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가(離別歌)
박목월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뭐락카노, 바람에 불려서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는 뱃머리에서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뭐락카노 뭐락카노
썩어서 동아밧줄은 삭아 내리는데
하직을 말자, 하직을 말자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
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
오냐, 오냐, 오냐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
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
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
오냐, 오냐, 오냐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시집 <경상도의 가랑잎>(민중서관 1968)
경상도 사투리가 사별의 회한을 어루만지는 특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시이다. <가시리>에서 찾을 수 있는 별리의 정한은, 황진이에게 와서 서정 미학의 꽃으로 피더니, 김소월에게 와서 역설의 미학으로 한 차원 높은 별리의 서정을 완성하는 듯하였다. 그러나 이 시에서 박목월 시인(1916∼1978)은 삶과 죽음을, 이승과 저승을 뛰어넘는 어법을 내밀고 있다. 너무도 처연하여서 아름다운 시이다.
이 작품은 죽음의 문제를 다루되, 말하는 상대방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그는 어쩌면 어릴 적부터의 친구이거나, 심심할 때 막걸리를 나누던 이웃 사람인지도 모른다. 시 '하관(下棺)'에 나오는 시인의 동생인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점은 그가 누구인가보다 작중 화자와 그와의 사이에 있는 깊은 인연이다.
이 작품에서 삶과 죽음 사이의 간격은 강에 비유된다. 강의 저편이 저승이라면 이쪽은 이승이다. 친구는 강 저쪽에서 이쪽에 있는 이를 향해 무엇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 소리는 바람에 날려서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지금 강 위에 뜬 배를 타고 있다. 그것이 저승으로 가는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어떻든 저승과 이승이란 그리 먼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나' 역시 인생을 살 만큼 살고, 멀지 않은 죽음을 내다보는 그런 사람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유서에 나왔던 '삶과 죽음이 자연의 일부분이 아니냐.'는 구절이 갑자기 떠올랐던 것은 왜일까?
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시어는 '뭐락카노'이다. 표준말로 하면 '뭐라고 하니' 정도가 되겠다. 이 시어가 소설의 화소(話素)처럼 이야기를 끌고가는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누군가가 강의 저편에서 화자에게 말을 건네나 바람에 날려서 뭐라고 하는지 잘 들리지 않는다. 강 이편의 화자 역시 상대에게 뭐라고 외치지만, 그 목소리 또한 확연히 전달되지 않는다. 그와 나를 이승과 저승으로 갈라놓은 것은 강이다. 강은 삶과 죽음의 간격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이제 끊어질 듯했던 그와의 인연이 더욱 깊어진 탓으로, 마침내 그의 '흰 옷자락'이 보이게 되고, 분명하지는 않아도 그의 말이 희미하게 들리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냐, 오냐, 오냐. / 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이다. 이 다짐의 말도 '바람에 날려' 그에게 잘 들리지는 않아도, 화자는 더욱 큰 소리로 재회의 약속을 하며 그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애타게 노래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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