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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 김용택

by 언덕에서 2009. 9. 23.

 

 

 

사람들은 왜 모를까

 

                                            김용택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 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는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사람들은 왜 모를까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들이 꽃이 된다는 것을.

 

 

-시집 <사람들은 왜 모를까> (문학사상사 1997)

 

 

 

 

 

 

 

 

 

 

 

 

너무나도 유명해서 국민시인 반열에 올라있지만 그래도 김용택 시인(1948 ~ )에 대한 소개를 해보도록 하겠다. 전북 임실 진메마을 출생으로 1969년 순창 농림고교 졸업했다. 1982년 21인 신작시집 <꺼지지 않는 횃불로>에 <섬진강 1> 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했으며 임실 덕치국교 교사 역임했다. 

 그는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읽고 문학에 첫 관심을 가졌으며 박목월, 이어령, 서정주 등의 전집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발레리 시 중에 '바람이 분다/살아 봐야겠다.'를 늘 가슴에 새겨두고 삶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었다. 김수영의 <풀>을 읽고 작은 풀을 간단하면서도 정확한 느낌으로 표현한 것을 보고 놀란다. 이때부터 김수영을 비롯하여 박용래, 김종삼, 황동규의 시에 심취했다. 이성부의 시집과 <해방전후사의 인식>, 잡지 [문학과 지성] [창작과 비평]을 읽고 역사와 문학에 눈뜨게 되었다.

 그의 시 대부분은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다. 그는 섬진강에 대하여 “나의 모든 글은 거기 작은 마을에서 시작되고 끝이 날 것을 믿으며 내 시는 이 작은 마을에 있는 한 그루 나무이기를 원한다.”라고 말할 정도이다. 초기 시는 주로 고향과 고향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태에 비추어 서정적으로 노래했다. 이는 이성부나 고은의 시에 영향받은 듯하다. 초기 연작시 <섬진강>의 지배적 이미지는 작가 주변 인물들의 서사적 이야기이며 대부분 긴 형태로 기도나 분노, 풍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 시의 제목 ‘사람들은 왜 모를까’에서 사람들이 모른다고 하는 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대로 보면, 마지막 두 행에서 말하고 있는 ‘봄이 되면 손에 닿지 않는 것이 꽃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것만으로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봄이 되면 꽃이 되는 ‘손에 닿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화자가 말하는 사람들이 모른다는 것은, 봄이 되면 꽃이 되는 ‘손에 닿지 않는 그 무엇인 것’이다. 화자는 알고 있는데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은 시 속에서 있을 것이다.

 그는 집 앞에 흐르는 섬진강을 배경으로 많은 작품을 썼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순리의 철학을 인정과 세태에 연결시켜 서정적으로 노래했고, 소박한 정서와 농촌 경험의 진실성을 시의 바탕으로 빚어냈다. 대상을 바라보는 따뜻하고 정겨운 시선, 자연의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은 그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이루고 있다.

 이 시에서는 고통과 슬픔을 자연의 경이로움으로 승화시킨 이별의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슬픔은 멀리서 밀려오고 고통은 시간이 흐를수록 꽃처럼 피어난다고 비유하고 있다. 이 시는 절제된 언어를 통해 시적 정서의 긴장과 전형을 잘 살려내고 있다. 특히 시적 대상으로서 자연을 경험적 현실로 인식하고 그것을 상상력의 세계 속으로 끌어올리는 필력은 시인의 고운 심성을 짐작케 한다. 이별의 순간이 지나간 뒤에도 슬픔은 멀리서 밀려오고 고통은 시간이 흐를수록 꽃처럼 피어난다고 비유했다. 지난날의 슬픔이나 고통 등이 오늘의 나를 있게 성장의 바탕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그것들이 이제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것을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다. 시골집 담벼락에 피어있는 한 모듬 채송화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