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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읽다

쉽게 씌어진 시 / 윤동주

by 언덕에서 2009. 7. 28.

 

 

 

 

 

 

 

 

 

 

쉽게 씌어진 시

 

                                                윤동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學費) 봉투(封套)를 받아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적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음사 1948)

 

 

 

 

 

 


 

 

윤동주 시인(1917~1945)은 1943년 여름 방학을 맞아 귀국 직전 독립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검거되어(43년) 2년 형을 받고(44년)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 감옥에서 복역 중 1945년 2월 29세를 일기로 옥사했다. 이 작품은 윤동주가 일본에 유학 중이던 1942년에 씌어졌다. 윤동주의 마지막 시인 것이다. 당숙인 윤영춘(尹永春)이 확인한 죄목은 ‘사상 불온, 독립 운동, 비일본신민, 서구사상 농후’였다.

 장동건보다 훨씬 미남인 윤동주의 삶은 불운하며 불행했다. 위의 시에서 ‘육첩방은 남의 나라’라는 구절에서 그가 처해 있는 상황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그가 익숙하지 않은 일본식의 생활공간인 동시에 다다미 여섯 장의 넓이로 그의 세계를 한정하는 구속, 부자유의 은유이다. 그는 이러한 공간 안에 갇혀 있으면서 시를 쓴다. 이 때 `시인이란 슬픈 천명'이라고 그가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시인이 현실을 직접 움직이는 자가 아니라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라는 데 대한 괴로움에 연유하는 듯하다. 요즈음의 모 정치인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악의 편이다'라는 식의 강박관념은 식민치 치하의 청년에게 국가의 독립에 직접적인 힘이 되지 못했음에 치욕과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이 시에서는 윤동주 시의 중요 내용의 하나인 `부끄러움'이란 개념이 등장한다. 그것은 삶의 어려움과 엄숙함에 대해 자신의 시가 정직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고 반성적으로 묻는 성실성의 소산이다. 이처럼 괴로운 반성과 연민의 시간에도 비는 내린다. 그리고 육첩방은 그 좁음과 낯설음으로 그의 영혼을 압박한다. 세상에는 어둠이 가득 차 있고, 그의 가슴 속에는 번민이 숨쉰다.

 그러나 <별 헤는 밤>의 경우와 비슷하게 윤동주는 이 음울한 상황에 체념하지 않고 자신을 일으켜 세운다. 온 세상에 가득한 어둠을 한 번에 없앨 수는 없지만 자신의 마음속에 등불을 밝혀 그것을 조금 내몰 수는 있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그는 이렇게 어둠과 절망을 견디면서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린다. 이 때의 아침이란 좁게는 개인적 번민으로부터의 해방일 터이고, 더 넓게는 정직한 영혼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괴로워할 수밖에 없게 하는 시대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때를 의미한다.

 윤동주의 시는 완결미가 느껴지지 않는 투박함이 있는데 바로 그 점이 그의 시를 더욱 완성된 시로 만드는 정갈함이다. 시에서 엿보이듯 그는 대단히 맑고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1995년에는 그의 모교인 일본의 도시샤대학에도 대표작 <서시>를 친필과 함께 일본어로 번역, 기록한 시비가 세워졌다. 그리고 금년 7월 2일 일본 시민단체 ‘시인 윤동주 기념비 건립위원회’는 교토부 우지(宇治) 시의 우지공원에 윤 시인의 기념비를 세우기 위해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시인은 불행하게 떠나고 그의 시는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여 찬란하고 영원하게 인류의 가슴에 남아있다.