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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북한강에서 / 정호승

by 언덕에서 2009. 8. 26.

 

 

북한강에서

 

                                                                                                    정호승

 


 

너를 보내고 나니 눈물 난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날이 올 것만 같다

만나야 할 때에 서로 헤어지고

사랑해야 할 때에 서로 죽여버린

너를 보내고 나니 꽃이 진다

사는 날까지 살아보겠다고

돌아갈 수 없는 저녁 강가에 서서

너를 보내고 나니 해가 진다

두 번 다시 만날 날이 없을 것 같은

강 건너 붉은 새가 말없이 사라진다

 

 

- <창작과 비평> 1989년 여름호

 

 

 

 

 

 

 

 

 

 

 

 

 


 

 

인간과 인간간의 안타까운 헤어짐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글을 꼽으라고 하면 나는 정호승 시인(1950 ~ )의 '북한강에서'를 꼽겠다. 정호승의 시는 무엇보다 중간중간 끊김없이 잘 읽히는 강한 흡인력을 갖고 있다. 부담감을 주는 시어(詩語) 또한 없다. 이는 시인이 전통시가의 율격, 구어 혹은 민요체를 사용하며 시적 소재를 일상의 친숙한 대상에서 구한다는 데 있을 것이다. 또한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꾸밈없는 위로의 목소리도 이에 한 몫 한다. 그의 시편들은 한 지점에서 삶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네 일상적인 삶과 꽉 엉겨 붙어 있다. 그의 시를 읽음으로써 막연한 위로가 아닌 구체적인 위로와 힘을 얻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호승은 소외된 주변인들의 고단하고 사연 많은 삶을 아궁이에 지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스한 기운을 시의 세계로 옮겨놓고 있다. 고단한 삶을 마치 땔감처럼 지피는 그의 마음은 읽는이 본인의 사정처럼 간절하게 읽혀진다. 그는 결국 이 세상을 덥히는 땔감은, 다름 아닌 상처를 떠안고 살아가는 주변인들, 거대한 힘에 눌러 사는 소시민들의 애절한 삶임을 설파한다. 이 애절한 삶은 세상의 결핍을 드러내는 삶이며, 기다림과 그리움의 삶이다. 정호승은 서럽고 억울한 삶들이 기다리는 것과 자신의 기다림을 섞어 버무리며 우리에게 삶을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방법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가 직접 얘기했던 "나는 인간이 이루는 삶의 비극성에 관심을 갖는다. 이것이 내 시의 출발점이자 귀결점"이라고 이야기한데서 다시금 확인된다. 그러나 그의 '슬픔'은 전통적인 정서인 한(恨)이나 비애의 세계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것으로, 그는 이 '슬픔'을 통해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들의 아픔, 전쟁이나 분단, 독재로 얼룩진 우리 현대사의 상처까지도 끌어안고 따뜻하게 위무해 준다. 이처럼 그는 현실의 모순 아래서 고통 받고 있는 삶을 노래하면서도 그 삶의 미래에 대해 낙관하는 미래 지향적 자세를 보여 준다는 면에서 그의 시는 너무도 따뜻하다.

 불행히도 인간의 만남은 늘 그렇듯이 헤어짐을 동반한다. 헤어짐 없는 만남은 없다. 어쩌면 이별이 있기 때문에 만남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세상에 눈물 없는 이별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우리는 이별할 때 ‘잘’ 이별해야 한다는 것을 안타깝게 설명하고 있다. 사십을 훨씬 넘겨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별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다시는 만날 수가 없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중요한 것처럼 어쩌면 어떻게 만나느냐보다 어떻게 헤어지느냐가 더 중요한 게 우리네 삶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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