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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어머니 / 박경리

by 언덕에서 2009. 9. 17.

 

 

 

 

어머니

 

                                                   박경리

 

어머니 생전에 불효막심했던 나는

사별 후 삼십여 년

꿈 속에서 어머니를 찾아 헤매었다

 

고향 옛집을 찾아가기도 하고

서울 살았을 때의 동네를 찾아가기도 하고

피난 가서 하룻밤을 묵었던

관악산 절간을 찾아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알지 못할 곳을

애타게 찾아 헤매기도 했다

 

언제나 그 꿈길은

황량하고 삭막하고 아득했다

그러나 한 번도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다

 

꿈에서 깨면

아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

그 사실이 얼마나 절실한 지

마치 생살이 찢겨나가는 듯했다

 

불효막심했던 나의 회환

불효막심의 형벌로써

이렇게 나를 사로잡아 놓아주지도 않고

꿈을 꾸게 하나 보다

 

 

- <현대문학> ( 2008년 4월호)

 

 

 

 

 

 

  

 

 

 

 

 

 

민족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 <토지>의 작가. <토지>가 없는 한국 문학사를 상상해 보면, 박경리(1926 ~ 2008)란 인물이 우리 문단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박경리 선생의 어린 시절은 각박했다고 한다. 열네 살에 네 살 연상의 여자와 결혼해, 열여덟에 박경리를 낳은 아버지는 박경리가 태어나자마자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렸다. 그런 아버지를 박경리가 좋아했을 리 없고, 어머니와의 사이도 좋지 않았다. 진주여고를 다닐 때는 학비를 보내주기로 했던 아버지가 학비 부담을 어머니에게 미루자, 아버지를 찾아가 따지다 맞은 일도 있다. '여자가 공불하면 뭣하나. 시집가면 그만이지' 하는 말에, '당신이 공부시켰어요? 그만두라 마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서슴없이 '당신'이라 부르며 대들자, 아버지가 솥뚜껑 같은 손으로 박경리의 뺨을 때렸다고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인천 전매국에 근무하던 남편과 만나 결혼해 어두웠던 가정사의 그늘에서 벗어나는가 했으나, 그 남편이 '공산주의자'로 몰려 투옥되고, 6ㆍ25 때 월북하면서 다시 홀로 되고 말았다. [평화신문]과 [서울신문]의 문화부 기자를 거치며, 기자가 부족해 혼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어야 했던 그는 일년 뒤 힘들다는 이유로 신문사를 그만두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69년 <토지>를 집필하면서 그는 일년간 세상과 철저히 담을 쌓고 살았다. 원래 <토지>는 지금처럼 방대한 분량의 대하소설로 계획되었던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외할머니에게서 들은 얘기를 토대로 한 권 분량으로 써서 탈고까지 마친 후에야 세상에 공개하기로 작정했던 작품이었다. 독하게 마음 먹고서 전화도 끊고 신문도 끊고 원고 청탁도 일체 받지 않은 채 원고지를 채워 나가던 그는, 그러나 어머니와 딸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가장으로서 가난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현대문학]에 연재를 시작했고 <토지>는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시인만 시를 쓰는 것이 아니겠지만 소설가인 박경리 선생이 만년에 쓴 이 시를 읽으면서 느끼는 감동과 슬픔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다. 이 시를 읽으면 어떤 소설의 주인공이 내뱉는 독백처럼 느껴진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세상을 진지하게 바라볼 수 있으니까. 위의 시는 나이가 많아져서 세상사에 대해 깊이 있는 시선을 던지게 되고 삶의 이치에 좀더 가까이 다다를 때 느끼게 되는 삶의 독백이 묻어 나오는 글이다. 찐빵을 만들 줄 아는 사람이라면 만두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물씬 나는 시를 쓸 수 있는 것 같다. 박경리 선생은 모친을 늘 가슴에 묻어두고 사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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