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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베트남(Vietnam) 여행

by 언덕에서 2009. 6. 6.

 

 

 

 베트남(Vietnam) 여행


 

베트남(Vietnam)을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그동안 베트남이란 나라에 대해 궁금한 게 많았는데 핑계거리가 생겼다. 주마간산(走馬看山)격이었지만 베트남이란 나라에 대해 선입견을 없애주는 좋은 기회가 된 것 같다.

 

  

  위의 그림은 태평양의 피지섬이나 사모아 군도(群島) 중의 한 곳이 아니라 베트남의 하롱베이만(灣)에 둥둥 떠있는 섬 중의 하나다. 세계 8대 절경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과연 일리가 있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옛날옛적에 중국이 베트남에 침공해 왔을 때, 용의 부자가 침공해온 적을 물리치고, 입으로부터 토해낸 보석이 하롱 만의 섬들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대부분 무인도이지만, 약 7,000년 전의 신석기 시대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또 수세기 전까지는 해적의 은둔지로서 이용되었고, 13세기 몽골군의 침공 시에도 군사적으로 이용되었다. 



   

 좀 구체적으로 보면 하롱베이(Halong Bay)는 베트남 북부, 통킹만 북서부에 있는 만의 명칭이며, 크고 작은 3,000개의 기암괴석과 섬들이 존재한다. 한자로는 하룡만(下龍灣)으로 표기한다. 1994년에 유네스코의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마치 명작의 조각품을 보는 것 같은 섬들의 경관은 태양의 위치에 따라서 빛이 변하고, 비나 안개에 의해서 또다른 정취가 있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지질학적으로는 북쪽은 계림으로부터 남쪽은 닌빈까지의 광대한 석회암 지역이다. 석회암 지역이 풍화 작용에 의해서 깎아져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관광객들을 실어나를 배들이 둥둥 떠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참고로 베트남인들 중에서도 하롱베이를 구경하지 못한 이들이 많다고 한다.

 

  

이런,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실신을 할 뻔했다.

 

 

    

 내가 아주 어릴 때 외사촌 형님이 비둘기부대 소속으로 월남전에 참전을 했는데, 우편으로 보낸 편지에는 야자수나무 아래서 포즈를 잡고 찍은 사진이 있었다. (아래 사진) 그 형님은 별 부상없이 귀국하고 제대를 했으나 이후 몸이 좋지 않아 고생을 많이 했다. 그리고 이유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4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지금 생각으로는 고엽제 후유증이 아니었나 싶은데 야자나무를 보자 갑자기 그 형님 생각이 많이 났다.

 

 

 

 

 

 

   

 수도 하노이 근처의 기념품을 파는 야시장이다. 상인들 중에 중국인(華僑)들이 많아서 놀랐다. 영어로 흥정을 하려했는데 우리말(한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우리나라의 국력이 대단한 건지 베트남인들이나 화교들의 영업 적응력이 훌륭한 건지 궁금하다. 흥정을 할 때는 무조건 부르는 가격에서 반값으로 후려쳐라고 들었는데 사실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남대문시장에서 외국인들에게 하듯이... 시장의 질서는 'Give & Take'가 불변의 원칙이다.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면 본인도 언젠가는 당하게 되어 있다.

 

 

 

 

 

 

  

 베트남의 수도인 하노이시 중심부에는 천안문 광장과 유사한 호치민 광장이 있고 바로 그 옆에는 국부인 호치민 기념관이 있고, 그리고 호치민 생가가 있다. 위의 사진은 호치민 광장과 호치민 생가 근처의 연못을 담은 것이다.  그야말로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그러한 분위기이다.

 

 

 

  

 호치민(구. 사이공)시 길가에서 쌀국수를 파는 아낙네의 모습을 찍어보았다. 우리가 과거에 지겹도록 많이 치웠던 연탄재가 보인다. 32˚C가 넘는 땡볕아래서 무척이나 고단하고 힘든 삶을 사는 인간군상의 모습이다. 선진국이던 개발도상국이던 서민들의 삶은 언제나 고달프다. 이건 세계 만국 공통이 아닐런지.

