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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김남주

by 언덕에서 2009. 9. 21.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김남주


 

무엇하랴 

콧잔등 타고 내려

입술 위에 고인 눈물 위에

그대 이름 적신들

타고 내려 가슴에서 애를 태우고

발등 위에 떨어진 이슬 위에

그대 이름 새긴들

 

무엇하랴

벽은 이리 두텁고 나는 갇혀 있는 것을

무엇하랴

철창은 이리 매정하고 나는 묶여 있는 것을

오 새여 하늘의 바람이여

나래 펴 노래에 살고

내래 접어 황혼에 깃드는 새여 바람이여

 

나에게 다오 노래의 날개를

나에게 다오 황혼의 보금자리를

만인의 입술 위에서 노래가 되기도 하고

대지의 나무 위에서 비둘기의 보금자리가 되기도 하고

압제자가 묶어 놓은 세상의 모든 매듭을 풀어

인간의 팔에서 날개가 되고 바람이 되기도 하는

새여 바람이여 자유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 시선집 <사랑의 무기> (창작과 비평사 1989 )

 

 

 

 

 

 

 

 

 

 

 

 

 

 

 

시인 김남주( 1947 ~ 1994)는 작가생활의 대부분을 감옥에서 보내면서 자본주의사회의 치열한 경쟁과 비인간화를 비판하고 사회주의적인 공동체 생활을 염원하는 시를 써 왔다.

 

 김사인 시인이 ‘강인한 정신성의 시’라고 평한 그의 시들은 대개가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돼 무기수 생활을 하던 중 쓴 것이다. 독재정권과 노동의 비인간화에 항거하는 그의 시는 1980년대 대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읽힌 시였다.

 1974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진혼가>를 선보이며 등단했지만, 본격적인 시인으로 주목받은 것은 옥중에 있던 1984년 첫 시집 <진혼가>를 펴낸 것이 계기가 됐다. 이 옥중 시집은 광주교도소에 갇힌 시인 김남주를 독재정권에 대한 문학적 항거의 표상으로 부각시켰다. 이후 <나의 칼 나의 피>, <사랑의 무기>, <솔직히 말하자> 등의 옥중시집을 잇달아 발간하면서 그는 ‘광주학살’을 가장 격렬하게 몸과 글로 규탄하는 시인으로 우뚝 섰다. 1988년 특사로 출옥 후 출판된 시집 <사상의 거처>를 제외하면 그의 옥중시집은 모두 담뱃갑 은박지와 휴지조각, 책 여백에 깨알 같은 글씨로 써 교도관 몰래 밖으로 내보낸 것을 친지들이 묶어 펴냈다. 이 때문에 시인은 자신이 쓴 시들이 재대로 인쇄됐는지도 확인하지 못한 채 저항의 표상으로 널리 읽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순수문학을 표방하는 이들로부터는 지나친 사상성을 비판받는 시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개의치 않고 끝까지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는 사회]를 외쳤다. 자신이 이상으로 삼아 온 사회주의를 표방한 국가들이 몰락하고 후배들이 지향점을 상실하고 헤매는 변화 앞에서도 ‘사회의 모든 현상이 시가 된다’며 스스로와 후배들을 격려했다.

 

 얼마나 많은 별들이 밤하늘을 수놓다 사라졌으며 또 이름 없는 들꽃들은 피다가 사라졌는가. 바쿠닌, 플레카노프, 로쟈 룩셈버그, 베라 자수리치, 트로츠키, 체게바라……. 동지는 간 곳없고 깃발만 나부낀다. 김남주의 시는 그렇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