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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꽃피는 나무에게 / 장석주

by 언덕에서 2009. 10. 27.

 

 

 

 

 

 

 

 

 

꽃피는 나무에게

                                        장석주

 

 

꿈틀거리는 성욕이 없다면

꽃을 피울 수 없지

꽃피지 않는 나무라면

살아 있다고 할 수 없지


봄날 저녁 하늘을 향하여

솟구치는 성욕으로

마구마구 꽃을 피워 올려

꽃핀 구름들을 이고

서 있는 나무

취한 여자처럼 발갛게

아아, 이뻐라

당. 신. 을. 사. 랑. 해. 요

 


 - 시집 <애인> (좋은날 1998)





 

 

 

 

 

 





위의 시를 쓴 장석주 시인(1954 ~ )은 부재의 씨앗이 자라나서 맺은 열매가 바로 시라고 이야기 한다. 그의 시에 대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모든 시들은 부재의 숲에서 싹을 틔우는 어린 나무다. 우리는 태어나기 전에 부재의 존재였고, 죽은 뒤에 다시 부재의 존재로 돌아간다. 문자들은 이 존재와 부재의 간극 사이를 불어가는 바람이다. 뭔가를 쓰는 자들은 이 부재의 권태를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채집망을 휘둘러 바람을 붙잡는다. 어리석은 몸짓, 아무 보상도 없는 몸짓들. 그러나 부재의 씨앗들은 여기저기에 흩뿌려져서 마침내 싹을 틔운다. 누구나 무의식에 그 어린 나무가 자란다.


 그는 우리의 삶과 꿈 사이에 가로놓인 갈등의 골을 해체하려는 몸부림을 비극적이며 초월적인 아름다운 이미지로 드러내고 있다. 비슷한 이미지의 시 한 편을 보도록 하자.



꽃은 피고요,


햇빛은 빛나고요,


검고 무거운 구두는

어디 그늘진 곳에라도 벗어놓고요,


꽃피는 나무 밑에서

우리

입맞추어요,


꽃은 지고요,


날은 저물고 말지요,



 - 꽃나무 밑에서의 입맞춤 (전문)



 인간의 삶이란 태어남에서 죽음의 순간까지의 시간적 공간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간의 삶에서 성욕(性慾)의 의미는 어디까지 갈까? 좀 낭패스런 질문이지만 오래전부터 최근까지 이런 질문을 쉬지 않고 자문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 때의 일이다. 같은 동네에 살던 급우의 아버지가 폐병으로 사망을 하였다. 30대 후반의 젊은 분이 요절(夭折)을 한 것이다. 그런데 임종을 엿본 이웃사람들로부터 희한한 소문이 번졌다. 그분은 임종 순간 아내에게 나신(裸身)으로 서있기를 부탁했고 실제로 친구의 어머니는 마지막 순간 그 부탁을 들어주신 것이다. 기묘한 순간이었겠지만 죽는 순간까지 성욕은 지속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의 다른 이야기는 필자와 절친한 친구 집안의 이야기이다. 친구 내외는 중풍에 걸린 팔순의 홀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 친구의 아버님은 금년 여름에 노환으로 돌아가셨다. 팔순의 노인이 아내 없이 혼자 살게 되면 아무래도 며느리의 통제 속에 살게 마련이다. 친구의 부인은 씩씩하고 용감한 '여장부'형의 여성이다. 우리 친구들로부터 효부(孝婦)로 칭송받던 그녀는 매일 시아버님 방청소를 했다. 어느 날, 방을 정리하러 시아버님 방에 들어가니 친구의 아버님은 민망하게도 팬티를 내리고 자위행위를 하고 계셨다. 당황한 그녀는 얼떨결에 "아버님, 지금 뭐하세요?" 라고 물었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이랬다. " 아... 그러니까... 죽기 전에 언젠가는 그걸 할 기회가 있을 것 같아 되는 지 안 되는지 혼자서 해보고 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그렇구나, 죽는 순간까지 성욕은 인간과 함께 하는 것이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봄날에 성욕처럼 아름답게 꽃피는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잠시 샛길로 빠졌다. 위의 시는 성욕처럼 꽃피우는 꽃의 아름다움이나, 성욕이 꽃처럼 일어나는 것이나 결국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같은 게 아니냐는 뉘앙스를 던져준 채 전개되고 있다. 쓰는 행위 안에서 쓰기와 지우기는 반복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쓰면서 동시에 뭔가를 지워가는 행위다. 쓴다는 행위는 쓰지 않는 것들, 끝내 억압되어 무의식의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것들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씌어지면서 표출되는 것들의 아래로 숨는다. 그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지워지는 것이다. 위의 시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성(性)에 대한 기존의 편견과 선입관을 지우고 음미하면 즐거운 시이다. 취한 여자처럼 발갛게 아아, 이뻐라 당. 신. 을. 사. 랑. 해. 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