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시(詩)를 읽다

행복(幸福) / 유치환

by 언덕에서 2009. 9. 11.

 

 

 

 

 

 

 

 

 

행복(幸福)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 더 의지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월간 <문예> (1953) 

 

 

 

 


 

 

 유치환(1908∼1967)은 몇 편의 수필과 소설을 남겼지만 원래부터 시인이다. 160편 이상의 시와 10권의 시집을 펴냈다. 그의 고향 항구 도시 통영이 그의 시작(詩作)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은 명백하다. 그의 시에 나오는 주제는 대개 자연인데 특히 바다가 많이 나온다. 그는 자연의 모든 면을 다루었다. 꽃, 동물, 바위와 대개의 경우 자연의 일부로써의 인간. 자연을 통하여 삶의 충만함과 무상이라는 이중적 테마를 강조하였다. 그의 시에 나오는 무상은 인간이 삶을 통하여 극복해야만 하는 긍정적인 무상인 것이다.

 그의 시는 삶의 참여와 강조, 삶을 짓누르는 것에 대한, 삶의 자연적인 과정에 대한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진다. 그는 현대 한국시단에서 생명파의 대표로 일컬어진다. 삶에 대한 위대한 연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끔 상대하기 어려운 일상의 사회적 상황을 발견하는데 종종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공허함이 그것이다. 일제시대(1910∼1945)에 쓰인 초기 작품은 당연히 조국에 대한 일본의 압제와 관련되어 있지만 친일 의혹도 받아온 것도 사실이다. 이상과 현실 사이의 거리감에 의하여 인간이 겪는 고뇌를 이러한 시를 통하여 표현하였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그는 제도적 부조리인 사회악(社會惡)에 분노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일제, 자유당 독재 정권과 그에 빌붙어 아유구용(阿諛苟容)하는 세력들일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질타하던 사회적, 제도적 불의(不義), 부정(不正)의 근원이 인간의 본성에 잠재한 어둠(부정)의 자아, 곧 원초적 부조리에 있음을 알고 좌절한다. 그에게는 그 부정적 자아를 구원할 '위대한 정신적 지주(支柱)'가 될 형이상학이 없었던 것이다. 이 점이 청마의 시가 높은 윤리 의식을 바탕으로 했고, 고도의 정신적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위대성을 얻지 못한 이유가 아닌가 생각된다.

 아, 고리타분한 이야기가 너무 길었다.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이 시는 허무의 극복이라는 의지의 문제가 아닌, 존재의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정념(情念)을 노래하고 있는 작품으로, 일반적인 유치환식의 시와 많은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어찌 보면 감상적이고 애상적인 감상주의에 휩싸인 사춘기적 연정을 노래한 듯한 이 시는 진정한 행복의 가치는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통해 지극히 순결한 사랑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 시를 통해 현실에 만연되어 있는 이기주의, 자기중심적 사고에 의해 사랑을 주기보다 받기를 원하거나, 먼저 사랑하기를 꺼리는 그릇된 풍조에 참사랑의 경종을 울려 주고 있다.

 문학평론가들의 편리한 분류에 의하여 생명파 시인으로 불렸던 그는 생명에 대한 애정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온갖 사물의 미세한 부분까지 관찰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이런 생명에 대한 애정이 그의 시의 바탕을 이루고, 그 바탕 위에서 동양적인 허정(虛靜)ㆍ무위(無爲)의 세계를 추구하며, 또한 이러한 허무의 세계를 극복하려는 원시적인 의지가 살아 있다. 그 강렬한 허무적 의지는 그 밑바닥에 생명의 뜨거운 꿈틀거림과 감정의 소용돌이를 간직한 것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 시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사랑의 서간집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이다.

 서간집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는 1967년 간행되었다. 청마가 여류 시조시인 이영도(李永道)에게 보낸 사랑의 편지를 그의 사후에 출판한 것이다. 통영여자중학교 교사로 함께 근무하면서 알게 된 이영도(일찍이 결혼했으나 21세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당시 딸 하나를 기르고 있었다) 시인에게 청마는 1947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편지를 보냈다. 그러기를 3년, 마침내 이영도의 마음도 움직여 이들의 플라토닉한 사랑은 시작됐으나 청마가 기혼자였던 관계로 이들의 만남은 거북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청마는 67년 2월 교통사고로 사망할 때까지 편지를 계속 보냈고 이영도는 그 편지를 꼬박꼬박 보관해 두었다. 그러나 6ㆍ25 전쟁 이전 것은 전쟁 때 불타 버리고 청마가 사망했을 때 남은 편지는 5,000여 통이었다. [주간한국]이 이들의‘아프고도 애틋한 관계'를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제목으로 실은 것이 계기가 되어 청마의 편지 5,000여 통 중 200통을 추려 단행본으로 엮었다. 이영도는 이 책의 인세(印稅) 수입을 한국문학사가 주관하는 정운시조상(丁芸時調賞) 기금으로 쓰게 하였다.

 필자의 사담을 내놓자면 이 서간집을 읽게 된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인 걸로 기억한다. 국어교과서에 유치환의 시 <깃발>이 수록되어 있었는데 당시 무명시인이었던 국어선생님이 시인 소개를 하면서 아름답기 그지없는 제목을 가진 이 서간집을 소개하였던 것이다. 한 달 용돈을 털어서 구입하여 읽어본 책의 내용은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서간집이라 함은 당연히 두 사람이 주고받은 글이리라는 예상을 깨고 청마의 일방적인 구애 편지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내용 또한 얼굴을 붉히게 하는 부분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부인이 있는 40대의 중년 교육자가 툭하면 '나는 지금 그대의 가슴에 안겨 울고 싶소.'라는 표현을 남발해대니 고등학교 1학년생인 내가 읽기에는 너무 형이상학적인 책이었다. 당시 문학도(文學徒)이던 친구들과 돌려 읽기를 했는데 한결같은 의견은 유치환은 '청마(靑馬)'가 아니고 '색마(色馬)가 아니냐'는 표현과 유치환의 글은 ‘유치(幼稚)하다’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제목에 비해 내용이 어린 우리가 상상하던 소설 '독일인의 사랑'류의 감동적인 산문과는 동떨어진데서 온 실망이었다.

 그럼, 나이가 든 지금 이 서간집을 읽는다면 그때 그 소년들은 뭐라고 할까? 하하,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니 원......



'시(詩)를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 / 김수영  (0) 2009.09.14
관계 / 고정희  (0) 2009.09.12
하(河) / 이호우  (0) 2009.09.10
님의 침묵(沈默) / 한용운  (0) 2009.09.09
필사적으로 / 김사인  (0) 2009.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