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詩)를 읽다

하늘 / 박두진

by 언덕에서 2009. 9. 25.

 

 

 

 

하늘  

                                            박두진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 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시집 <해>  (학원사   1949)

 

 

 

 

 

 

 

 

 

 

   

박두진 시인(1916 ∼1998)의 학력은 시골 국민학교 졸업이 전부다. 1939년 <문장>을 통해 <향현(香峴)>, <묘지송>, <낙엽송> 등으로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데뷔했다. 추천자 정지용(鄭芝鎔)은 그의 시에 대해 ‘그의 새로운 자연의 발견은 삼림에서 풍기는 식물성의 체취’라고 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침묵으로 절조를 지켰으며, 1946년 박목월(朴木月) . 조지훈(趙芝薰)과의 3인시집 <청록집>을 펴내 ‘청록파’라는 말을 들었으나 향토정서보다는 그리스도교적 윤리의식으로 기울었다. 초기에는 역사와 인류의 부조리에 소극적 저항을 보였고, 중기에는 그 저항을 심화시켰으며, 그 뒤 그리스도교 신앙체험의 고백을 드러내었다. 

 이 시는, 맑고 푸른 초가을 하늘을 우러러보면서 샘솟는 생의 기쁨과, 나아가 자연과의 합일(合一)을 이루는 경지를 연쇄의 표현 기법과 정제된 언어로써 잘 나타낸 작품이다. 1970년대 중반 서유석이 곡을 붙이고 서유석과 양희은이 노래를 불러 더 알려진 작품이다.

 박두진이 노래하는 자연은 다른 청록파 시인들이 추구하는 목가적 세계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종교적 신앙과 일체화된 신성(神性)의 자연이다. 전 7연의 이 작품은 내용상 2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첫째 단락(1∼4연)에서는 가을 하늘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가 그 아름다움에 도취됨으로써 무아지경(無我之境)에 빠져들어 자연의 넓은 품에 안기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하늘과 하나가 된 희열감(喜悅感)과 함께 자연의 숭고함에 대한 시인의 경건한 자세가 나타나 있다.

 둘째 단락(5∼7연)에서는 시상이 점차 고조되어 '능금처럼 내 마음이 익는다'는 마지막 행에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따가운 볕 / 초가을 햇볕으로' 세속에 물든 자신의 육신을 씻어낸 다음, 그 깨끗해진 가슴에 절대 순수의 '하늘'을 가득 채워넣었을 때, 마침내 영혼은 빨갛게 익어가는 '능금처럼' 성숙, 결실됨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의 '하늘'은 단순히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시적 자아의 세속화된 영혼을 맑게 씻어줌으로써 그의 삶을 살찌우는 생명수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하늘’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영혼의 갈증을 채우고, 영혼을 살찌우는 생명수로 되어 있다. 곧 영혼ㆍ정신ㆍ생명의 근원이며, 평화와 결실을 주재(主宰)하는 어머니이기도 하다. 이런 ‘하늘’과의 높은 조화와 동화의 경지를 보이며, 그것을 구가하고 찬미하고 있는 것이 이 시의 시정신이다.

 

 박두진 시인이 살아있을 때 모일간지 문화란에서 기자와 대담한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돌아가시기 1~2년전으로 기억하는데 근황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너무 오래 살았다...... 이제는 사는 게 지겨워요.'라고 기자에게 말한 기사를 보고 깜짝 놀랜 적이 있다.

 1990년대에 이르자 시 <빙벽을 깬다>를 통해 인류발전을 가로막는 이기심인 '빙벽'을 깨기 위한 노시인의 처절한 투쟁의지는 사회비판과 더불어 시정신의 준열함을 다시 한번 보여준 것이었는데 이 위대한 시인에게도 세월이라는 괴물은 넘을 수 없는 벽이었던 셈이다.

 

 '우주 전체 무한공간/ 어디나 얼음인 얼음절벽(중략) 아, 맨주먹, 맨주먹, / 나혼자 맨주먹으로 얼음절벽을 짼다/박치기 알몽뚱이로 얼음절벽을 깬다' (‘빙벽을 깬다’의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