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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소설

이청준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

by 언덕에서 2009. 9. 21.

 

이청준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

 

 

이청준((李淸俊. 1939~2008)이 1976년 발표한 장편소설로 1976년 [문학과지성사]에서 간행되었다.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육군장교 출신의 조백현이 소록도병원장으로 취임, 환자들의 천국을 건설하겠다며 득량만 매립공사를 착수한 데서 시작하여 나환자들과 대립ㆍ갈등을 빚는다. 2부는 매립공사 기간의 조원장의 정신적 방황을, 3부는 조원장이 소록도를 떠났다가 5년 후 일반 시민으로 돌아와 미감아 두 사람의 결혼을 주례하는 장면으로 끝맺는다. 따라서 표면적 줄거리는 ‘당신들의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조백현의 꿈이 나환자들과의 대립을 통해 실패하고 다시 그 실패가 화해를 가져온다는 내용이지만, 그보다 진정한 작가의 의도는 “인간사회는 천국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삶의 의미를 재점검해 보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질문에 대한 소설의 대답은 첫째, 권력은 사랑과 자유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되고, 둘째, 인간의 천국은 다른 인간의 천국과 대립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소록도라는 한 섬을 통해, 자유 없는 권력은 증오를 낳고, 사랑 없는 권력은 강요된 의무만을 요구할 뿐이라는 비관적 세계관을 도출하고 있는 이 소설은, 그런 면에서 1970∼1980년대 한국사회의 상징적 축도라고 볼 수 있다.  

 

1960대 소록도 나환자병원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나환자들의 섬 소록도에 전직 군의관 출신 조백헌 대령이 새로 병원장으로 부임해 온다. 부임 첫날부터 원생의 탈출사고가 일어나고, 조원장은 외부사람의 눈에는 평화스러워 보이는 이 섬에 무엇인가 문제가 있음을 느낀다. 이 후 조원장은 불신과 패배감에 젖어있는 섬을 바꿔놓기 위해 군인 특유의 저돌성과 끈기를 가지고 많은 난관들과 부딪혀 나가기 시작한다.

 조원장의 간곡한 설득과 열정 어린 의지에도 원생들(소록도 병원의 환자들)은 그를 불신하며, 모든 사업계획들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지배자의 관점에서 원생들을 위한 천국을 건설하려 했던 역대의 원장들이 자신의 명예심과 과시욕 때문에 원생들을 혹사시키는 등 결국 그들을 배반했다. 또한 그 권력에 빌붙어 개인의 안위를 위해 같은 원생이 서로를 배신하기에 이르는 과정을 수십 년 동안 몇 번이나 겪었기 때문이다.

 원생들이 겪은 배반의 대표적인 예가 일제시대 때의 원장 주정수이다. 그는 행복한 낙원의 건설을 장담했고, 그의 의지에 감동 한 원생들도 열심히 따라서 마침내 섬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차츰 주원장과 원생들의 관계는 절대적인 지배자와 그에 복종해야 하는 피지배자의 관계로 변질했다. 원생들은 낙원의 건설을 위해 계속 되는 부역에 노예처럼 끌려 나가야 했고, 섬을 탈출해 나가는 사람마저 생기게 되었다. 그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낙원에서 목숨을 걸고 빠져나가는 모순이 발생한 것이다. 권력에 아첨하는 무리들은 주원장의 동상까지 세우고, 매월 동상 참배까지 의무적으로 하도록 만든다. 결국 주원장은 겉으로는 나환자들을 위한 복지시설이 완벽하게 확충된 '낙원'을 건설해 놓고도, 바로 그 '보은 감사일 날' 나환자의 손에 의해 살해당한다.

 보건과장 이상욱은 조원장이 그 '주정수의 동상'을 되풀이 할 인물인지 아닌지를 끊임없이 의심한다.

 그러나 조원장은 섬사람들에게 지난날의 악몽을 씻고 이젠 내일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원생들은 조원장에게서 목숨까지 건 맹세를 받아내고서야 비로소 바다를 매립해 원생들의 농토를 만들자는 원장의 간척사업계획 에 동참하기 시작한다.

 자연과 인간의 싸움,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싸움이 몇 년에 걸쳐 힘겹게 치루어진다. 간척사업 동안 원생들은 정말 헌신적으로 열심히 일했으나, 폭풍으로 인해 또는 자연침하로 인해 바다 밑에서 솟아오르는 돌둑은 번번이 가라앉곤 했고, 조원장은 살얼음을 걷는 심정으로 불만과 불신을 묵묵히 인내하는 원생들을 지켜보아야 했다.

