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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도솔가(兜率歌) / 김혜순

by 언덕에서 2009. 9. 26.

 

 

 

도솔가(兜率歌)

 
                                               김혜순

 

죽은 어머니가 내게 와서

신발 좀 빌어달라 그러며는요

신발을 벗었더랬죠

 

죽은 어머니가 내게 와서

부축해다오 발이 없어서 그러며는요

두 발을 벗었더랬죠

 

죽은 어머니가 내게 와서

빌어달라 빌어달라 그러며는요

가슴까지 벗었더랬죠

 

하늘엔 산이 뜨고 길이 뜨고요

아무도 없는 곳에

둥그런 달이 두 개 뜨고 있었죠

 

 

- 계간지<문학과 지성> (1979) 

 

 

 

 

 

 

 

김혜순 시인(1955 ~ )의 시 세계는 격렬한 언어와 이미지로 가득 차 있는데, 이는 세계의 부조리와 죽음의 운명에 저항하는 시적 방법이다. 대상을 주관적으로 비틀어 만든 기괴한 이미지들과 속도감 있는 언어 감각으로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구축해온 그가 시를 통해 끈질기게 말하는 것은 죽음에 둘러싸인 우리 삶의 뜻없음, 지옥에 갇힌 느낌 등이다. 그 죽음은 생물학적 개체의 종말로서의 현상적, 실재적 죽음이 아니라, 삶의 내면에 커다란 구멍으로 들어앉은 관념적, 선험적 죽음이다.

 

 위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도솔가'와 '도솔천' 이라는 두 개의 단어를 알아야 할 것 같다.

 도솔가는 신라의 향가(鄕歌)이다. 760년(경덕왕 19) 4월 초하루, 해가 둘 나타나서 열흘 동안 없어지지 않으므로, 왕명에 따라 연승(緣僧)으로 뽑힌 월명사(月明師)가 산화공양(散華供養)을 하면서 <산화가(散花歌)>도 부르고 이 노래도 지어 부르자, 괴변이 곧 사라졌다는 유래가 <삼국유사(三國遺事)> 에 전한다. <삼국유사>를 지은 일연(一然)은 이 노래를 <산화가>가 아니라 <도솔가>로 보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도솔은 미륵을 지칭한 말로서, 미래 불로서의 미륵불을 모시는 단을 모아놓고 이 노래를 불러 미륵불을 맞이하려고 한 것이다. 떨기 꽃을 통하여 미륵불을 모시겠다는 뜻의 전형적인 찬불가(讚佛歌)이다.

 

 바람이 돈을 날려 떠나간 누이에게 보내고

 피리 소리 밝은 달을 흔들어 항아를 머물게 했다

 도솔천이 멀다고 말하지 말라

 큰 스님 꽃 한 가지 한 곡의 노래로 맞았네』

 (<삼국유사> 권5 감통. 월명사 도솔가)

 

 자, 이제 어떤 점에서는 두 도솔가의 합일점이 찾아질 것 같다. 김혜순의 시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격렬한 언어와 강한 이미지, 죽음과 부조리에 저항하는 방법으로서의 시는 여기서도 유용한 것이다. <도솔가>는 하늘에 해가 둘 나타난 괴변을 없애기 위한 의식에서 불린 노래이다. 합리적 사고로는 하늘에 해가 둘 나타나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따라서, ‘두 해가 함께 나타났다.’는 것은 사실의 기록이 아니며, 우회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도솔가는 미래의 부처님(미륵불)을 모시기 위해서 사전정지 작업조로 행해야 하는 찬불가이다. 김혜순은 시에서 죽은 어머니가 찾아와서 고통 속에서 하소연할 때 딸은 (어머니의 평안을 위해) 신발을 제공하고 발을 잘라드리고 목숨까지 바친다. 그 결과 둥그런 달이 두개가 뜬 상태에서 하늘에는 길이 뜨고 산이 뜨는 도솔천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도솔가에서의 도솔천은 미륵보살이 머무르고 있는 천상(天上)의 정토(淨土)가 된다. 이렇게 시를 쓰는 시인의 마음은 천상의 평온함을 찾았을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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