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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하(河) / 이호우

by 언덕에서 2009. 9. 10.

 

 

하(河)

 

                                                      이호우 


  

어떻게 살면 어떠며, 어떻게 죽으면 어떠랴

나고 살고 죽음이 또한 무엇인들 무엇하랴

대하(大河)는 소리를 거두고 흐를 대로 흐르네

 

 - 시조집 <휴화산> (중앙출판사 1968)

 

 

 

 

 

 


 

 

 

 

 

시조시인 이호우(1912 ∼ 1970)는 의지(意志)를 주제로 한 독특한 관념 세계를 개척하여 시조사(時調史)에 중요한 족적을 남긴 분이다. 여류시조 시인 이영도의 오빠이다.  그는 자신의 시론에서 ‘서민적이어야 할 것이며, 그 형은 간결하여 짓기 쉽고, 외우기 쉽고, 전하기 쉽게 내용이 평명(平明)하고, 주변적(周邊的)이어야 할 것’이라고 시조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그것은 곧 위의 작품에도 해당된다. 종래의 감정 투입이나 퇴폐적 감상을 배격했다. 자연이나 예술지상주의의 베일에 숨으려 들지 않았던 그는 정신적 가열성(苛烈性)의 차원에까지 도달하면서도 시조 본령인 장(章)과 구(句)를 다치지 않았다. 그의 작품은 기존의 시조들과 차원이 다르다. 즉, 그의 작품에는 계절적 변화를 통한 한국의 고유 미학이나 생활 감각을 형상화하려 하지 않았다. 명승지나 역사적 고적을 소재로 택함으로써 민족정서를 인유적(引喩的)으로 도입한 흔적도 없다. 종래의 시조작가들이 회고투나 영탄적인 작품을 생산함으로써 시조문학이 넘지 못하던 고비를 개척했던 것이다.

 그의 작품은 초기의 연작형(連作形)에서 후기로 오면 대개 단수(單首)로 집약되고 있다. 한국시조사(韓國時調史)의 최고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대표작 <개화(開花)> <휴화산(休火山)> <바위 앞에서> <진주(眞珠)> 등이 그 예이다. 현대시조가 겪고 있는 위기를 우리는 그의 후기 작품 속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시정신의 가열성이 시조 형식을 압도할 때 시조가 존속할 명분은 무엇인가 하는 것은 그에게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문제였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는 만년에 와서 계속적으로 문제작들을 발표했다. 그러나 1970년 1월 6일 뇌일혈로 쓰러져 그의 시조문학은 개화(開花)의 단계에서 시들게 되었다. [영남문학회]와 문단의 모금으로 세워진 그의 시비(詩碑)가 대구 남산공원에 세워졌다.

 그의 묘비에는 "여기 한 사람이 / 이제야 잠들었도다 // 뼈에 저리도록 / 인생을 울었나니 // 누구도 이러니 저러니 / 아예 말하지 말라" 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어 그의 삶을 생각해보게 한다. '살구꽃 핀 마을', '개화', '깃발', '바위 앞에서', 휴화산', '달밤', '바위' 등 주옥같은 명편들이 겨레의 숨결 속에 영원히 이어질 시의 탑을 세워 놓았는다. 달리 어떻게 시인의 시를 짧은 언어로 설명하겠는가...... 대하는 소리를 거두고 흐를 대로 흐르는데 거기에다 다른 부언이 가해진다면 무슨 실개천 흐르는 듯한 잡설로 변질될 듯하다. 그의 시를 줄줄 읊어 보면 절로 의미를 깨치게 되는 주옥같은 시이다.

 인생이란 길지만 짧지도 않은 길이다. 최초의 발원지 산 속에서 흐른 물 한 줄기는 넓은 강 대하로 흐르고, 산은 산맥대로 흘러내린다. 우리가 살아 오면서 부딪쳐야 할 길 많고도 험난하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우주의 일부분이고 대자연의 작은 조각에 불과한 것을 무엇을 탓하겠는가. 반천년 전에 정몽주가 읊었던 ‘하여가’의 통 큰 세간 삶에 대한 답시(答詩) 같은 이 시조 자체가 대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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