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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너희는 시발을 아느냐 / 신현림

by 언덕에서 2009. 7. 29.

 

 

 

 

 

 

 

 

 

 

 

 

너희는 시발을 아느냐 

 

                                                                                                                         신현림

 

 아, 시바알 샐러리맨만 쉬고 싶은 게 아니라구


내 고통의 무쏘도 쉬어야겠다구 여자로서 당당히 홀로 서기에는 참 더러운 땅이라구 이혼녀와 노처녀는 더 스트레스 받는 땅

직장 승진도 대우도 버거운 땅

어떻게 연애나 하려는 놈들 손만 버들가지처럼 건들거리지 그것도 한창때의 얘기지

같이 살 놈이 아니면 연애는 소모전이라구 남자는 유곽에 가서 몸이라도 풀 수 있지 우리는 그림자처럼 달라붙는 정욕을 터뜨릴 방법이 없지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하는 피로감이나 음악을 그물침대로 삼고 누워 젖가슴이나 쓸어내리는 설움이나 수다로 풀며 소나무처럼 까칠해지는 얼굴이나

좌우지간 여자직장 사표내자구 시발


여보게 여성동지, 고통과 고통을 왕복하는데 여자 남자가 어딨나


남성동무도 밖에선 눈치보고 갈대처럼 굽신거리다가 집에선 클랙슨 뻥뻥 누르듯 호통이나 치니 다 불쌍한 동물이지 아, 불쌍한 씨발



- 시집<세기말 블루스>(창작과 비평사 1996)











 

 

신현림 시인(1961~ )을 아시나요? 물론 모르는 분은 없겠죠?

 신현림은 당대의 베스트셀러 시인으로도 유명하지만 사진작가, 수필가, 싱글 맘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TV에도 가끔 나온다.

 신현림의 시들은 파격적이다. 그리고 술술 읽힌다. 수사학의 숨바꼭질을 단념하고 독자들을 향해 직진하는 그의 시의 매력은 공들여 쓴 유행가 가사의 매력과 통하는 데가 있다. 그의 시들이 비교적 널리 읽히고 있는 비결 하나가 그런데 있을 것이다. 신현림의 시어들은 통속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파를 꺼리지 않으며 교과서에 나와 있는 시를 닮으려 하지 않는다. 두려워하고 꺼리기는커녕 그 언어들은 통속과 신파 한 가운데서 숨 가쁘게 돌진한다. 세상과 통하고 통속되기 위해 신현림은 화자들이 감수하는 정서적 파열과 신파조의 눈물을 ‘세상과의 로맨스’라 일컬은 바 있다.

 통속과 신파를 가로지르는 신현림의 이 로맨스는 점잖은 체하는 ‘진지한’ 독자의 가슴까지 울렁이게 만든다. 그것은 이 로맨스가 순정함과 우직함으로, 요컨대 생활의 건강함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힘찬 순정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신현림 시의 순정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약 십 삼 년전에 '세기말 블루스'란 시집을 처음 읽었다. 시집의 많은 시 중에서도 위의 시는 굉장히 파격적이고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시집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보이지 않는 슬픔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당시 함께 근무하는 '올드미스' 여직원에게 위의 시를 일독을 권한 적이 있다.

 "이 시를 읽는 내내 너무 통쾌했어요. 그런데 다 읽고나니 산다는 게 비참하네요."

 위의 시에서 '남성동무'의 모습은 요컨대 힘이 약한 아이가 힘센 아이에게 얻어맞고 난후 자기보다 더 약한 아이를 때리는 느낌이랄까……. 신현림의 화자들이 더러 내비치는 눈물과 분노는 일차적으로 제 고단한 몸뚱이와 쓸쓸한 마음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지만, 그것은 이내 비슷한 처지의 독자들을 다독거리고 격려하는 연대와 연민의 물줄기로 변한다. 바로 거기에, 그만의 순정의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