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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화만 났던 백령도 여행

by 언덕에서 2007. 5. 9.

 

화만 났던 백령도 여행

 

 

1. 

 여행사에 가면 국내여행 상품 중에 백령도 여행이라는 상품이 있다.

 왠만한 사람들 제주도, 울릉도 가봤어도 백령도는 못가봤을 거다. 그래서 오늘은 백령도여행이라는 상품에 대한 나의 경험을 이야기 해 보고자 한다. 우선, 백령도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를 하도록 하자.

 면적 45.83㎢, 인구 약 오천 명이다. 인천에서 북서쪽으로 191.4km 떨어진 서해 최북단의 섬으로, 북한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다.

 본래 황해도 장연군(長淵郡)에 속했으나 광복 후 옹진군에 편입되었다. 원래의 이름은 곡도인데, 따오기가 흰 날개를 펼치고 공중을 날으는 모습처럼 생겼다 하여 백령도라고 명명되었다 한다.

 

 

 <백령도 선착장에 설치된 백령면 관광안내도>

 

 

  육이오 전쟁 이전에는 북한 땅이었는데 휴전으로 인해 우리 땅이 되었다. 지리상으로 서울보다는 평양이 훨씬 가까운 곳이다. 군사 요충지 중의 요충지로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백령도를 잃고 난 후 김일성은 사흘간 잠을 못잘 정도로 분통해 했다고 한다.

 최근 화동과 사곶 사이를 막는 간척지 매립으로 면적이 늘어나 8번째로 큰 섬이 되었다. 북한과는 12km 떨어진 인구 오천 명인 곳인데 관광업 종사자와 어민. 농민을 제외하면 구성원의 대부분이 군인(주로 해병대 소속)인 우리나라 최북단 섬이다.

 진촌리 조개무지에서 신석기시대의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일찍부터 이 곳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볼 수 있다.

 군사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며, 서해의 해금강이라 불리는 두무진과 해안이 넓고 단단하여 세계에서 두 곳 뿐인 사곶천연비행장이 있다.

 앞바다는 황해도 황주 앞바다인 인당수(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 몸을 던졌다는)가 있는데 1999년 10월에는 2층 규모의 심청각 전시관이 준공되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 심청이의 효심을 배워가기도 한다고 한다. 특산물은 까나리액젓, 참다래(키위),흑염소 엑기스,전복,해삼,멸치,약쑥,가리비,농어,우럭,놀래미 등이다.

 섬 내의 관광지 중 섬 북서쪽의 두무진은 고려시대의 충신 이대기가 《백령지》에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 표현했을 만큼 기묘한 절경을 자랑한다.

 

 대표적인 관광코스는 백령도 선착장 → 사곶천연비행장 → 심청각 → 물개바위 → 담수호 관광 → 두무진 관광 → 콩돌해안 → 중화동 백년교회 → 백령도 선착장이다.

 

 

2.

 

1일차 :

 

 5월3일 오전 9시 인천에서 백령도로 향하는 '데모크라시(democracy)'호라는 아주 민주적인 이름을 가진 유람선을 탔다. 데모크라시 호는 1층, 2층 두개 층의 객실로 이루어져 있다. 100명가량이 탄 2층 객실 바닥에서 관광객으로 보이는 남녀노인 6명이 화투판을 벌리고 있었다. 원래 그러려니 했는데 고스톱 와중에 심한 고성과 욕설이 오간다. 그러나 어느 누구 하나 주의를 주는 사람이 없다. 배에서 내리는 순간까지 계속되었다.

 선착장에 내리니 오후 1시 30분이다. 원래 4시간 코스인데 안개 때문에 30분 지연되었다고 한다. 안개……. 안개가 사람을 미칠 정도로 만들 수가 있구나 하는 것을 이번 여행을 통해서야 알았다. 선착장에 내리면 위에서 소개한 사곶 천연비행장이 보이는데 어디서나 그렇듯이 관광버스 운전사 겸 가이드가 반겼다. '1박 2일'의 코스라고 소개하고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고 소개하는데 다 믿지는 않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외딴 섬에서의 새로운 경험을 기대해 보았다. 그렇다……. 새로운 경험이었던 것이다.

 

<데모크라시호 객실 : 선객의 상당수는 해병대 군인들이다> 

 

 

<데모크라시호 입구>    

 

 

 이 섬의 대표적인 숙박업소인 M 모텔이라는 여관에 단체 투숙하게 되었는데 여행사와 모텔과 가이드의 관계가 대단히 상호 유기적(?)으로 보였다. 이 모텔은 옹진군청이 추천하는 백령도 내에서도 최우수 모텔이라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었다. 모텔에서 제공하는 점심식사를 하자마자 관광에 나섰다. 어차피 오후 1시에 도착해서 다음날 오후1시에 떠나는 1박2일의 일정이므로 첫날의 코스는 ‘사곶천연비행장 → 심청각 → 두무진 관광유람선’의 순이다.

