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인형
류시화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
- 시집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푸른숲 1991)
라즈니쉬 명상가로 더 유명한 류시화 시인 (1957 ~ )에 대해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시인이자 번역가이며 본명은 안재찬이다. 충북 옥천 출생이다. 대광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국문과 졸업했다. 198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1980∼1982년 시운동 동인으로 활동했으나, 1983년부터 1990년까지 창작활동을 중단하고 구도의 길을 걷기 시작한 후 명상서적 번역 작업을 시작, 이 때 <성자가 된 청소부>,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티벳 사자의 서>, <장자, 도를 말하다>, <마음을 열어주는 101가지 이야기>,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등 명상과 인간의식 진화에 대한 주요 서적 40여 권을 번역하였다. 이 기간 중인 1988년 '요가난다 명상센터' 등 미국 캘리포니아의 여러 명상센터를 체험하고, <성자가 된 청소부>의 저자 바바 하리 다스와 만나게 된다. 1988년부터 열 차례에 걸쳐 인도를 여행하며, 라즈니쉬 명상센터에서 생활해왔다. 1994년에는 태국, 인도, 스리랑카, 네팔, 히말라야 등지를 여행했다.
소금인형이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갔다. 바다를 알기 위해 들어간 것이었는데 소금은 녹아버리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그냥 녹아버린 것이다. 소금은 바다에서 만드는데 소금인형이 바다에 녹아버렸으니 바다의 일부가 되었다는 말이 된다. 위의 시에서 '나'는 자신이 소금인형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신'의 깊이를 알기 위해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녹아버리고, '당신'의 일부가 되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부분에서는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당신'을 알기 위해 노력했는데 결국 자신은 바다에 뛰어든 소금인형처럼 녹아버렸다. 결국은 '나'는 '당신'의 일부가 되었다는 말이다. 바다와 소금인형이 있었다. 소금인형은 처음 접한 바다가 무척이나 신기하여 바다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했다. 그러나 바다는 자기에 대해 알고 싶으면 바다에 발을 담그라고 했다. 그 의미를 소금인형이 모르겠다고 하니 더 들어오라고 했다. 이런 행동이 반복되어 소금인형은 모두 녹았고 바다는 자신에 대해 알고 싶으면 이 정도의 희생은 각오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명상으로 가득한 시인의 소금인형은 이런 전설에 입각하여 바다에 대한 큰 이해와 그것에 따른 희생이 무엇인지를 우리의 뇌리 속에 각인시키는 것이 이 시의 이미지이다.
위의 시는 가수 안치환이 부른 노래 가사로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시이다. 위의 시에서 표현하고 있는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드는 일은 무엇일까? 지금 이 시간에도 ' 그 무엇'의 깊이를 재기 위해 누군가 ' 그 무엇' 속으로 뛰어들고 있을 것이다. 아침에는 밥 한 숟가락이, 낮에는 물 한 모금이, 저녁에는 서늘한 바람 한 줌이 우리의 피 속으로 들어와 녹아버린다. 이 세상에 우리가 감사해야 하는 까닭은 ‘나’를 위해 누군가, 무엇인가 자꾸 ‘소금인형’이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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