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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봄맞이 책상 대청소를 하다

by 언덕에서 2010. 3. 20.

 

 

봄맞이 책상 대청소를 하다



눈앞이 곧 길이다

 

중국의 선사였던 조주(趙州)가 말했다. "눈앞이 곧 길이다. 바로 여기서부터 출발하라." 우리가 영위하는 생활의 눈앞은 어디일까? 일을 하고 책을 읽는 책상일 것이다. 그런데 겨우내 책상 주변이 지저분하기 짝이 없다. 지저분한 건 별 상관이 없지만 어디에 뭐가 있는지 몰라 업무가 효율적으로 처리되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이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서점에서 정리 잘하는 법에 관한 책을 참조해 봄맞이 사무실 책상 대청소에 나서기로 했다.


쌓여만 가는 책

 


 책상 근처 책장 정리해고 1순위는 넘쳐나는 책이다. 읽은 책을 모두 간직한다면 점점 책이 늘어나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금융 / 컴퓨터 관련 책은 발간 후 6개월만 지나도 Old version으로 취급받아 무용지물이 된다. 책을 잘 처분하는 방법은 이렇게 나와 있다. 자기 공간에 알맞은 장서 수를 결정한 뒤 거기에 맞춰 양질의 책으로 수준 높은 서가를 유지하고 나머지를 버린다는 것이다. 아깝더라도 불필요한 책을 버려야 정리가 된다. 쇼펜하우어도 사색의 첫머리에서 "책이 아무리 많아도 잘 정리되어 있지 않으면 장서의 효용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책을 좋아해서 매달 평균 15∼20권을 사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도 그에게 회사와 집의 책장에 여유가 있는 이유는 읽은 책을 친구, 동료, 가족에게 늘 선물하기 때문이다. 그는 "한 번 읽은 책은 다시 잘 안 보게 된다. 책을 보관하는 게 목적이 아닌 만큼 주변에 책을 많이 선물한다. 책을 선물받으면 다들 좋아한다"고 말한다. 스스로 '책탐'이 있다고 밝힌 지인도 매달 시립도서관에 자신이 읽은 책 5권가량을 기증하고 있다고 했다. 법정 스님도 며칠 전 머리맡에 남아 있던 책을 약속한 대로 스님에게 신문을 배달한 사람에게 전해줄 것을 상좌에게 당부하고 가셨다.


명함과 편지를 정리하니 보고 싶은 얼굴이


 자꾸만 불어나 서랍에서 크게 자리를 차지하는 명함을 정리하기로 했다. 한 10년 이상은 쌓아두었던 것 같다. 버릴까 고민한 적도 있었지만 인맥이 중요하다고 해서 언젠가는 소용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첫째 기준은 '이름을 봐도 그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 명함은 버린다'이다. 이런 명함은 아무 소용이 없다.

 정리하다 보니 별별 명함이 다 눈에 띈다. 없어진지 오래된 술집 명함은 여태 왜 들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예전 명함은 한자가 많아 이제는 읽기도 어렵다. 삐삐 번호가 적힌 것들도 꽤 된다. 지금은 전무로 승진한 전직장 동료 명함도 보인다. 독문학 박사로 대학 시간강사를 힘겹게 전전하다가 전문경영인으로 변신한 친구도 있다. 연락을 했더니 소장 가치가 있는 명함이라며 즐거워한다. 책에는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의 명함을 버리라'고 나와 있다. 누가 도움이 될지는 시간이 지나봐야 안다. 정리하다 보니 별로 소장 가치가 없는 명함을 가진 직업군도 있었다. 시청 총무과장 명함도 있다. 공무원은 하도 자주 자리를 옮겨 이전 명함들이 별로 쓸모가 없다. 전직장에서의 내 명함도 직급별로 여러 종류 나온다.

 

 

 누런 대봉투에는 과거 지인들로부터 받았던 편지가 가득 쌓여 있다. 두 달 전에 군대가서 신병교육 마치고 후반기 교육 중인 울 아들의 편지부터 고교 친구, 대학 친구, 군대 동료, 기타 도움 받았던 사람들의 편지가 대부분이다. 인생에 있어서 지극히 의미가 있는 7~8통을 제외하고는 정리하기로 했다.

