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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산 너머 남촌에는 / 김동환(金東煥)

by 언덕에서 2009. 11. 3.

 

 

산 너머 남촌에는

 

                                                                         김동환(金東煥.19011958)

 

 

1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

 

꽃피는 사월이면 진달래 향기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

 

어느 것 한 가진들 실어 안 오리

남촌서 남풍불 제 나는 좋데나.

 

2

 

산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저 하늘 저 빛깔이 저리 고울까.

 

금잔디 너른 벌엔 호랑나비떼

버들밭 실개천엔 종달새 노래,

 

어느것 한 가진들 들려 안 오리

남촌서 남풍불 제 나는 좋데나.

 

3

 

산너머 남촌에는 배나무 있고

배나무꽃 아래엔 누가 섰다기,

 

그리운 생각에 재를 오르니

구름에 가리어 아니 보이네.

 

끊었다 이어 오는 가는 노래는

바람을 타고서 고이 들리네.

 

- [조선문단] 18호(1927.1)

 

 


 

 이 시는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3월의 봄날, 햇살 비치는 창가에서 읽으면 좋을 듯한 쉽고 정다운 시이다. 이상향을 추구하는 시인의 욕구가 자연과 융합되어 자연의 운율적 질서와 동화됨으로써 민요적 리듬을 창출하고 있는작품이다. 시인이 보여주었던 북방의 억센 사투리와 강한 남성적 이미지와는 대조적으로 섬세하고 부드러운 언어 구사와 여성적 어조로 표현되어 있어 그리운 고향을 그림처럼 보여 주고 있다. 김동환은 <국경의 밤>, <눈이 내리느니>와 같은 작품에서는 북방의 춥고 어두운 겨울을 배경으로 암울한 시대 상황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는 데 반해, 이 시에서는 겨울이 없는 '남촌'을 무대로 하여 그가 그리워하는 이상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 시에 나오는 '진달래 향기', '보리 냄새', '호랑나비떼', '종달새 노래'로 대표되는 사랑과 평화의 낙원으로서의 '남촌'이 지니고 있는 희망과 사랑의 이미지는 배나무 꽃 아래 서 계실 '님'이 비록 구름에 가려 보이지는 않더라도, 내게 전해 주는 사랑의 노래는 봄바람을 타고서 계속 들려오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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