 어느 날 도 당국에서 파견한 작업조사반이 섬에 들어온다. 간척장을 당국에서 인수하겠다는 것이었다. 분노한 조원장은 이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결국 다른 병원으로의 전임발령을 받고 만다. 어떻게 해서든 사업을 완성시켜 놓고 떠나고 싶었던 조원장은 모든 사실들을 원생들에게 이야기하고 사업을 빨리 진척시켜 줄 것을 독려한다.

 한결같은 조원장의 헌신적인 모습에 마음이 움직이고 있던 원생들은 조원장의 전임발령을 취소하라는 청원 서명 운동을 벌이기에 이른다. 이상욱은 원장을 찾아와 이것을 중단시킬 것과 사업의 완성 여부에 상관없이 이 섬을 떠나라고 충고한다. 간척사업의 과정에서 원생들은 이미 많은 것을 성취했으며, 그 사업의 완성을 보고 싶은 것은 혼자서 모든 일을 완성해 내고픈 원장의 욕심일 뿐이라고. 상욱은, 비록 원장은 '동상'을 지니지 않았다 하더라도 섬사람들이 스스로 지어 바칠 그 '동상'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조원장은 그 간척사업의 결말을 보지 못하고 섬을 떠나지만, 5년 뒤 민간인의 신분으로 다시 섬으로 돌아와 음성병력자와 건강인 처녀의 결혼식에 주례를 맡는 등 섬사람들과 공동의 운명을 같이 하는 삶을 살며 믿음과 사랑이 바탕된 진정한 천국의 건설을 꿈꾼다.

  

소설가 이청준(1939~2008)

 

 

 표면적인 구조만으로 볼 때, 『당신들의 천국』은 조백헌이라는 야심 많고 정열적인 한 인물의 무용담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진정한 의도는 그 조백헌의 단순한 제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에 대한 복합적인 비판에 있다. 그 비판을 가능케 하는 인물이 이상욱과 이정태이다.

 제1, 2부의 기술은 조백헌에 관한 이상욱의 시선에 의지해 있다. 그의 시선은 조백헌이 자신의 동상을 세우려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소록도에 천국을 세운다는 미명 하에 조백헌이 실제로 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명예욕이나 과시욕을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를 감시의 눈으로 지켜보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소록도의 과거 때문이다.

 ― 소록도에서는 일제 시대의 병원장이었던 주정수가 나병 환자들의 낙원을 건설한다는 미명 하에 개인의 명예를 얻는 데만 열중하고 환자들은 강제로 노역시키고 임금까지 착취했다. 학대의 방법도 교묘하고 극한에 달하여 심지어 단종(斷種) 수술까지 자행되었다. 표면적 성과에 의해 공로자가 된 주정수는 그를 기념하는 동상 앞에서 환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러한 처참한 과거가 있었기에 소록도에는 바깥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뿌리가 깊이 내려져 있었다. 조백헌 원장은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투철한 의지와 인내로 나환자들을 회유하고 결실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했다. 이러한 조백헌 원장의 사랑 정신에 결국에는 이상욱도 감동하게 된다. 작가는 또 이정태 기자의 눈을 통해 복지 사회의 건설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협력과 사랑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비판적으로 상대화하는 관점으로 영웅 조백헌이라는 인물을 집중 조명하고 결국 해체하는 작업을 한다. 작가 자신의 의혹과 불신을 대변하는 보건과장 이상욱이라는 인물을 소설 속에 파견하여 조백헌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자 역할을 수행하도록 한다. '저들의 천국'이 아니라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이 소설에서는 '당신들'을 위해 만들어진 세계에 대해 회의하고 자기 자신의 입장까지도 회의한다.
 조백헌과 이상욱이라는 두 인물이 각각 대변하는 세계관 사이의 근본적인 대립은 '탈출 문제'이다. 정상성의 관념 자체가 가지는 배제의 폭력성에 대해서 회의하고, 동일성의 권력에 저항하려는 작가의 고뇌가 소설 곳곳에서 드러난다. 또한, 이 소설에서 거듭 강조되고 있는 '문둥이의 자유'는 실용적 가치와 물질주의에 의해 획일화되어가는 근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추방당한 자들의 자유를 대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