 

* 사곶천연비행장 : 해변의 자연 백사장이 육이오때 비행장으로 사용되었다. 세계적으로 희귀한 곳이라고 한다.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 정도의 크기이니까 사실 굉장히 넓은 곳이다. 넓은 백사장이 비행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6.25 전쟁의 체험 때문일 것이다. 이 곳은 서해안 최고의 군사요충지가 아닌가.

 

<사곶천연비행장 : 일직선의 자국들은 관광버스가 오고 간 흔적들이다> 

 

 

 <사곶천연비행장 : 바로 위쪽에 해병 초소가 연달아 있다> 

 

 

 *심청각 : 심청전의 무대는 황해도의 황주 하고도 도화동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선에서 중국으로 가는 길목으로써 심청이 제물로 바쳐진 장소인 인당수인데, 현재의 백령도에서 황해도가 바라다 보이는 곳의 바다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을 근거로 하여 이곳에 심청각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물에 빠지는 심청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만들 당시에도 역사학계와 민속학계에서 실증적인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이견이 많았던 곳이다. 물론 고대소설 심청전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고 싶은 의도는 없다. 그러나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인 것 아닌가. 소설의 배경지역도 아니고 단지 그 배경지와 조금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런 시설을 짓는다는 게 어쩐지 좀...... 개그스럽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심청각 : 심청상>

 

 

 <심청각 : 안내 비문이 있다>

 

 

 <심청각 : 심청각 옆 귀퉁이에 구형자주포를 볼거리로 전시했는데 이걸 웃어야 할 지......> 

 

 

 <심청각 : 해무 때문에 황해도 방면 북녘 땅은 보이질 않았다> 

 

 

 * 두무진 해상 유람 : 백령도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는 코스인데 약 30~40분 걸린다. 약 100인승의 소형 배를 타고 해안절벽을 구경하는 장면을 생각하면 된다. 승무원은 선장 한 명이 유일하다. 그러니까 선장 겸 안내원 겸 안전요원이다. 볼거리는 코끼리 바위, 잠수함 바위 등 두무진 절벽의 기암괴석들인데 자연이 빚어놓은 예술품들은 볼 만하다. 금강산 갔다 온 사람들은 해금강과 비슷한 수준의 절경이라고 한다. 배 두 척이 교대로 두무진 해상 관광을 하는데 마침 우리가 탄 배에서는 구명조끼를 지급하지 않아 배를 타고 있는 30분 내내 불안했다. 이곳은 ‘긴급구조 119’도 해군의 협조를 받아야 겨우 올 수 있는 곳 아닌가.

 

 <유람선에서 본 두무진 해안 암벽>

 

 

 <유람선에서 본 두무진 해안 암벽>

 

 

 <유람선에서 본 두무진 해안 암벽 : 한 가운데가 토끼봉이라고 했던 것 같다>

 

 

 <유람선에서 본 두무진 해안 암벽 : 해무가 많은 관계로 화질이 좋질 않다>

 

  

 이렇게 해서 아슬아슬한 곡예와 같은 두문진 관광 유람선에서 내리면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다. 이것도 여행사 상품의 코스이다. 유람선 선착장 근처에 횟집이 7~8군데 있는데 대부분 우럭회, 광어회, 해삼회를 주 아이템으로 장사를 한다. 고도절해여서 희귀 고급어종이 푸짐하게 기다리고 있겠지 하고 기대하면 안 된다.

 

 <두무진의 횟집 골목>

 

 

<두무진의 횟집의 수족관 : 주로 광어, 게르치, 놀래미가 메뉴이다>  

 

 

주인과 가이드는 ‘자연산회이니 정말 좋은 거예요......’ 라고 자꾸 이야기하는데 반찬의 종류는 부실하고 생선회의 양도 절대부족이다. 이유를 물으니 생선이 자연산이라서 그렇다고 하는데 나......원 참.

 불친절한 건 논외로 하고……. 그런데 또 재미있는 것은 이 횟집 타운의 모든 횟집에 손님용 화장실이 없어서 약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공중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저녁 7시경에 여관에 돌아오니 이로서 1일차의 일정이 끝난다.

 

2일차 :

 

2일차의 일정은 물개바위 → 담수호 → 콩돌해안 → 중외동 교회 → 백령도 선착장(인천을 향해 출발)순이다. 아침 9시에 시작해서 위의 세 곳을 관광하고 점심식사 후 오후 1시에 배를 타고 인천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각 코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물개바위 : 두무진 주변 선대암과 코끼리 바위를 지나면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받고 있는 물범이 수면에 잠길 듯 말 듯한 바위에 옹기종기 집단서식하고 있는 곳이다. 안개가 많이 끼는 날에는 시계가 흐려서 바위를 볼 수 없다고 하며 안개가 없는 날일지라도 물개(범)는 연중 몇 주일 머물지 않는다고 한다. 물새는 보였으나 역시 물개는 보지 못했다.

