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느 드 보부아르 장편소설 『위기의 여자 (La Femme Rompue)』
프랑스 소설가 시몬느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1908 ∼ 1986)의 장편소설로 1967년 발표되었다. 현재에 와서는 페미니즘 소설의 원형처럼 되어버린 '결혼의 위기를 맞은 중년여성의 자아찾기'를 다루고 있다. 남편의 외도를 알고 혼란에 빠진 여성이 쓰는 일기 형식의 소설이다. 한 여자의 심각한 자기 성찰과 각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
키에르케고르의 유신론적 실존주의에 반하여,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사상은 무신론적 실존주의다. 그것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다는 것이 아니라, 신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절대적인 책임을 져야만 한다는 사상이다. 인간이 의의 있는 존재가 되느냐의 여부는 인간의 선택에 달려 있다. 인간은 무위나 타락에 의해 본래적으로 자유를 상실할 위험성이 있으므로 부단히 자유를 요구하고 자기를 초월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인간이 이 세계에서 만나는 것이 타자, 즉 '남'이라면, 다음에 문제가 되는 것은 자기의 자유와 '남'의 자유다.
보부아르의 다른 작품 <초대받은 여자>의 '남'은 부정적이며 여주인공은 자기의 자유를 위해 '남'을 말살한다. 전쟁 체험 후의 보부아르는 인간 연대의 필요성을 통감하여 자기 구속과 사회 참여를 요구한다. 자기와 '남'은 주체 대 주체의 관계에 서야만 한다. 따라서 보부아르는 항상 피압제자(남성에 종속하는 존재로서의 여성, 근로자, 피식민 타인, 인종적 편견의 피해자들)의 편에 선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안정된 중류가정의 한 행복한 여성이 어느 날 뜻하지 않던 암초에 부딪친다. 인생을 사랑과 결혼에 걸고 그 결혼에 성공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여주인공 모니크는 어느 날 밤 남편 모리스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을 남편의 고백을 통해 알게 된다. 자타가 공인해온 모범부부 사이의 균열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다. 놀라운 분노, 초조, 불안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에겐 처음으로 자기성찰이 시작된다.
그녀는 이제 지금까지의 '나'를 두 가지 각도에서 바라본다. 자신을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또 한편으로는 남의 눈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찾아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타인들은 모두가 제나름대로의 도식에 맞추어 제멋대로 그녀를 해석한다. 그녀는 그들에게서 위안을 찾지 못한다. 결국 오랜 회의와 절망의 수렁 속에서 다시 어두운 현실로 돌아온다. 구원은 누구에게도 청할 수 없다. 문은 자기 스스로 열어야 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그 문을 열리라는 것을 자각한다.
이 소설은 모니크의 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 우리는 남편의 애인인 노엘리에 대해서는 모니크의 입을 통해서밖에 들을 길이 없다. 그런데 노엘리는 진정 파렴치하고 부도덕한 여자일까? 여기서 가장 원망을 들어야 하는 것은 남편인 모리스이다. 그러나 모니크는 모리스가 아닌 노엘리를 미워한다. 이것은 명백한 오류이지만, 모든 아내들은 심정적으로 모니크에 동조할 것이다. 왜냐 하면, 그녀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삶의 버팀목인 가정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통속적으로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식의 말을 되풀이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다. 모리스는 가정의 일부이지만, 노엘리는 그렇지 않다. 위기의 여자를 진정으로 위기에 빠지게 한 것은 이러한 이분법에 있는지도 모른다.
♣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상 자신의 일생을 포기하고 주부나 어머니로서 살아가기를 선택한 여자에게 과연 누가 어리석다고 비웃을 수 있단 말인가. 문제는 남편인 모리스가 이러한 파탄을 예상하면서도 그녀를 가정이라는 가짜 성 안에 가두어 두었다는 데 있다. 인간이 인간을 믿지 못하는 것만큼 끔찍한 사회도 없지만, 가장 가까운 부부 사이에서조차 서로를 경계하고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선택의 가능성을 모조리 차단당한 채 일방적 희생을 강요받는 관계는 결코 정당하지 않다.
그녀가 남편의 삶을 총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개별적 사실만을 본다면, 그녀에게도 잘못은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삶을 택하도록 한 것은 두 사람의 공동 책임이다. 문제는 그 책임을 지지 않고도 새로운 삶을 시작할 여력이 남편에게 있지만, 아내에게는 없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은 요즈음 한국에서도 유효하다. 아직도 수많은 여자들이 가장 행복한 삶의 형태로 결혼을 택하고 있다. 물론 시대는 바뀌어 거꾸로 아내에게 버림받는 남자들의 수도 적지 않다. 그러나 유교적 인식과 탈근대적 인식이 공존하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관념은 여전히 망령처럼 드리워져 있다.
'위기의 여자’는 사회 곳곳에 포진해 있고, 소모적인 투쟁으로 삶을 얼룩지게 하고 있다. 여성이 전통적인 아내의 역할에 충실하는 한, ‘위기의 여자’들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시대의 여자들은 보다 날카로운 지혜를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외국 현대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토마스 만 장편소설 『마(魔)의 산(山), Der Zauberberg)』 (0) | 2009.08.25 |
---|---|
윌리엄 포크너 장편소설 『압살롬 압살롬(Absalom Absalom)』 (0) | 2009.08.22 |
괴테 장편소설 『빌헬름 마이스터(Wilhelm Meister)』 (0) | 2009.08.15 |
샐린저 장편소설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 (0) | 2009.08.08 |
앙드레 말로 장편소설 『인간의 조건(La Condition humaine)』 (0) | 2009.08.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