왼손잡이임이 파악하는데서 부자간임을 암시하고 있으나 의학계에서는 왼손잡이는 유전이 아니므로 부자간의 연관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비과학적이라는  지적이 줄곧 있어왔다.

 작가는 이 작품의 목적을, 허 생원이나 동이의 인생에 대한 것보다 숨 막힐 듯한 메밀꽃이 피는 달밤의 정경을 나타내려는 데 초점을 두었다. 조 선달, 허 생원, 동이 등은 인격체로서의 소설적 인물이 아니라, 당나귀와 같은 자연의 일부로서의 사물의 차원에 해당한다.  이 작품은 줄거리보다 작품의 분위기와 서정성을 중시한 시적 수필같은 소설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