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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가을이 깊어가네 - 피아골의 단풍

by 언덕에서 2009. 11. 1.

 

 

가을이 깊어가네

 

 

  오랜만에 지인들과 가을 산행을 갔다. 코스는 '우리동네 출발 -->하동 --> 구례 --> 피아골 연곡사 --> 하동 화개장터 --> 귀가 '이다.

 

  하루 코스로는 비교적 적당하리라고 생각하며 새벽에 나섰는데 돌아올 때 고속도로에서 길이 엄청 밀리는 바람에 자정이 다 되어 귀가했다.

 

 

 

 경남 하동의 섬진강 강변이다. 늦은 가을임에도 재첩잡이하는 분들은 분주하다. 섬진강은 14세기 경 고려시대에 섬진강 하구에 왜구가 침입하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갔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이때부터 '두꺼비 섬(蟾)'자를 붙여 섬진강이라 했다고 한다. 봄에는 매화, 벚꽃 등으로 분주했는데 지금은 좀 을씨년스런 분위기이다.

 

 

 

  아침 6시 30분경에 출발했는데 11시 30분 경에 하동에 도착했다. 어중간 한 시간이어서 함께 간 일행들과 일단 점심을 먹었다. 조촐한 찬이었지만 시장했는지 다들 열심히 먹었다. TV에서 '진미중의 진미, 섬진강 참게장' 운운하는 것을 자주 보았는데 드디어 오늘 맛보게 되었다. 괜찮은 맛이었지만 '호들갑 떨게 만들 정도'의 별미는 아닌 것 같다. 재첩국의 재첩알이 아주 잘았지만 그게 오히려 중국산이 아닌 증거가 아니냐는 일행의 말에 머리를 끄덕여 보았다. 국물맛은 비교적 개운하고 시원했다. 우리가 어린 시절, 새벽이면 골목길마다  "재첩국 사이소!"라는 아낙네의 목청터지는 소리에 아침을 열었다. 당시의 국물맛은 비릿했지만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진하고 그리운 맛이었다.

 

 

 

 

  일행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올해는 비가 많이 오지 않아 단풍잎이 곱게 들지 않았다고 한다. (정말 비가 많이 오지 않았나?)전번주가 시기적으로는 단풍구경의 절정기였는데 그때도 단풍색깔은 곱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실 대도시의 작은 산에서는 이토록 짙은 단풍보기가 드물다. 무심하게 지나치곤 했던 계절의 수목들이 이토록 고운 줄은 몰랐다.

 

 

 

 

  피아골이란 이름은 6·25전쟁 뒤에 그 이름을 딴 반공영화가 나옴으로써 흔히 전쟁 때 빨치산과 이를 토벌하던 국군·경찰이 많이 죽어 '피의 골짜기'라는 뜻으로 붙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옛날 이곳에 곡식의 하나인 피를 가꾸던 밭이 있어 '피밭골'이라 했는데 후에 그 이름이 피아골로 바뀐 것이다. 일대는 각종 식물이 능선별로 분포하며, 특히 울창한 활엽수의 가을단풍이 지리산 10경의 하나로 꼽힌다. 산과 계곡, 사람을 붉게 물들인다 하여 삼홍(三紅)이라 하며, 홍류동(紅流洞)이라고도 한다. 계곡 아래 약 8㎞ 지점에 위치한 연곡사(燕谷寺)는 신라 544년(진흥왕 5)에 연기조사가 창건한 절로 여러 번 전소·재건을 거듭했다.

 

 

  연곡사 대웅전 앞에서 우연히 눈에 띈 기왓장에 씌어진 글씨...  돌아가신 부친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자녀분들이 절에 시주한 것일 게다. 인생은 무상한 것이나 인간이 한 행동은 길이 남는다. '극. 락. 왕. 생' 이란 군더더기 없는 넉자가 간단명료하여 여운으로 가슴에 남는다.

 

 

 

  단풍나무 아래서 포즈를 취해보았다. 하하..... 모델이 별로여서 항상 사진이 잘나오는 적이 없다.

 

 

  연곡사의 연못은 이미 퇴락한 낙엽들의 향연이다. 그래도 내년에, 새봄이 오면 푸른 싹이 돋고 그 이후엔 향이 깊은 꽃이 필 것이다.

 

 

  지리산 봉우리인 반야봉 기슭에서 발원한 물과 노고단 기슭에서 발원한 물이 질매재에서 만나 계곡을 이루다가 내동리에서 연곡천을 형성, 섬진강에 흘러든다. 임걸령에서 연곡사에 이르는 32㎞에 걸친 깊고 푸른 골짜기로 광활한 원시림과 맑은 물, 삼홍소(三紅沼)를 비롯한 담소(潭沼)·폭포 등이 어울려 해마다 이즈음이면 단풍은 절경을 이룬다.

  모처럼 나들이를 하고 이곳저곳을 줄기차게 돌아다녔더니 금방 피곤해진다. 이런 휴식이 에너지가 되어 다음주에는 더 일이 잘 되고 건강하고 즐거워질 것이다 라는 주문을 외워 본다. 절정의 색을 피워 아름다움을 주며 내년을 기약하는 수목들을 보며 나자신도 그러한 자연의 이치를 알고 순응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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