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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어떤 개인 날 / 노향림

by 언덕에서 2009. 11. 5.

 

 

 

어떤 개인 날

                                              노향림

 

낡고 외진 첨탑 끝에 빨래가

위험하게 널려 있다.

그곳에도 누가 살고 있는지

깨끗한 햇빛 두어 벌이

집게에 걸려 펄럭인다.

슬픔이 한껏 숨어 있는지

하얀 옥양목 같은 하늘을

더욱 팽팽하게 늘인다.

주교단 회의가 없는 날이면

텅 빈 돌계단 위에 야윈 고무나무들이

무릎 꿇고 황공한 듯 두 손을 모은다.

바람이 간혹 불어오고

내 등 뒤로 비수처럼 들이댄

무섭도록 짙푸른 하늘.

 

 

- 시집 <후투티가 오지 않는 섬> (창비 1998)

 

 

 

 

 

 

 

 

 

 

 

 

 

 

 

맑게 개인 하늘을 소재로 한 맑은 수채화처럼 아름다운 이 시에서는 '짙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빨래가 널려 펄럭인다. 그 빨래를 '햇빛 두어 벌'로 표현하고 있다. 그 햇빛 두어 벌이 "하얀 옥양목 같은 하늘을 더욱 팽팽히 늘인다"는 표현은 읽는 이의 상상력을 극대화시켜 빛나는 것으로 환치시키는 마력을 발휘한다. 첨탑과 빨래, 하얀 옥양목과 비수, 돌계단과 야윈 고무나무의 대비는 시를 누비이불처럼 요철이 심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한다.

 

 '어떤 개인 날'. 우리에게 참으로 낯익은 글귀다. 어둠의 터널을 뚫고 한 줄기 빛이 비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은 이 글귀는 우리들 삶의 깊은 곳을 건드린다. 그렇기에 동서를 불문하고 많은 예술가의 사랑을 받았나 보다.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 중 '어떤 개인 날', 황동규 시집 '어떤 개인 날', 노향림의 시 '어떤 개인 날' 등 이 글귀를 사용한 예술작품들이 많다는 사실은 이를 잘 말해 준다. 이 좋은 말속에도 옥에 티가 있다. 표기법상 '개인'은 '갠'의 잘못이다. 기본형이 '개이다'가 아니라 '개다'이므로 '개니 / 개어 / 갠' 등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갠 날'이 바른 표기다. '어떤 개인 날'을 '어떤 갠 날'로 고쳐 놓으면 왠지 감칠맛이 떨어지기 때문에 사용한 시적 언어일 뿐이다.

 

 노향림 시인(1942 ~ )의 시적 상상력은 눈부시도록 아름답다. 이런 시를 읽을 때는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히고 높은 하늘을 우러러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첨탑이 가리켜 보이는 곳. 빨래가 펄럭이는 곳. 세상의 깃발들 중에서 빨래처럼 높이 받들어야 할 깃발이 또 있을까? 그 깃발이 게양된 곳에는 언제나 맑은 하늘이 있고 햇빛이 있고 바람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기에는 세상의 먼지로 더럽혀졌으나 원래는 그렇지 않았던 우리들의 순결한 열망이 높게 펄럭인다. 빨래가 마르는 저 드높은 곳, 외진 첨탑이 있는 곳은 우리들의 교회다. 하늘이 너무 맑아서 잎새 떨어진 고목나무들도 경배를 한다. 그 하늘은 슬픔도 갖고 있고 비수도 지니고 있다. 아아, 맑은 가을하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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