 군대생활 때 골절상으로 두 달 정도 국군통합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때 통합병원 성당에서 나를 보살펴 주셨던 노수녀(老修女)님이 제대한 내게 안부를 묻는 편지를 주셨다. 그 편지봉투를 다시 만나는 순간 눈물이 핑도는 것을 느꼈다. 살아계시면 80이 넘으실 나이신데 무심하게 살아온 지난 날들이 후회가 된다. (위 사진 )

 아날로그식으로 우체통에 넣던 편지가 사라진 것은 직장생활 부터인 것 같다. 이메일 계정이라는 게 생겨서 일 것이다. 한때 친하게 지냈다 지금은 연락이 끊긴 사람도 있다. 이번 참에 한번 연락을 해봐야겠다. 명함 / 편지 정리는 꽤 시간이 걸리는 일이지만 그만한 보람이 있다.

 

청소만복래(淸掃萬福來)

 

 청소 하나로 인생을 바꾼 사람이 있다. '부자가 되려면 책상을 치워라'란 책을 낸 일본인 마스다 미쓰히로 씨 이야기다. 그는 다니던 회사는 망하고, 자신은 파산 상태가 되어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나니 내면에 신기한 변화가 생겼다. 과거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새롭게 시작하자는 결심이 섰던 것이다. 그는 청소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며 동네 신문과 인터넷에 꾸준히 글을 썼다. 놀랍게도 6개월 만에 회사의 2인자가 되었고, 몇 년 뒤에는 최고경영자로 스카우트되었다. '청소만복래'이다.

 

 

 내 책꽂이에는 오래된 CD가 유달리 많다. 잡지를 살 때 부록으로 주어졌던 게임 데모판, 자료를 백업한다고 구워 두었던 것, 심심하면 들을려고 사두었던 가요... '유리벽'이라는 타이틀이 걸린 신형원의 노래모음 CD도 눈에 띈다. 필요할 것 같아서 중요한 기사가 실린 신문은 모아두었는데 대부분 효용가치가 없어진 것들이다. 그 양만해도 상당량이다. 우선 그것들부터 버리기로 했다. 서로 다른 크기의 자료, 신문 스크랩은 A4지로 복사해 철해두니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되었다. 미쓰히로 씨는 "어지러운 방은 당신의 인생이 어지럽다는 이야기다. 또 너저분한 책상은 당신의 업무 성과가 너저분하다는 것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책상 뒷쪽을 열어 보니 각종 전자기기의 케이블선이 너무 어지럽다. 물론 그전에 불필요한 CD도 정리했다. 알고 보니 케이블선은 거의 통합되어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그걸 모르고 똑같은 걸 이것저것 여태까지 치렁치렁 가지고 있었다. 여러개의 수첩은 다 쓴 수첩에서 참고될 만한 사항을 한 개의 수첩에 다시 옮겨 적었다. 새로운 아이템이 될 것 같다. 안쓰는 지갑에서 돈도 이 만원 발견했다. 그리고 책장에서는 30년 전에 구입했던 법정스님의 책 '무소유'도 찾아냈다. 책상을 치우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말이 맞다.


또 치울 게 뭐가 있을까


 버리는 데 재미를 붙이니 또 버릴 게 뭐가 있을까 찾게 된다. PC에 있는 불필요한 파일을 버리기로 했다. 늘 다운로드를 받다 보니 컴퓨터 용량이 거의 다 차 하드디스크는 신음하고 있었다. 바탕화면에 온갖 파일이 정신없이 널려 있으면 마이너스 에너지를 받아 일의 성과도 오르지 않는다고 한다. 한동안 같이 했던 동영상 속 소녀시대 9명에게도 작별을 고하기로 했다. 태연양과 써니양은 TV에서 다시 만나면 될 것이다. 즐겨찾기도 손을 보기로 했다. 편리한 '즐겨찾기'를 계속 추가하다 보면 인터넷 서핑에 시간을 낭비하기 쉽다. 잘 찾지 않는 '즐겨찾기'는 모두 지우기로 했다. 6개월 이상 방문하지 않았던 인터넷 카페 및 가입사이트도 모두 회원탈퇴를 했다. 의도는 좋았지만 마음먹은대로 활동이 되지 않았던 '신현O 시인을 사랑하는 모임', '인터넷 사진 관리 사이트'도 회원탈퇴를 했다. 사진을 관리하는 피카사 프로그램인 'alsee네 사진관'을 들러 UP했던 꽤 많은 사진도 처분하기도 했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PC가 쌩쌩 돌아가는 것 같다. 속이 다 시원하다. 마음이 가벼우니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