 

 

 

 

 <물개바위의 물새떼들>


  

* 담수호관광 : 섬 속에 담수호가 있다. 호수주변에 남북한 통일시대를 대비해서 펜션 등을 짓는 모습이 보인다. 어쨌든 그 상술들이란……. 호수의 크기가 그다지 큰 편은 아니다. 우리나라 여느 고장에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렇고 그런 규모이다. 단지 서해 최북단의 군사요충지의 섬에 담수호가 있다니……. 하는 차원에서 이해하면 될 듯하다.

 

* 중화동교회 : 1897년에 세워진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교회이다. 참고로 백령도라고 하는 작은 섬에 12개의 교회가 있다고 한다.

 

  <언덕 위의 교회로 올라가는 길>

 

 

 <교회전경>

 

 

<중화동 교회 : 세브란스대학 설립자인 언더우드씨가 세운 교회라고 한다> 


 

* 콩돌해안(천연기념물 제392호) : 백령도의 지형과 지질의 특색을 나타내고 있는 곳 중의 하나로 해변에 둥근 자갈들로 구성된 퇴적물이 단구상 미지형으로 발달한 해안이다. 콩돌해안은 백령도 남포리 오군포 남쪽해안을 따라 약 1km 정도 형성되어 있고 내륙 쪽으로는 군부대의 해안초소와 경계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둥근 자갈들은 백령도의 모암인 규암이 해안의 파식작용에 의하여 마모를 거듭해 형성된  잔 자갈들로 콩과 같이 작은 모양을 지니고 있어 콩돌이라 하고, 색상이 백색, 갈색, 회색, 적갈색, 청회색 등으로 형형색색을 이루고 있어 해안경관을 아름답게 하고 있다. 해변의 자갈돌의 모양만을 보고 말한다고 하면 타원형의 팥알모양이다.

 

 콩돌해안 곳곳에 유리조각을 줍는 아르바이트(?) 일을 하는 할머니들이 있다. 관광객들이 유리병을 함부로 깨기 때문에 이런 모습이 보일 것이다. 우리나라 땅 어디서나 관광지에서의 문화국민의 모습은 아직 요원하다.

 

 

 

 

 <콩돌해안의 자갈 : 이른 바 콩돌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가이드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해무가 심해서 인천에서 들어와서 우리를 싣고 나가야할 배의 입항이 무기한 연기되었다’는 것이다.

 여관에서 점심을 먹고 이른바 자유시간을 가졌다. 기한이 없는 무기한의 자유시간을…….

 여관을 나와서 백령도 시내 구경을 하기 위하여 돌아다녔는데 15분 만에 끝났다. 조그마한 섬의 면사무소 소재지……. 최대한 돌아 다녀도 15분이 넘지 않는다. 인터넷 신문이나 볼까 하여 PC방을 찾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그런 건 보이질 않는다.

   

 

 < 백령도 시가지>

 


  
해병대 군인들을 상대로 영업하는 술집 십수 군데, 여관 예닐곱 군데, 식당 열 개 정도……. 다방 네 개 정도……. 약국 한 개……. 이것이 이 섬의 주요 인프라다.

 여관에서 소일거리를 찾던 일행들은 다들 망연자실해 한다. 시간 보낼 장소가 전혀 없는 것이다. 하다못해 영화관이라도 있으면 시간을 보낼 텐데 하는 사람도 있었다. 등산을 하려고 해도 군사요충지인 관계로 지뢰가 매설된 곳이 많기 때문에 되도록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가이드가 이야기했던 것이 기억났다.

 일행의 절반은 여관방에서 고스톱을, 나머지 절반은 낚시점에서 낚시도구를 빌려 낚시를 하러 갔다. 그렇게 어찌어찌해서 반나절을 보내고 저녁을 맞이했는데 다음날이 더 걱정이다. 배가 내일은 과연 뜰까?

 

3일차

 

 일단 배가 뜬다고 생각하고 아침 일찍 짐을 꾸렸다. 게다가 어제 밤에 일행 중의 누군가가 백령도에서의 마지막 밤인데 그냥 보낼 수 있나 어쩌고 하는 술판을 만드는 바람에 그 여파로 속이 쓰리기 짝이 없었다.

 오전 11시경이 되자 가이드로부터 연락이 왔다. 안개가 심해서 인천에서부터 배가 들어오지 못하고 출발대기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내일은 어떻게 될는지 기다려보자고 한다. 또 하루가 연기가 된 것이다.

