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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분수(噴水) / 김춘수

by 언덕에서 2009. 8. 25.

 

 

 

분수(噴水)

 

                                            김춘수

 

 

발돋움하는 발돋움하는 너의 자세는 왜

이렇게

두 쪽으로 갈라져서 떨어져야 하는가.

 

그리움으로 하여

왜 너는 이렇게

산산이 부서져서 흩어져야 하는가.

 

2

 

모든 것을 바치고도

왜 나중에는

이 찢어지는 아픔만을

가져야 하는가.

 

네가 네 스스로에 보내는

이별의

이 안타까운 눈짓만을 가져야 하는가.

 

3

 

왜 너는

다른 것이 되어서는 안 되는가.

 

 

떨어져서 부서진 무수한 네가

왜 이런

선연(鮮然)한 무지개로

다시 솟아야만 하는가.

 

 - 시집 <꽃의 소묘> ( 백자사 1959)

 

 

 

 

 

 

 

 

 

 

 


 

 

 김춘수 시인(1922 ∼ 2004)은 1940년대까지 이어온 전통적인 정조(情調)와 리듬에 도전, 신 감각으로 시사(詩史)에 있어서 새로운 문학정신과 사실성 표현하여 독자적인 시의 경지를 구축해 왔다. 그의 초기 시는 인식의 추구가 앞서고, 이후에 있어서는 의미 배제의 경향이 짙게 변모된 것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1980년 광주 항쟁 이후 태동한 전두환의 5공화국 독재 정권 하에서 자신의 지론인 순수시, 무의미 시의 철학과는 정반대로 당시 민정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어 그 '순수시의 순수성'이 지닌 불순한 의도를 의심받게 되었다. '독재자의 개'가 된 것이다. 이는 미당 서정주가 전두환을 '단군 이래 5천년 만에 만나는 미소의 인간'으로 말하고 찬양 연설을 한 것과 함께 당시 젊은 문학 지망생들과 양심 있는 지식인들에게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희대의 사건이었다. 두고두고 생각을 하게 만드는 시 '분수'를 읽으며 사람은 자신의 언행에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시인과 시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겠지만 어쨌든 오늘은 김춘수의 시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도록 하자. 다들 나름대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았겠는가. 김춘수의 시에서 보이는 언어는 인식을 위한 도구로서 의미 전달이라는 언어 본래의 기능을 상실하고, 이미지 환기의 수단으로 표현되었다. 아울러 그는 의미를 배제한 이미지를 추구해 왔기 때문에 시의 조형적(造型的) 사실성(리얼리티)을 강조하기도 한다. 또한 그의 시에 있어서 언어는 단지 이미지만 남아있는 느낌을 짙게 풍겨주어 설명적 요소와 논리적 요소가 제거된 시적 상황을 새로운 활로(活路)로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런 그의 시 경향을 전문용어로 난센스 포에트리(nonsense poetry-무의미시)라고 한다. 대표적인 예가 위의 시 '분수'가 아닐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없는 그 무엇을 향한 그리움 때문에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한 안타까운 발돋움을 하지만, 마침내 처참한 좌절을 겪고는 한다. 시인은 그러한 안타까운 그리움의 발돋움과 좌절의 원인을 추적해 나가고 있다. 1, 2, 3부로 나아가면서 이 물음은 심화되어 간다. 1부의 경이와 충격의 물음이 2부에선 항의를 담은 안타까운 물음으로, 3부에선 마침내 숙명을 받아들이고 스스로 해답을 얻어 깨달음에 이르는 물음으로 발전한다. 그리하여 안타까운 발돋움과 좌절, 다시 시도하는 발돋움의 이 끝없는 눈물겨운 되풀이는 그리워하도록 숙명 지어진 그 영원한 그리움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깨닫는다. 좌절을 딛고 선연한 무지개로 다시 피어오르게 하는 그리움이 우리 마음에도 번져오게 만드는 감동적인 시이다.

 이 시에는 세 가지 형식적 특징이 있다. 1, 2, 3부로 나뉘어 있고, 모든 연이 의문문으로 이루어졌으며, 시 전체가 순수한 이미지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다. 각 부는 2연씩으로 이루어져 다른 시의 한 연과 같은 구실을 하고, 각 부는 3단계로 발전하여 이 시를 완성한다. 3단계적 점층 구성을 이루고 있다. 안타까운 발돋움과 좌절, 다시 시도하는 발돋움의 끝없고 숙명적이며 눈물겨운 되풀이……. 그리워하도록 운명 지어진 그 영원한 그리움……. 선연한 무지개로 다시 솟아야만 하는 아픔. 여러번 되풀이해서 읽으면 자신에게 내재된 숨은 시적 감각이 살아날 것 같은 좋은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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