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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봄날의 도다리

by 언덕에서 2009. 3. 16.

 

봄날의 도다리

 

 

 

 

  기다리던 봄이 왔다.
  무엇보다 봄이 더 기다려졌던 건 올해도 어김없이 향긋한 봄 도다리를 맛볼수 있다는 설레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도다리는 예로부터 남부 지방의 사람들에게 봄을 알리는 전령사 역할을 해왔다. 매년 이맘때쯤되면 제주도 근처에서 겨울산란기를 지낸 도다리가 남해안 일대로 올라온다.

  이때 살이 차면서 맛의 절정을 이루고 그 맛을 못잊어 많은 미식가들은 입맛을 다시며 이 때를 기다린다. 도다리는 주로 새꼬시(뼈채썰기)로 먹는다. 뼈가 연해서 씹기 편하고 씹을수록 뼈에서 우러나는 향긋한 향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동네의 횟집에서는 15~20cm내외의 통통한 도다리를 수족관에서 가져와 바로 장만해 준다. 도다리가 너무 작으면 살이 별로 없고, 너무 크면 뼈가 단단해 어른 손 바닥만한 크기를 새꼬시용으로는 최고로 친다. 껍질을 벗긴 도다리를 중간뼈를 들어내고 길이방향으로 가늘게 썰어 내놓는다. 잔뼈를 고르게 배분해 제대로 된 도다리향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하얀 접시에 가득 담긴 뽀얀 도다리의 속살들이 젓가락질하기도 전에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이 맛을 볼려고 일년을 기다려왔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다. 제일 통통하게 생긴 놈을 한점 입에 넣으니 그윽한 봄바다의 향이 가득찬다. 거의 일년만에 맛보는 이맛이란...... 친숙하고 정답기 그지없는 그런 맛이다.

 

 

 

 

 

 

 

  도다리는 맛의 집합체이다. 부드럽고 쫄깃한 살결과 뼈에서 나오는 고소함이 씹으면 씹을수록 솔향으로 변해간다. 천천히 꼭꼭 씹어야 할 일이다. 그래야 봄바다의 향을 제대로 느낄수 있다. 식사와 술안주도 겸해 도다리쑥국이나 물회를 맛보면 이또한 별미이다.

 

 

 

 

  도다리 쑥국은 산도다리를 직접 된장 풀은 물에 넣고 끓이다 살이 적당히 익었다 싶으면 쑥을 듬북 넣어 마무리 한다고 주인장이 이야기해 주었다. 담백하면서 시원하며 살아있는 도다리를 그때 그때 바로 넣어 조리하기 때문에 육질이 부드럽다. 입안에서 술술 넘어간다. 향긋한 쑥 냄새와 부드러운 도다리살이 개운하면서 소박하다.

  배, 양파등을 갈아 넣어 만든 양념장에 살얼음을 동동 띄워 나오는 물회는 제대로 된 맛이 난다. 각종 야채와 더불어 씹히는 회의 쫄깃한 맛이 일품이다.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행복'에 대해서 조금씩 생각하다가 떠올리게 되는 문구가 있다.

  '무심히 지나친 시간들이 행복이었다.'라는 격언이 그것이다. 내가 죽었을 때 단지 내가 세상에 없다는 것 말고 어떤 일이 더 벌어질 수 있을까. 공기 중에 뿌려지거나 멀어져 간다는 게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도 가끔 든다. 나이가 많이 든 사람은 흥미로우니까.

   가끔 내 자신, 행복에 관한 천부적 감각이 있다고 생각했다.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것을 굳이 좋아할 필요는 없다.

 

  수십 년을 함께 한 친구와 함께 도다리를 씹으면서, 소주를 함께 마시면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이러니하게도 김광규의 시를 생각해보았다.

 

 

 

도다리를 먹으며

 

                                                          김광규

 

일찍부터 우리는 믿어 왔다

우리가 하느님과 비슷하거나

하나님이 우리를 닮았으리라고       

 

말하고 싶은 입과 가리고 싶은 성기의

왼쪽과 오른쪽 또는 오른쪽과 왼쪽에

눈과 귀와 팔과 다리를 하나씩 나누어 가진

우리는 언제나 왼쪽과 오른쪽을 견주어

저울과 바퀴를 만들고 벽을 쌓았다   

 

나누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자유롭게 널려진 산과 들과 바다를

오른쪽과 왼쪽으로 나누고             

 

우리의 몸과 똑같은 모양으로

인형과 훈장과 무기를 만들고

우리의 머리를 흉내내어

교회와 관청과 학교를 세웠다

마침내는 소리와 빛과 별까지도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누고  

 

이제는 우리의 머리와 몸을 나누는 수밖에 없어

생선회를 안주 삼아 술을 마신다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어

온몸을 푸들푸들 떨고 있는

도다리의 몸뚱이를 산 채로 뜯어먹으며

묘하게도 두 눈이 오른쪽으로 몰려 붙었다고 웃지만

 

아직도 우리는 모르고 있다

오른쪽과 왼쪽 또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결코 나눌 수 없는

도다리가 도대체 무엇을 닮았는지를

 
 
※ 도다리 : 참가자미, 돌가자미, 문치가자미, 범가자미등 가자미류를 방언으로 도다리라고 한다. 일반인들이 쉽게구별하는 법은 마주보고 눈이 오른쪽에 있으면 도다리이고 왼쪽에 있으면 광어다(좌광우도) 또 도다리는 사료를 잘 먹지않고 키우는데 3~4년이 걸리기 때문에 채산성이 떨어져 양식이 힘들다. 즉 시중의 도다리는 대부분이 자연산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간혹 수입산이나 양식장에서 이탈한 넙치를 속여파는 경우도 있어서 너무 가격이 싸면 의심해 볼만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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