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오르규 장편소설 『25시(La Vingt Cinguie me Heure)』
루마니아 소설가·종교인 C.V.게오르규(Constantin- Virgil Gheorghiu.1916∼1992)의 대표적인 장편소설로 1949년 발표되었다. 미ㆍ소 양 진영의 틈바구니에 끼인 약소민족의 고난과 운명을 묘사한 이 작품으로 작자는 일약 명성을 얻게 되었다. 한국에도 소설과 영화로 소개되었다.
장편소설 「25시」는 파란만장한 역사적 비극에 철저히 유린당하고 희생되었던 인간의 내면을 절절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독일로 망명했지만 루마니아인이라는 이후 체포되어 비참한 수용소 생활을 해야 했던 저자의 생생한 체험이 이 소설의 바탕이 되었다. 요한 모리츠라는 평범한 인간의 비극적 인생을 통해, 약소국가의 민족이 겪어야 했던 눈물겨운 고난을 재현했다. 게오르규에게는 이 작품 외에도, <제2의 찬스> <단독여행자> <도나우의 희생> <마호메트의 생애> 등이 있는데, 특히 「25시」는 번역물과 영화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으며, 1974년에는 내한하여 서울과 지방에서 몇 차례의 강연회와 좌담회를 가졌다. 서구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정신을 동양에서 찾은 그는 한국을 ‘새 고향’이라고 부를 정도로 사랑하여 1974년 이래 5차례나 한국을 방문했고 <한국찬가>를 출간하기도 하였다..
게오르규는 부쿠레슈티와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배우고, 루마니아의 외무성에 근무하였으나, 문화사절단의 수행원으로 서구 사회와 접할 수 있어, 공산화된 루마니아를 떠나 1946년 프랑스로 망명, 파리에 정주하였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요한 모리쓰는 그토록 바라고 있던 미국행을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미국으로 출발하기 바로 전날 밤, 사랑하는 수잔나와의 밀회를 완고한 그녀의 아버지에게 들켜 그녀가 집에서 쫓겨나게 된 때문이다. 그는 자기 때문에 갈 곳이 없어진 수잔나를 위해 그녀와 함께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것이 그의 비극의 시작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수잔나의 아버지를 두려워해서 누구 한 사람도 두 사람을 숨겨 주지 않았으나 사제(司祭) 부자(父子)의 도움을 받아 토지와 집도 얻었고, 아이도 생겨 두 사람은 밤낮으로 일을 하며 행복한 날을 보냈다.
어느 날 수잔나가 일하고 있는데 헌병이 와서, “당신의 주인이 없어지면 나에게 문을 열겠나?”이렇게 말하며 여자의 하얗게 드러난 종아리나 허리께를 훑어보았다. 수잔나는 화를 내고 그를 쫓아 버렸다. 남편인 모리쓰에게 징집 명령이 온 것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의 일이었다. 교활한 헌병은 모리쓰가 없어지면 수잔나가 자기의 것이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순수한 루마니아인 인 그를 유태인이라고 꾸며 유태인 강제 수용소에 보냈던 것이다.
선량한 농부 모리츠는 유대인으로 오인되자 헝가리로 탈출했으나, '적성(敵性) 루마니아인'으로 체포되어 나치의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진다. 그곳에서 게르만 민족 연구가인 한 독일군 장교에 의해 그는 게르만 영웅족의 순수한 혈통을 이은 후예로 인정되어 강제노동의 감시병이 되었으나 다시 연합군 지역으로 탈주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적국 병사로 잡혀 수용소에 갇히어, 이를 아무리 항변해도 소용이 없다. 전쟁이 끝나 간신히 석방되어 처자를 만났으나 18시간 뒤에는 다시 감금된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서유럽에 사는 동유럽인들이 갇히게 된 때문이었다.
징집소장은 의용병의 신청이 왔으므로 기분이 좋아 모리쓰의 사진을 찍어 신문에 낼 생각으로 그에게 “웃어라.”고 명했다. 웃으라고 해도 그는 웃을 수가 없었다. 다시 죽음의 전장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생각하니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웃어!” 중위는 재차 명령하였다. “웃어요! 웃어!”
주인공 요한 모리츠는 판타나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순박한 농부이다. 그의 아내를 탐냈던 헌병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강제 노동 수용소로 끌려가면서부터 그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헝가리로 탈출하여 또다시 첩자의 누명을 쓰고 고초를 당해야 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독일 장교의 눈에 띄어 포로 감시병으로서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었고, 포로들의 탈주를 도우며 자신도 함께 연합군 점령지구로 도망쳤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며 그는 백여 곳의 수용소를 전전해야 했고, 체포령이 내려져 석방된 지 채 하루도 안 되어 다시 감금되고 말았다.
'25시'는 그 누구도 구원할 수 없는 절망의 시간을 상징한다.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가치를 상실하고 일차원으로 축소되어 가는 사회를 의미한다. ‘25시’란 최후의 시간 다음에 오는 시간, 즉 메시아의 구원으로도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는 시간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에서 그는 서구 산업사회가 멸망하는 환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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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오르규1(Cheorghiu, Constantin Virgil.1916∼1992.6.22)는 철위(鐵衛)단의 일원이었던 보수주의자이다. 그는 반커뮤니즘의 입장에 서서, 당시는 공산주의인 조국을 떠나 파리의 교외에서 문필 생활을 하면서 1950년에는 루마니아 왕국의 시인상을 받은 바 있으며 여기에 소개된 그의 대표작인 「25시」란 최후의 시간, 즉 24시 뒤에 오는 시간으로 결국 새로운 날의 첫 발이 시작되는 오전 한 시가 오지 않고 영원히 밤이 밝지 않는 암흑이 계속되고, 어느 것 하나 해결되지 않는 절망의 시간이라는 의미로서 현재라는 의미다. 이 소설이 나온 것은 1949년이며, 그 당시의 세계는 철의 장막을 경계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으로 나뉘어 매일 냉전의 위협이 증대되어 가고 있었다. 특히 2차 세계 대전의 잔혹함을 겪은 작은 나라에서는 과거에 맛본 슬픔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공포에 떨었다.
이러한 비극을 가장 잘 묘사한 것이 이「25시」로서 세계의 주목을 끌었고, ‘25시’라는 말이 유행하였다. 이제는 일반적으로 불안, 절망, 허무 등을 의미하는 말이 되어 버렸다.
- 콘스탄틴 비르질 게오르규는 1916년 루마니아 라스베니에서 태어났다. 부쿠레슈티 대학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한 게오르규는 재학 시절 시를 발표함으로써 문단의 주목을 받는 시인이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징집영장을 받고 전장에 나갔던 그는 전쟁의 온갖 참상을 목격하고 군 생활을 마친 뒤에는 집필 생활에만 전념하게 된다. 1940년 시집《눈 위의 낙서》로 루마니아 왕국상을 받았으나 루마니아에 공산정권이 세워지자 게오르규는 독일로 망명했다. 그러나 독일도 연합군과 소련군에게 점령되고 연합군의 적성 국가인 루마니아 출신이라는 이유로 체포되어 수용소에 감금, 2년간의 비참한 포로 생활을 하게 된다. 석방된 뒤 이때의 체험을 토대로《25시》집필을 시작하였고, 독일에서의 생활도 여의치 않게 되자 1949년 프랑스로 망명, 세계를 놀라게 한 작품《25시》를 프랑스에서 출간하게 된다. 그 외《제2의 찬스》《혼자 떠도는 사내》《25시에서 영원의 시간으로》등의 작품을 발표한 그는 1992년 76세를 일기로 프랑스에서 눈을 감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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