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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 이해인(李海仁)

by 언덕에서 2009. 10. 24.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이해인(李海仁, 1945~ )

 

 

 

손 시린 나목(裸木)의 가지 끝에

홀로 앉은 바람 같은

목숨의 빛깔

 

그대의 빈 하늘 위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차 오르는 빛

 

구름에 숨어서도

웃음 잃지 않는

누이처럼 부드러운 달빛이 된다.

 

잎새 하나 남지 않은

나의 뜨락엔 바람이 차고

마음엔 불이 붙는 겨울날

 

빛이 있어

혼자서도

풍요로와라

 

맑고 높이 사는 법을

빛으로 출렁이는

겨울 반달이여.

 

-시집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분도출판사 1983) 

 


 

 수녀 시인 이해인의 작품 문체는 독자가 몰래 엿듣는 듯한 내밀한 독백체, 고백체이다. 이 작품도 그러한 특징을 지닌다.

 이 시에서 가장 핵심적인 시어는 '반달'이다. 이 반달은 '오늘'이라는 현실 상황 속에서는 불완전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시인은 보름달처럼 완전하고도 충만한 '내일'의 삶을 꿈꾸게 된다. '반달'이라는 현재의 결핍 상황은 일상적인 굶주림과 불완전성을 뜻한다. 따라서 오늘은 내가 비록 보름달이 아닌 반달로 남아 있지만, 언젠가는 보름달과 같이 맑고 높이 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리라는 것이다.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우리가 왜 시를 찾고 시를 읽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이해인 수녀는 지상의 모든 대상과 기도 안에서 만나고, 편지로서 만나고, 그리움으로서 만난다. 그리하여 그의 시는 기도로서, 편지로서, 그리움으로서 다가온다. “뒤틀린 언어로 뒤틀린 세계를 노래한 시들이 줄 수 없는 위안, 기쁨, 휴식, 평화를 주기에 종파를 초월하여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또한 그는 악기의 소리로 시를 쓴다. 우리를 불안해하지 않고,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감동으로 이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 리듬에는 사기(邪氣)나 불화가 없다. 오묘한 화성의 조화, 부드럽고 아름다운 멜로디로 가득하다. 평생을 죄지은 자, 상처받은 자들을 감싸 안아 성모 마리아의 마음으로 사랑해온 수도자의 맑디맑은 영성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경건하고 순결한 언어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