 

 

 

 

 동행한 지인이 데쟈뷰(deja - vu)현상을 느낀다고 했다. 처음 보는 대상을 이전에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 현상을 말한다. 꼭 집어서 말하자면 우리나라 1960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의 모습이어서 그런게 아닐런지?

 어릴 적 기억을 되살려 보면...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왜 그다지 가난했는지 의아해하겠지만 그런게 세상살이의 일면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가난이란 경제현상이라기 보다는 운명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공산주의 국가이지만 야한 여성들은 어느나라에나 상존한다. 나야 뭐 고맙지만 ...

 나이가 드니 아침 나절 일은 잊어버려도 오랜 시절 전의 일들은 또록또록 생각이 난다. 갑자기 십수년전에 보았던 뮤지컬 작품 '미스 사이공'이 생각났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  1970년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인 사이공의 한 술집에서 `미스 사이공` 선발 대회가 벌어진다. 참가자들은 술집 아가씨. 그들 모두가 미스 사이공에 선발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미스 코리아 못지않지만 이 선발 대회에는 서글픈 사연이 담겨 있다. 그녀들은 자신의 미모를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핫팬츠에 민망한 의상으로 자신의 몸을 전시하는 것이다... 

 세월이 지나 베트남은 통일이 되었다. 위 사진은 뒷모습이어서 그런데 앞모습은 실제로 굉장히 야했다. 공산주의 국가 대도시 한복판에서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하노이 시내에 있는  " 떵쑤언 " 시장이다. 하수시설이 잘 안되어 있는 상태여서 그런지 악취가 심했다. 그러나 사람사는 체취를 느낄 수 있어서 나름대로 내 취향에는 좋았다.

 

  

 

 북한이 운영하고 있는 평양관과 우리 교민이 운영하고 있는 자금성이란 중식식당이 나란히 하고 있다. '한민족의 역사'라는 큰 틀에서 보면 이 얼마나 큰 비극인지 모르겠다. 평양관은 값이 비싼데다 맛이 별로라는 평판이 대다수여서 우리교민들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참고로 캄보디아의 평양관은 성업 중이라고 했다.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등 인도차이나 반도의 타국가나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의 제 국가도 마찬가지이지만 오토바이가 시민들의 발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출퇴근 시간에는 오토바이 행렬이 인산인해(人山人海 )를 이루고 있어서 실로 장관을 이루었다. 

 피렌체사람들은 운전할 때 혼자라는 것을 자각하게 될 때 난폭해진다고 한다. 그런데 베트남사람들은 한 오토바이에 여러명이 타고 다니면서도 난폭하다. 먼저 들이대는 자가 임자이고 교통질서이다.

 

  

  

 하노이시 중심가의 모습.  거리에서 본 택시 중 대부분이 대우차의 Gentra와 Matiz, KIA차의 Morning, 현대차의 Click이다. 이들 'MADE IN KOREA' 차량이 전체택시의 70~80%가 되는 듯 했다.


 며칠동안 놀면서 구경도 하고 나름대로의 휴식을 취했던 것같다.  휴식이란 쓸데없는 시간의 허비가 아니라 내일의 창조적인 일을 치르기 위한 에너지를 저장하는 시간이어야 할 것이다. 내일에는 보다 큰일을 능률적으로 치르기 위해서 육신과 정신을 편히 쉬게 하여야 한다. 기계도 가끔 기름을 치고, 또한 놀러 가면서 써야 한다. 하물며 우리 사람들의 몸은 더욱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속상한 일로 마음이 괴롭다가도 하룻밤을 푹 자고 나면 어젯밤의 불쾌한 감정이 한결 누그러진다.

 주마간산(走馬看山)격으로 간단하게 이 나라에 대한 필자의 느낌같은 것을 아주 조금 적어보았다. 1970년대 초반의 우리나라의 모습이라고 했는데 분명 그런 점들이 있다. 더 적고 싶지만 시간 부족, 필력 부족으로 이즈음에 마치려 한다. 의문사항이나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문의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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