 답답한 하루였다. 무엇 하나 소일거리가 없는 무료함……. 이건 마치 고문과도 같았다. 면사무소 옆 M모텔에서 선착장까지 약 5KM의 거리를 그냥 걸어서 왔다갔다 이유 없는 왕복을 하는가 하면 사자바위 옆 해변에서 조개를 줍는 등 하루 종일을 지루하고 답답하게 보냈다.

 

 <사자바위 : 중앙에 위치한 바위이다>   

 

 

  날씨가 이렇게 맑고 쾌청한데 배가 움직일 수 없다니……. 모두들 분통이 터지는 듯한 얼굴이었다. 선박회사의 이야기로는 자기네들은 배를 움직이고 싶어도 해군측이 호위를 해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고 한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그런…….

 다행히 오후 늦게 데모크라시호가 인천에서 백령도로 들어왔기 때문에 내일 나가는 것은 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 믿을 수 있을까? 여관주인 말에 의하면 백령도에 1박2일 코스로 들어와서 안개 때문에 배가 움직이질 못해서 1주일가량 체류하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한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여관주인은 기존에 있던 방을 비워 달라고 한다. 오후에 인천에서부터 들어오는 관광객들을 수용해야 하니 기존에 투숙된 손님들은 방을 2인 1실에서 8인 1실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1박2일로 예정된 일정이 3박4일로 바뀌니까 일어나는 현상인데 추가비용을 받으면서도 이건 해도 너무 한다 싶었다. 옆집인 E모텔은 거의 텅 비어 있는데 말이다. 자기네 집에 방이 없으면 옆집에라도 안내를 해야 하지 않는가. 어쨌든 바뀐 방에 일행 8명이 들어 가보니 이건 숫제 8명이 칼잠을 자야할 판이다. 여행사는 이런 경우에 대비하여 보험에 들어야 하지 않을까? 자연재해를 핑계로 모든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좀 심하다 싶다. 너무 후진적이다. 우리 일행은 예정보다 이틀씩이나 백령도에 추가로 묶여서 생활과 생업에 지장을 받고 있는데 말이다.

 8명이 기거하게 된 방에 수건이 두장이 들어왔다. 여덟 장을 달라고 하는 우리 일행과 그렇게는 안 된다는 주인의 싸우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배낭을 옆에 있는 E모텔로 옮겼다. 물론 투숙비를 별도로 또 한 번 더 지불한다는 것이 아깝기는 하지만 도저히 8명이 모인 좁은 방에 칼잠을 잘 자신이 없었다. 몇몇 일행들도 따라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그래도 백령도의 밤하늘은 맑았고 공기는 눈물나도록 깨끗했던 것 같다. 여관 마당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해병대 군인들이 여자랑 팔짱을 낀 채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여기서 '여자'라고 하는 것은 해병대 소속 사병의 애인일 수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차림새가 '술집여자' 또는 소위 '길거리 여자'로 보였다. 한눈에 봐도 여염집 규수는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떤 아가씨는 너무도 앳된 얼굴이 한눈에 바로 미성년자로 보이는데 여관입구에서 짐을 들고 있던 일행인 B부인은 '아이고 저걸 어쩌나......' 하면서 혀를 찬다. 따님이 고등학생이라고 하셨는데 그래서 더 그렇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이가 드는 탓인지 이곳에서 해병대 군인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모두들 얼굴이 무척 어리고 순박한 아이들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4일차

 

 지연되는 일정과 불친절로 인해 어젯밤 일행들 대부분이 짜증이 났던 모양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어젯밤에도 또 술을 마신 관계로 아침에는 머리가 몹시 아팠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하루 3끼 중 1식은 반드시 M모텔에서 먹기로 계약이 되어 있기 때문에 아침을 그곳에서 먹어야 했다. 물론 다들 먹고 살자고, 돈 벌자고 영업을 하는 것이겠지만 다음번에 손님이 또 찾도록 해야 하는 것이 관광업 종사자로서의 기본적인 업의 개념일 것이다. '친절하고 또 친절하자', '고객은 왕이다' 등의 고객만족(customer's satisfaction) 격언은 백령도에서는 역시 무리인가 보다. 백령도 관광업소 종사자들의 심리는 '한번 온 백령도 관광객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사람들이다'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일하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오후 1시, 드디어 인천으로 향하는 데모크라시 호를 탔다. 올 때와 마찬가지의 현상으로 이번에는 1층 객실 바닥에 펼쳐 앉아서 고함을 지르며 고스톱을 치는 노인들로 인해 배안은 4시간 내내 소란하기 짝이 없었다. 선박회사 측의 안내원 두 명이 그 주변을 십수차례 왔다갔다를 반복했지만 아무도 주의를 주거나 제지하지 않았다. 뒤에 앉은 외국인 관광객이 영어로 주고받는 이야기가 들렸다. 

  "한국인들의 교양은 아직 멀었어."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백령도……. 그러나 두 번 오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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